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찾아왔다

벌 치는 수학선생, 김쌤의 행복한 꿀벌사랑

by 이승숙


우리 집에 벌이 찾아왔어요.

2015년 5월의 이야기예요.


그 전해(2014년) 봄에 매실청(매실 효소)을 만들었답니다.

매실에 설탕을 섞어 항아리에 담아놓고 석 달 동안 기다립니다.

한 번씩 매실과 설탕이 잘 섞이도록 아래 위로 섞어주면서 기다리면 매실청이 됩니다.

그렇게 석 달을 기다렸다 매실청만 따라서 병에 담아놓고 매실 건더기는 버립니다.

과즙이 다 빠져나온 건더기는 쓸 데가 없거든요.


일은 잘 벌리지만 끝마무리는 대충 해버리는 내 버릇이 매실청 담기에도 나타났어요.

건더기를 버리고 항아리를 깨끗하게 씻어놔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놔뒀지 뭐예요.

사실 매실 건더기를 버리자니 조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과육 중에는 먹을만 한 것들도 더러 있었거든요.

씨를 발라내고 고추장에 버무리면 새콤달콤한 매실 장아찌가 되겠다 싶어서 놔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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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에는 아깝고 그렇다고 다듬어서 장아찌로 만들자니 손이 많이 갈 것 같고,

매실 건더기는 마치 '계륵' 같았어요.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한 해를 묵히게 되어, 그 다음 해 5월까지 그냥 그대로 둔 거였어요.

그건데 그게 글쎄 벌을 꼬여 들일 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2015년 5월 초였어요.

매실청을 담궜던 항아리에 벌이 들락거리지 뭐예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살펴 봤더니 세상에나, 항아리 안에 벌이 소복히 들어있었어요.

우리 집에 벌이 들어 온 거였어요.

당장 김쌤에게 알렸어요.

"지금 집에 벌이 들어왔어. 매실효소 담궜던 빈 항아리에 벌들이 잔뜩 들어와 있어."

그렇게 문자를 보냈더니 김쌤이 당장 답장을 보냈어요.

"벌이 들어왔다고? 벌이 오면 좋은 일이 생긴다 그러든데, 올해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생길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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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이던 김쌤은 궁금해서 몸이 달 지경이었는지 사진을 좀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항아리 가까이로 가서 사진을 막 찍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요.

바짝 얼굴을 들이밀고 가까이 가는데도 어느 한 마리 적대적인 응대를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우리 집에 벌이 찾아들었고, 그후 우리는 벌과 함께 하게 되었어요.

그로부터 5년, 우리 집에는 벌통만 해도 60개가 넘을 정도로 백만 대군의 봉군(蜂群)을 거느린 영주(領主)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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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한 해의 계획을 우리에게 맞춰 짰어요.

방학이 되면 배낭을 꾸려 여행을 떠났어요.

열흘도 좋고 보름을 넘어서까지 낯선 나라의 도시를 구경하며 다녔어요.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게 '벌'에 맞춰져 있습니다.

벌이 활동하는 동안에는 집을 오래 비울 수 없습니다.

벌들이 월동에 들어가면 비로소 우리에게 방학이 생깁니다.


올 겨울에는 베트남 북부와 태국을 두어 달 동안 여행할 생각입니다.

벌들이 깨어날 때쯤 우리도 집에 돌아와 다시 한 해를 시작할 겁니다.

그때까지 저는 벌에 관한 책을 읽을 겁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벌과 함께 하는 나날을 아름답게 그릴 생각입니다.


그대여, 벌이 잉잉대는 평화로운 한낮을 그려보세요.

저절로 눈이 감기고 따뜻한 미소가 입 가에 번질겁니다.

저와 함께 벌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으실래요?

자, 그럼 벌이 잉잉대는 '이니스피리의 호도'로 날아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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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 / 예이츠



나 이제 가련다, 이니스프리로 가련다
진흙과 나뭇가지로 작은 집 짓고,
아홉 이랑 콩밭 갈고 꿀벌도 치며,
벌이 노래하는 숲 속에서 홀로 살련다


그러면 내 마음 평화로우리
안개 낀 아침부터 귀뚜라미 우는 저녁때까지
그곳은 밤중조차 훤하고 낮은 보랏빛,
저녁에는 홍방울새 가득히 날고


나는 이제 가련다 밤이나 낮이나
기슭에 나지막이 호숫물 찰싹이는 소리
가로에서나 잿빛 포도(鋪道) 에서나
가슴속 깊이 그 소리만 들리나니


.

.

.

'이니스프리 호도'는 아일랜드에 있는 작은 호수의 섬 입니다.

예이츠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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