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시간 속에 살고 있는 너에게
무협소설이나 만화를 보면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소중한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결계를 친다.
때로는 힘이 센 악귀를 봉인하기도 한다.
내게도 결계가 있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무엇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거의 평생을
그 결계 안에서 살아왔다.
늘 불안했고
좋은 엄마가 되는 일은
버겁기만 했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나를 찾는 여정은 짙은 안갯속을 걷는 것 같았다.
그 길 위에서
내가 부르던 나의 이름은 늘 하나였다.
미운 오리새끼.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전,
부모님과 형제들은 함께 중국 여행을 갔다.
그곳에서였다.
평소에 감정 표현이 크지 않은 엄마.
나이가 들수록, 특히 밖에서는 더 그렇다.
언니들이 엄마와 사진을 찍을 때도
엄마는 웃지도 않았고 무표정이었다.
나도 무표정인 엄마 옆으로 가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 순간
엄마가 내 몸통을
꼭 끌어안았다.
언니들과 사진 찍을 때와는 달리
엄마가 활짝 웃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때
나를 오래 가두고 있던 결계가
한순간에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의 엄마는
분명히 나를 사랑하고 있다.
내 기억이 붙잡아 두었던 엄마가 아니라
흘러간 시간 속에서
엄마는 늘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결계가 풀린 뒤
나의 세상은 한결 가벼워졌다.
성격심리학자들은
여섯 살 이전의 기억이
한 사람의 성격과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한 그 시절에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묶여 있었던 걸까.
문득
내 아이가 떠올랐다.
아이 역시
나를 어느 한 시기의 나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숙했고
불안했고
충분하지 않았던 나.
그때의 나로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에도
어쩌면 결계가 쳐져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사람을 변화시키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가 가장 힘들어하던 모습으로
기억한 채 살아간다.
그 결계 안에 오래 머물렀기에
이제 나는 알 것 같다.
결계는
머리로 이해해서
풀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로 설명한다고
단번에 풀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마도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가만히 인내하며
기다려 줄 차례인지도 모른다.
그 아이의 결계는
언제쯤 풀릴까.
애써 풀려하지 않고
말로 증명하려 하지 않으며,
지금의 나로
조용히 기다리며 살아가다 보면
그 결계가
자연스럽게
느슨해질 시간을 기다려본다.
결계는
힘으로 깨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스스로 풀리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