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녘

by 버티기





하늘의 색은

시간을 입고 변한다


태양빛이 공기를 지날 때

짧은 파장의 파랑은

작은 분자들과 부딪혀

이리저리 튕기며 흩어진다


넘치는 에너지로

하늘을 채운다



긴 파장의 붉은색은

서두르지 않는다


거의 부딪히지 않고

조용히

더 멀리

더 멀리


대기를 뚫고

우리 눈에 는다






맑은 날

파란 하늘은

마음을 가볍게 들어 올린다


찌뿌둥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날

고개를 들어

그 에너지를 받아본다




해 질 녘

빛이 옆으로 깊숙이 스며들면

하루는

비로소

운치를 얻는다


무엇이 바빴는지

무엇이 중요했는지도 모른 채

지나오다가


붉게 물든 노을 앞에서

잠시

멈춘다





부딪히며 흩어지는

짧은 파장의 하늘은

젊은 시간


멀리 실려와

끝내 닿는

긴 파장의 빛은

황혼의 시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빛나고


저마다

자기 색으로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