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르막길을 연습하다

by 버티기





2025년 새해 아침, 나는 거창한 버킷리스트 대신 소박하지만 단호한 다짐 하나를 마음에 품었다.


“익숙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면 기꺼이 응해보기.”


집이 세상에서 가장 편했던 ‘집순이’가 스스로에게 내린 작은 명령이었다.


부모님을 보며 생각했다.

정정하던 분들이 여든을 넘기며 누군가에게 의지하게 되고, 아흔을 넘어가며 사회와 점점 멀어지는 모습.


부모님의 세대와는 달라진 숫자를 계산해 보았다.


성장에 30년.

자식 뒷바라지에 30년.


그렇다면 온전한 내 정신과 두 다리로 세상을 유영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길어야 10년에서 20년.


그 절박함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변화는 사소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남편을 따라나선 여행길.

구글맵이 안내하는 대로 강릉 안반데기 배추밭을 걷고, 옹심이 맛집을 찾아 줄을 섰다.


아이처럼 요란하게 핸드폰 스트랩을 골라 달았고, 친구들과 호텔 조식을 먹으며 괜히 우아한 척도 해보았다.


별것 아닌 일들이었다.

그런데 그 별것 아닌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가벼워졌다.


가장 큰 변화는 ‘나를 위한 향기’였다.


늘 누군가에게 줄 선물만 고르던 내가, 오직 나만을 위해 고급 핸드크림을 샀다.

손등을 문지를 때마다 은은히 피어오르는 향기를 천천히 음미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은 언제나 차 안에서 노래를 틀어두고 싶어 한다. 하지만 소리에 예민한 나를 위해 평소에는 음악을 켜지 않는다.


어느 날, 내가 먼저 블루투스를 연결했다.


차 안은 우리가 젊었던 시절의 노래로 가득 찼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따라 불렀다.


그 순간, 이 사람과 너무 늙어버리기 전에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함께 부를 노래를 고르라고 했더니

그는 윤종신의 <오르막길>을 골랐다.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자기가 먼저 떠나더라도 헤매지 말라는 그의 무뚝뚝한 당부가 가사에 실려 내 가슴에 내려앉았다.


좋은 노래였지만,

음치에 박치인 내게는 너무 높은 산 같은 곡이었다.

그래도 매일 밤마다 이어폰을 끼고 한 소절씩 연습했다.


한밤중 난데없는 '음치' 엄마의 노래 연습이 시끄러웠는지 앞방에 있던 아들이 슬그머니 내 방문을 닫고 갔다.


못 부르는 노래를 잘 불러보겠다고 애쓰는 중년의 내가 너무 낯설고 우스워서 웃음이 터졌다. 한참을 웃었다.


그런데 웃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

웃음의 끝은 뜨거운 울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2025년.


나는 거창한 목표 대신 작은 연습을 시작했다.

향기를 고르고, 노래를 연습하고, 누군가의 손을 마다하지 않는 연습.


나는

나의 오르막을

천천히

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