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죽기 좋은 날

그다이가 가르쳐준 세상

by 버티기





새로운 원어민 선생님이 왔다. 서른다섯 즈음되어 보이는 호주 사람, 앤디(Endy)였다. 미국식 영어 발음에만 익숙해진 우리에게 호주 억양은 영 알아듣기 힘든 외계어와 같았다. 수강생들 사이에서는 금세 수군거림이 시작됐다.


"아니, 왜 표준 영어 발음 하는 원어민이 아닌 거야? 우리가 돈 내고 호주 사투리를 배워야 해?"


심지어 원장에게 미국인이나 캐나다인으로 바꿔달라고 항의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원장은 다양한 발음을 접해야 진짜 귀가 트인다며 수강생들을 달랬지만, 강의실의 냉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논란의 주인공인 앤디는 그런 기류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친절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웃을 때마다 입가에 지는 주름이 로버트 드 니로를 빼닮은 그는, 수업을 시작할 때면 늘 활기차게 인사했다.


"G’day!"


우리 귀에는 영락없는 "그다이"였다. 하지만 그 낯선 소리도 매일 듣다 보니 차츰 그 리듬을 알 것도 같았다. 어느 날, 그는 우리에게 호주식 언어유희 하나를 가르쳐주었다.


“It’s a good day, today.”


그의 입을 거친 문장은 '치아 귿 다이 토 다이'처럼 들렸다. 얼핏 들으면 '오늘은 죽기 좋은 날(Good day to die)'처럼 인식되는 그 절묘한 발음의 차이. 그의 위트 있는 설명에 꽁해 있던 수강생들의 마음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수많은 나라가 전부 미국식 영어를 쓰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미국식 영어가 격이 떨어진다 말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고유한 억양에 자부심을 느낀다. 성인이 되어 배우는 언어에 완벽한 '표준'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가 내뱉는 문장 속에는 결국 나만의 고유한 엑센트가 남기 마련이니까.


요즘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들이 많다. 그들의 발음이 한국인과 똑같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의 말을 못 알아듣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서툰 발음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진심과 노력을 읽어낸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에 비친 조각하늘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다. 앤디의 "그다이"는 내가 가두어 두었던 그 좁은 우물을 깨부수는 유쾌한 망치였다. 언어란 정답을 맞히는 시험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소음이라는 것.


그 편협함을 떨쳐낸 자리에는 비로소 진짜 넓은 하늘이 들어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