나 좀 사랑해 주세요. 엄마!
짐을 정리하다 낡은 공책 한 권이 발치에 떨어졌다.
20년 전, 초등학교 3학년이던 작은 아들이
만화가를 꿈꾸며 끄적였던 흔적들.
무심히 책장을 넘기다 한 대목에서 숨이 턱 막혔다.
만화 속 아기 지렁이는 엄마를 찾는다.
하지만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차갑다.
“시끄러워. 너 엄마한테 혼날래?”
아무 잘못도 없는데
꾸지람을 들은 아기 지렁이는 서럽다.
엄마가 치사해서 “나 갈래!”라며 몸을 돌려보지만,
만화의 마지막 칸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엄마가 먼저 다가와 아들에게 사과를 하고,
“내 아들”이라 부르며 포근하게 품어준다.
그 시절,
나는 이 아이를 유난히 말썽쟁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20년이 지나 마주한 아이의 속마음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주책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닦아낼 생각도 못 한 채,
낡은 공책을 쓰다듬으며 울었다.
얼마나 허망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길래,
내 아이가 보내던 저 간절한 신호를
나는 끝내 몰랐던 걸까.
엄마의 날 선 말에 상처받으면서도,
아이는 만화 속에서나마
엄마가 먼저 사과해 주기를,
다시 다정하게 안아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아이는 엄마를 원망하며 떠나는 결말 대신,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아오는 세상을
스스로 그려내며 나를 용서하고 있었다.
부족한 엄마가 철이 들 때까지,
아이는 이 좁은 칸 안에서
기나긴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준 것만 같다.
엄마가 철들 때까지
기다려주느라 고생 많았어,
내 아들.
그리고, 끝내 기다려주어서 정말 고맙다.
이제야 비로소 만화 속 엄마 지렁이가 되어
아들을 마음껏 품어본다.
20년 전 작은 만화가가 건넨
이 뒤늦은 선물 덕분에,
오늘 밤 나의 부끄러운 기억 한 조각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