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쇄기

by 버티기







후배의 아버님이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상심이 컸겠다는 말과 함께

뒷정리는 잘 마쳤느냐고 물었다.


생전에 이미

모든 걸 정리해 두셔서

정리할 게 없었다고 했다.


얼마나 정갈한 사람이었을까.


집에 돌아와

나를 보았다.


손 편지. 일기장. 졸업장.

내겐 차마 버리기 어려운 것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


'추억'이라 이름으로

나는 꽤 많은 쓰레기를

모아두고 살았다.


사무실의 파쇄기기 떠올랐다.

정리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도구였다.


읽으며 하나씩

추억들을 놓아주기로 했다.


가정용 파쇄기를 주문했다.

계획대로 될 줄 알았다.


성능은 좋았지만

작동 시간은 단 3분.


추억을 되새기며

파쇄하길 반복했지만

어림없었다.





며칠 뒤

성격이 시원시원한 조카를 만났다.

파쇄기 이야기를 하자

이렇게 말했다.


"이모!

그냥 종량제 봉투에 버려.

어차피 다 태우는 거야.

뭘 그렇게 쓸데없는데 에너지를 쓰고 그래?

시간이 남는구먼, 남아!"


그렇네.


어차피 쓰레기였다.

이제부터는

쓰레기를 모으며

살지 말아야겠다.


미련 말고

오늘을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