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바깥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운전석 바로 뒤, 창가에 앉았다.
출발 전, 여든은 훌쩍 넘어 보이는 여자가
기사에게 물었다.
"이 차, 서울 가는 버스 맞아요?"
지팡이를 짚고 버스에 오르는 모습이
몹시 힘겨워보였다.
중력은 유난히 무겁게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기사가 부축했고,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앉자마자, 말들이 흘러나왔다.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지방의 부잣집 딸이었지만
여자아이를 가르치지 않던 시절,
몰래 공부했다는 이야기.
도시로 시집오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삶은 쉽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과 몇 년 전까지 일을 했고,
자식 셋을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고 했다.
큰아들은 무엇이 되었고,
작은 아들은 또 무엇이 되었으며,
딸은 서울에 집을 사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
남편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에
봉투마다 숨겨 두었던 돈을 찾아
손주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식들에게도 재산을 정리해 주었다고 했다.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가볍고
뿌듯하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자녀의 출세라는 것이,
자기 몸을 갈아 넣고도
후회가 남지 않게 만드는 힘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낀세대다.
부모의 헌신 속에서 자라났고,
부모는 자식의 효도를 기대했다.
자녀들은 각자 처한 상황 속에서
효도를 중요한 가치라고 믿었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게는
효도를 바라지도,
기대하기도 어렵다.
마치 군대에서,
자신은 선임을 모셨지만
사회가 달라져
후임에게 그저 '아저씨'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조금 억울한 세대다.
그래서 나는
그 여자가 부럽기도 했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음에도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으며
끝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이.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믿어온 것들은
지금도 계속 부딪히고,
나는 자주 다치고
깨진다.
이제는
그런 자랑이 부럽지도 않고,
그 여자가 딱하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다만,
만약 내 마음을
의심 없이 받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내 뇌 어딘가에는
조금 다른 종류의 기쁨이
남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낯선 감정들을
천천히 정리해 본다.
일찍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말해 보지만,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이 감정을 이렇게 자주
만지작거리지 않았을 것이다.
확신을 가진 세대를 바라보며,
나는 어느 순간부터
확신을 잃은 쪽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