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활짝 열어도 이제는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는다. 겨울이 완전히 물러갔다는 뜻이다.
묵은 먼지를 내보내고, 집 안을 봄 공기로 채운다. 깨끗해진 자리에 봄을 들이려고 내가 향하는 곳은 늘 화원이다.
생화를 보기 좋게 꽂아두는 것도 좋지만, 그 시간은 너무 짧고 손이 많이 간다. 그에 비해 서양난은 화려한 모습으로 공간을 채우며 오랜 시간을 견뎌준다.
우리 집 환경이 낯선지, 내 손길이 어설픈 탓인지 이듬해 꽃대를 올리는 일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일 년에 두어 번 난을 들이는 일은 나에게 주는 고운 선물이다.
그날, 나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아바타'라는 이름의 호접란이었다.
영화 속 나비족을 닮은 듯한 신비로운 푸른빛. 그 위에 보라색으로 살짝 물든 입술은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어떤 날은 순백의 순결함에 끌리고,
어떤 날은 화사한 노랑에,
또 어떤 날은 수줍은 분홍빛에 마음이 움직였지만,
그날은 유독 그 푸른 얼굴의 '아바타'가
나를 불렀다.
다른 난보다 값이 조금 더 나갔지만
무엇에 홀린 듯 나의 지갑은 이미 열려 있었다.
그렇게 내 품에 안긴 '아바타'는
깨끗해진 거실 한쪽을 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늘 그래왔듯, 오늘을 기념하며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그 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어떻게 이런 색이 나올 수 있을까.'
유전적인 개량을 떠올렸지만,
AI의 대답은 더 단순하고 차가웠다.
그 색은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뿌리나 줄기로 주입된 염료가
물관을 따라 올라온 결과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바라본 '아바타'는
조금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식물은 동물처럼 통각을 느끼지 않고,
그 색 또한 영원하지 않아
다음에 피어날 꽃은
다시 본래의 흰색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몇 해 전 기억이 떠올랐다.
남편은 정성껏 열대어를 키웠다.
가끔 열대어를 파는 곳이 보이면
이곳저곳 기웃거리던 무렵이었다.
어떤 대형 마트 수조에
유독 눈길을 끄는 물고기가 있었다.
하얀 몸에 파랑이나 분홍으로 물든 지느러미를 가진 아이들.
아름답다고 느끼기보다,
그 색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끝내 데려오지 못했던 기억.
그때는 사지 않았고,
오늘은 망설임 없이 샀다.
자연에는 없는 색을 입은 난을 보며
나는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흰 호접란 위에,
사람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덧입혀진 푸른색.
또다시 생각은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세상이 요구하는 색으로 나를 물들이고,
본래의 모습과는 다른 가면을 쓴 채
그것이 나인 것처럼, 내가 그것인 것처럼
존재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면
그 가면을 계속 쓰고 있어야 할까,
아니면 벗어야 할까.
스스로 낸 색은 아니지만,
그 푸른빛을 내기 위해
푸른 물을 머금었을 난의 시간을 떠올려본다.
그게 너의 진짜 모습이 아니면 어떠랴.
그 수고로운 시간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을.
처음의 화려하고 신비로운 모습 대신,
조금은 안쓰럽고 애잔한 빛으로
거실 한쪽에 자리 잡은 '아바타'를
가만히 눈으로 쓰다듬는다.
고마워.
그리고 이제는,
맑은 물만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