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란

아물지 않는 상처 보듬기

by 버티기




뜬금없이 남편이 내 안부를 묻는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남편의 어깨가 축 처져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저녁을 먹는 동안

그는 밥이 아닌 울음을 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


요즘 어려운 일이 있는지

마음 쓰이는 일이 있는지 물었지만

그는 그저 기분이 가라앉는다고만 말한다.


어머님의 기일이어서 그런가 했더니

그건 아니라고 답한다.





우리 집 작은 베란다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식물들이 있다.


작은아이가

학교 급식으로 받아 온 금귤을

조막손으로 화분에 었던 것이

싹을 틔워

이제 어른 키만큼 자란 나무가 있다.


큰아이를 낳았을 때

축하 화분으로 들어왔던 것을

엄마가 가져다 키우다

새끼를 내서 다시 내게 준 군자란,

그것도 이 베란다에 있다.


며칠 전

군자란이

뿌리부터 썪어들어가는 걸 발견했다.

무겁게 늘어진 잎들을 정리를 하고

썩은 부위에 공기가 통하도록

조심스레 손을 보았다.


뿌리가 부실해서인지

군자란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해가 향하는 쪽으로

화분을 돌려놓고

똑바로 서기를 바랐지만

퇴근 후 다시 보니

더 기울어 있었다.


썩은 겉잎을 하나 더 떼어내고

돌로 받쳐

다시 바로 서기를 바라본다.


군자란을 쓰다듬으며

문득

신이

길가에 내버려진

인간 아기를 만났을 때 했던 말을

나도 따라 해 본다.


피투성이 일지라도 살아있으라!

피투성이 일지라도 살아있으라!







저녁밥을 먹으며

남편에게 군자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말을 듣던 남편이

불쑥 묻는다.


"그 나무가 누구 거야?"


큰아이 것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요즘 많이 걱정된다고

을 마치자마자


남편의 눈이 벌게 지고

커다란 눈망울에

살며시 눈물이 찬다.


우리는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라는 존재가

원래 그런가 보다


무심히 살아가다가도

가끔 이렇게

가슴 깊은 곳에서

절대로 아물지 않을 상처가

불쑥 아려온다.


집안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 사진을

가만히 어루만지며


다시 한번

신이

인간아기에게 했던 말을

되뇌어 본다.


피투성이 일지라도 살아있으라!

피투성이 일지라도 살아있으라!


이제는

내 손길이 닿지 않는 곳

내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도


땅을 딛고

일어설 수 있기를


소망하며

조용히 놓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