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2

기대의 그림자

by 버티기





어릴 적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앞둔 전날 밤이면 어김없이 배가 아팠다. 대학생이 되어 MT를 가던 때에도 그 고약한 습관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남들은 며칠 전부터 가방을 싸며 축제 같은 기다림에 들떠 있었지만, 나는 기어이 가겠다고 말했던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후회 속을 헤엄치곤 했다.


누군가는 기다림을 ‘설렘’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감싸 안지만, 나는 정반대의 회로를 가진 모양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혹은 소중한 사람이 좋아하니까 덩달아 기쁜 척

“그래, 가자!”

하고 대답해 버린다.


하지만 약속된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조금씩 뒷걸음질을 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시간조차 내게는 넘어야 할 벽처럼 느껴진다. 비행기를 타야 한다면 목적지의 풍경보다 비행시간을 먼저 확인하고, 숫자가 커질수록 몸은 세차게 반응한다. 전날부터 잠은 달아나고, 속은 뒤집힌다.


막상 도착하면 누구보다 알차게 즐기면서도, 떠나기 전날의 나는 늘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힌다.


나의 뇌는 왜 ‘설렘’이라는 기분 좋은 신호를

자꾸만 ‘불안’이라는 위험 경보로 오독(誤讀)하는 걸까.


이 알 수 없는 뒷걸음질은 인생의 가장 눈부신 순간에도 예외가 없었다.


결혼을 앞두었을 때가 그랬다.


우리는 분명 뜨겁게 사랑했다.

헤어지기 아쉬워 대문 앞을 서성이다가,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구나.

헤어질 필요가 없으니까.”

라며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던 나였다.


그런데 막상 결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마음 깊은 곳에서 진한 후회가 해일처럼 밀려왔다.


‘괜히 한다고 했나?

어쩌지?

이제 와 무를 수도 없는데.’


축복받아야 마땅할 그 찬란한 순간에,

나는 혼자 숨죽여 울었다.




설렘을 순수하게 설레지 못하게 하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기대.




누군가에,

혹은 무언가에 대한 기대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실망도 그만큼 커진다는 것을

나는 일찌감치 알아버렸다.


내가 기대했던 세상이 내 마음과 어긋날까 봐

내 몸은 늘 먼저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행복해지는 일조차

연습이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불행보다 낯선 행복이 더 두려운 사람.

그래서 좋은 일이 생기기 직전에,

미리 매를 맞는 심정으로 불안을 끌어안는 사람.


하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거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그 지구본처럼,


나의 불안 역시

누군가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했던 마음,

그리고 더 행복해지고 싶어 했던 마음이


서툰 방식으로 남긴 흔적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