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tecture of the mind

마음의 구조를 허물다

by 버티기





새벽 수업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늘 마주치는 타 반 강사가 있었다.


우리가 교실에서 쏟아져 나올 무렵,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도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러 문이 닫히지 않게 붙들어 주곤 했다. 우리가 모두 탈 때까지, 말없이.


우물처럼 깊고 검은 눈동자.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지성과 겸손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에이드리언(Adrian)이었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떠올릴 법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금목걸이를 치렁치렁 걸치지도 않았고, 농구 선수처럼 거대한 체구도 아니었다. 늘 ‘올 블랙’의 단정한 차림을 고수했고, 마르고 날렵한 체형에 한국 남자 평균 정도의 키를 가진 사람이었다. 말수는 적었지만, 눈빛은 깊었다.


학원 벽면의 강사 프로필을 통해 그가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단한 이력, 흠잡을 곳 없는 스펙.


그런데도 그의 교실은 늘 조용했다. 인기 강사의 반이 북적이는 동안, 그의 반에는 한두 명의 학생만이 자리를 지켰다.


어느 달, 원래 듣던 새벽반을 수강할 수 없게 되어 한 시간 늦게 시작하는 그의 반에 들어갔다. 두 명뿐이던 수강생은 내가 합류하며 세 명이 되었다.


그만큼 그는 ‘인기’와는 거리가 먼 강사였다.


그의 수업은 옷차림만큼이나 정갈했다.

굳이 영화배우에 비유하자면, 조금 덜 잘생겼지만 지성미만큼은 능가하는 젊은 시절의 Denzel Washington을 떠올리게 했다.


무엇보다 음색이 인상적이었다. 낮고 깊게 울리며, 때로는 리듬을 타듯 흐르는 말투.

재즈를 닮은 목소리였다.


학생이 단 세 명뿐인 고요한 교실에서,

그는 나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Language is the architecture of the mind.

It’s not just about the words we speak,

but the space we create between them.”


언어는 정신의 건축물이라고.

우리가 내뱉는 단어보다,

그 사이에 어떤 공간을 두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그 순간 나는 단순히 영어를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깊이를 배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언어에는 오랜 시간 사유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밀도가 실려 있었다.


그토록 명석하고 근사한 사람이었음에도, 그에게 마음을 여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흑인 영어를 배울까 봐 겁난다”는 말을 농담처럼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가벼운 말이었지만, 그 가벼움 속에는 무거운 편견이 담겨 있었다.


대부분의 강사들은 1년의 계약 기간을 채웠다.

하지만 에이드리언은 내가 그 반에 들어간 지 두 달 만에 학원에서 사라졌다.


그가 떠난 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를 일찍 떠나보낸 것은 실력이 아니라 우리 사회 어딘가에 고요히 깔려 있는 인종적 거리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더 부끄럽게도, 내가 그를 온전히 신뢰하기 시작한 순간이 ‘아이비리그 출신’이라는 이력을 확인한 뒤였다는 사실을.


나는 그를 한 사람으로 보기 전에, 먼저 ‘증명서’를 확인하고 있었다.


계약 기간조차 채우지 못한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오래 남았다.

엘리베이터 문을 붙들고 서 있던 그의 정중한 손길과 낮게 울리던 목소리는, 어쩌면 내 안에 굳게 닫혀 있던 어떤 문을 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의 이력이 아니라 내가 어떤 시선으로 그를 재단하고 있는지 먼저 돌아보게 된다.


언어는 정신의 건축물이라고 했던 그 말처럼,

어쩌면 편견 또한

내가 무심히 쌓아 올린 구조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그 편견이라는 구조물을 조금씩 허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