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이 될 수 있는 자유

by 버티기





이제는 외출을 할 때 단장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 가거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면, 피부 보호를 위한 선크림 정도로 가볍게 마무리한다.


예전의 나는 외출 한 번을 위해 최소 한 시간의 준비가 필요했다. 뻗친 머리칼이 대칭이 맞지 않으면 기어이 물을 적셔 다시 매만져야 직성이 풀렸다. 누군가는 자신을 가꾸는 행위에서 자존감을 얻고 기분 전환을 하겠지만, 나의 경우는 달랐다. 나의 단장은 오로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방어 기제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거울 앞에 서서 머리칼을 만지다 문득 손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마음속에 하나의 자각이 스쳤다.


언젠가 EBS에서 보았던 한 인지 심리학 실험이 떠올랐다. 화면 속 인물이 말을 하는 동안 배경색이 완전히 바뀌었음에도, 영상을 보던 사람들은 그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인간의 뇌는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정보에만 집중할 뿐, 배경은 '중요하지 않은 데이터'로 분류해 인식의 회로에서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어차피 타인에게 나는 배경일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남의눈을 의식하고 있었을까?"


내가 타인에게 '배경'에 불과하다는 인식은 누군가에게는 주체성이 부족한 허무주의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달랐다. 타인의 세상에서 나 또한 배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나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나는 선택할 수 있다. 이유 없이 꾸미고 싶은 날에는 한껏 나를 가꾸는 즐거움을 누리고, 게을러지고 싶은 날에는 그저 배경으로 머물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 무엇을 선택하든, 이제는 타인의 기대가 아닌 나의 결정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