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76년 만에 헬리혜성이 지구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가족들은 모두 무심히 지나쳤지만, 나는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했다.
아나운서가 뱉은 '오늘 밤'이라는 말은, 우주가 나에게 건넨 은밀한 약속처럼 들렸다.
오늘 만나지 못하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약속.
혜성.
태양의 중력에 붙들려 있으면서도 끝내 먼 우주로 달아나는 그 당돌함이 좋았다.
뜨거운 태양에 잡아먹힐 듯 가까이 다가갔다가, 온몸을 불사르며 긴 꼬리를 남기고 도망치는 그 궤적.
그 난데없음은 내가 꿈꾸던 자유의 형상이었다.
조악한 천체 사진 속에서도
그 위태로운 역동성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날 밤,
'무모함'이라는 옷을 껴입고 아무도 모르게 옥상으로 올라갔다.
목이 꺾이도록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주가 허락할 눈부신 장면을 기다렸다.
하지만 '오늘 밤'에 만나기로 한 혜성은 끝내 오지 않았다.
서울의 밤하늘이 너무 밝아서였는지,
아니면 애초에 나와의 약속 같은 건 없었는지.
시간이 흘러, 10년 전 어느 겨울밤.
다시 한번 우주의 약속에 흔들렸다.
68년 만에 찾아온다는 '엑스트라 슈퍼문'.
다시 18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자정을 넘긴 시간임에도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밝았지만,
기대했던 쟁반만 한 크기는 아니었다.
그저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달.
그걸 바라보다가, 문득
30년 전 옥상 위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내가 떠올랐다.
나는 살면서 수많은 '주기'를 기다린다.
76년의 혜성,
68년의 달.
그 숫자들이 주는 아득함에 이끌려
몇 번이고 기꺼이 바깥으로 나선다.
그리고 번번이
생각보다 담백한 장면과 마주한다.
쟁반만 한 달은 없었지만,
그날 밤 내가 본 것은
조금 더 선명해진 달의 민낯,
그리고 여전히 무언가를 기다리며
고개를 들 줄 아는 나의 모습이었다.
젊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미지의 경이로움을 향해 문을 연다.
혜성을 만나지 못해도,
달이 기대만큼 크지 않아도 괜찮다.
궤도를 도는 것은 천체만이 아니었으니까.
나 역시
설렘과 실망의 궤도를 오가며,
몇 번이고 무너졌다가도 다시 고개를 들고,
보이지 않는 빛을 향해 계속 움직이고 있으니까.
어쩌면 나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을 빛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