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를 듣는 법

덜어낸 뒤에야 들리는 것들

by 버티기





어느 해인가, 봄이 찾아오는데도 내 마음은 거꾸로 깊은 겨울을 향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유난히 차갑고 시린 계절이었다. 나무줄기마다 꽃봉오리가 속살을 밀어 올리던 날들, 나는 마치 그 봉오리가 된 것처럼 껍질을 벗겨내는 통증에 시달렸다. 가만히 있으면 뇌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주파수를 찾지 못해 웅웅거렸고, 전원을 끄지 못한 채 밤새 헛돌았다. 형체 없는 소음이 내면을 잠식해 갔다.


그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타인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북에 기대어 하루를 겨우 건너던 날들이었다. 머릿속 잡음을 덮기 위해, 또 다른 소리를 끊임없이 불러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소한 사고가 났다. 화장실 문고리에 유선 이어폰의 긴 줄이 걸렸다. 휴대폰이 허공에서 한 번 뒤집히더니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액정 위로 날카로운 금이 번져갔다.


깨진 화면을 들여다보던 아들이 무선 이어폰을 내밀었다.


“엄마, 요즘 누가 유선을 써요. 이거 남는 거니까 한번 써봐요.”


아들이 연결해 준 무선 이어폰은 내게 신세계였다. 소리는 하나의 층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쌓여 있었다. 귀를 막는 순간 바깥세상의 소음은 밀려나고, 내가 선택한 소리만이 선명하게 부풀어 올랐다. 나는 그 안으로 조용히 잠겨 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더 깊이, 더 오래. 소리의 바다 밑바닥을 향해 잠수하듯 내려갔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고요를 잃은 자리를 소리로 채우느라 내 귀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무덥던 여름날, 갑자기 세상의 주파수가 어긋났다. 양쪽 귀의 균형이 무너지며 기분 나쁜 지직거림이 스며들었다. 한쪽씩 귀를 막아보니 오른쪽 귀가 마치 깊은 물속에 잠긴 듯 아득하게 멀어져 있었다.


다음 날 찾은 이비인후과. 의자 하나 겨우 들어가는 어두운 밀실에 앉아 청력 검사를 받았다. 헤드셋 너머로 들릴 듯 말 듯한 신호를 좇으며 버튼을 눌렀다. 소리를 ‘듣는다’기보다 ‘붙잡는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놓치지 않으려 온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결과는 차가웠다. 난청. 그것도 특정 음역대가 급격히 떨어진 상태였다.


의사는 진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고막 주사를 놓아보자고 했다.


고막에 바늘을 찌른다는 말에 숨이 막혔지만, 망설일 여지는 없었다. 침대에 옆으로 누워 눈을 꼭 감았다.


스스슥.


마취약이 고막에 닿는 소리가 머릿속을 긁고 지나갔다. 보이지 않는 감각은 더 또렷하게 살아났다.


쓱, 툭.


아주 짧고 단단한 순간. 고막이 뚫리는 감각과 함께 차가운 액체가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와 동시에 세상이 기울었다. 몸이 형태를 잃고 어딘가로 흘러내리는 느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한참을 누워 있어야 했다. 다시는 예전처럼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껴안은 채로.


며칠 동안 같은 시술을 반복하고, 약을 한 움큼씩 삼키며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검사실에 앉았을 때, 처음보다 덜 애쓰고도 신호를 들을 수 있었다. 소리는 여전히 작았지만, 분명히 나에게 도착하고 있었다.


그제야 알게 됐다.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능동적인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애써야 하는 일인지.


돌아보니 나는 늘 소음 속에 살고 있었다. 달리는 차 안의 진동, 식당의 웅성거림, 습관처럼 켜둔 텔레비전 소리. 그리고 그 위에 또 다른 소리를 덧씌우며 스스로를 단 한 순간도 쉬게 하지 않았다. 내 안의 소음을 덮겠다는 이유로, 바깥의 소음을 끌어들이며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고막에 바늘이 닿던 그 날카로운 순간 이후, 나는 소리를 덜어내기 시작했다.


이어폰으로 귀를 가두는 대신 소리의 볼륨을 낮춘다. 무언가를 틀어놓기보다, 아무것도 틀지 않는 시간을 견뎌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아 불안했지만,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 공백 안에도 여전히 많은 것이 남아 있었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이웃의 생활 기척, 그리고 아주 늦게야 들리기 시작한 내 몸의 작은 신호까지.


나는 그제야, 들을 수 있는 상태를 함부로 소비해 왔다는 걸 알았다.


껍질을 벗겨내는 통증이 지나간 자리에서, 비로소 나는 그 낮은 신호들에 온 마음을 다해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