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cm 높이를 내려놓으며

by 버티기





신발장을 열어 굽 높은 힐을 모두 꺼냈다.

한때는 나의 자부심이었고, 나를 조금 더 빛나게 했으며 결핍을 채워주던 사랑스러운 것들. 나는 그것들을 커다란 상자에 담았다. 생각보다 미련은 없었다.


나는 유난히 신발을 좋아했다.


옷 색깔에 맞추고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구두를 고르면, 현관을 나서는 발걸음부터 달라졌다. 7cm 높아진 세상의 공기는 내가 서 있던 땅보다 훨씬 상쾌하게 느껴졌다. 높은 굽 위에 올라서면 종아리 근육이 단단하게 긴장했고 허리는 자연스럽게 펴졌다. 그 긴장감이 나를 조금 더 당당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디자인이 예뻐서, 가죽이 고급스러워서, 혹은 내게 없는 색이라서. 그런 이유로 구두를 하나둘 모았다. 걸음걸이가 얌전치 못해 금세 구두코가 까지고 굽이 찢어지기 일쑤였지만, 구두 가게 앞을 그냥 지나친 적은 거의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구두를 탐했다.


왜 그랬을까.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 합창대회가 있던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은영이는 하얀 타이즈에 반짝이는 흰 구두를 신고 나타났다. 무대 위 조명이 닿을 때마다 그 구두는 유난히 밝게 빛났다.


신발 하나를 사면 바닥이 닳도록 신던 시절이었다. 외동딸이었던 그 아이의 세계는 나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딸부잣집 막내딸이었던 나는 늘 언니들의 옷과 신발을 물려받으며 자랐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던 아이에게, 은영이의 하얀 구두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닿지 못할 어떤 세계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어쩌면 그때 마음속에 각인된 하얀 구두의 환영이, 어른이 된 나를 끊임없이 구두 가게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뾰족한 코에 발을 밀어 넣으면 발가락이 비명을 질렀다. 새 구두를 신은 날이면 어김없이 뒤꿈치가 까져 피가 맺혔다. 한 걸음이 고통이었지만, 뒤꿈치에 밴드를 붙여가며 구두를 길들였다.


아니, 실은 구두에 내 발을 길들였다.


점원은 말했다. 구두는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는 그 말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 불편함을 고집한 채 수많은 날을 걸어왔다.


요즘은 시대가 변했다. 원피스나 정장 아래에 편안한 운동화를 신는 풍경이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자라지 못했다. 학창 시절 내내 딱딱한 학생용 구두를 신었고, 사회에 나와서도 ‘격식’이라는 이름의 구두를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최근에서야 나도 그 흐름에 슬쩍 올라타 운동화를 신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발은 비로소 신발과 싸우기를 멈췄다.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


‘나는 왜 그토록 나를 힘들게 하며 살아왔을까.’


상자 속에는 정이 깃든 예쁜 구두들이 가득하다. 구두마다 작은 사연이 하나씩 담겨 있다. 하지만 나를 옥죄고 아프게 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근사해도 이제는 놓아주기로 했다.


7cm의 높이를 내려놓는 대신, 나는 두 발로 지면을 온전히 느끼는 자유를 선택했다.


신발장이 비워진 만큼, 내 마음도 비로소 가벼워졌다.


이제 나는 밴드 없이도,

꼿꼿한 긴장 없이도,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