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1

선물의 역설

by 버티기




어린이날을 앞두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의 선물을 고르며 꽤 오랜 시간 고민에 빠졌다.


아이는 울트라맨 광팬이었다. 커다랗고 쌍꺼풀진 눈을 반짝이며 목청이 터지도록 "울트라맨!"을 외치고, 외출할 때면 늘 분신처럼 손에 쥐고 다니던 아이.


하지만 집에는 이미 울트라맨도, 공룡들도 넘쳐났다. 이번만큼은 흔한 장난감 말고, 아이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특별한 것을 주고 싶었다.


내 아이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기를, 언젠가 이 지구 곳곳을 누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거창한 소망을 담아 신중하게 골랐다.


지구본.


예쁘게 포장을 하며 기분 좋은 상상에 빠졌다.


아들과 나란히 앉아 "여기가 우리나라고, 저기는 일본이야. 지구 반대편 땅속을 뚫고 들어가면 칠레라는 나라를 만나게 된단다."라고 속삭여주는 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겠지.

"와, 정말? 여기가 남극이야?"


분명 그럴 줄 알았다.


선물 상자는 제법 부피가 컸다.

기대에 찬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포장지를 뜯고,

지구본을 보자마자


아들은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이게 뭐야아! 앙!"


지구본을 발로 뻥 찼다.

둥근 지구는 거치대와 분리되어 공처럼 또르르 굴러가더니 거실 구석에 처박혔다.





그 찰나,


굳게 닫혔던 암막 커튼 사이로 날카로운 빛이 새어 들어오듯 뇌리 속에서 잊혔던 기억 조각 하나가 쨍하게 살아났다.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였다.


유치원에 빨간 옷을 입은 산타 할아버지가 나타났고, 아이들의 이름이 하나둘 불릴 때마다 선물을 받은 친구들은 좋아서 깡충거렸다.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던데...

별로 착하지 않은 나에게도 선물이 있을까?'


체크무늬 교복 주머니에 두 손을 꼭 찔러 넣고

내 이름이 불리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콩닥거리던 그 마음은 분명 '설렘'이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을 때,

내 손에 쥐어진 선물은

다른 아이들 것보다 훨씬 크고 묵직했다.


입꼬리가 쓱 올라가고 이마엔 송골송골 기분 좋은 땀이 맺혔다. 미니카, 인형, 블록을 받은 친구들보다 내 것이 훨씬 좋을 거라 기대하며 서둘러 포장을 뜯었다.


하지만 상자 안에는


유리장 속에 갇힌 '신랑 각시 인형'이 들어 있었다.

어린 내가 꺼내서 가지고 놀 수도 없는,

그저 장식장에 박제되어야 할 물건.


내 선물을 빌미로 엄마의 취향을 투영한 결과물이었다.


올라갔던 입꼬리는 순식간에 처졌고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린 마음에도

그 초라한 기분을 들키고 싶지 않아

억지로 눈물을 꿀꺽 삼켰었다.



왜 그런 것까지 엄마를 닮았을까.

장점도 많은 우리 엄마인데,

왜 하필 엄마가 했던 그 실수를

나도 똑같이 반복해 버린 걸까.


설렘이 실망으로 뒤바뀌는 상처를 맛본

내 안의 아이가

자꾸만 스스로를 다그친다.


거봐,
뭘 기대를 해.
기대해 봤자 실망만 커지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