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 씨와 같이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는 강화읍내의 골목길을 걸었습니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집들과 좁은 골목길이 정겨웠습니다. 강화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내내 도시에서만 살았던 미숙 씨는 길을 걷는 내내 감탄했습니다. 강화가 이렇게 아름다운 지 미처 몰랐다면서, 뒤늦게 찾아온 고향 사랑에 행복해 했습니다.
은수 우물을 지나 북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강화나들길 1코스의 한 부분이기도 한 이 산길은 오붓하고 고즈넉합니다. 읍내에서 한 발 비껴났을 뿐인데도 마치 심심산중인 양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제 멋대로 자란 소나무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있는 그 사이로 좁다란 산길이 나있습니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며 산길을 발밤발밤 걷습니다. 노란 꽃이 피어 있는 나무가 보입니다. 생강나무 꽃입니다. 생강나무의 뒤를 이어 봄꽃들이 다투어 필 것입니다. 진달래가 뒤따를 테고 조팝나무며 찔레나무며 온갖 생명들이 자기 앞의 생을 찬미할 것입니다.
산등성이를 따라 성벽이 길게 이어집니다.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강화산성입니다. 돌로 쌓은 이 성벽은 조선 숙종 때에 조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오래 전에 강화읍을 둘러싸고 성벽을 쌓았습니다.
1231년,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로 천도를 한 고려 조정은 내성과 외성, 그리고 중성을 쌓아 적으로부터의 침략에 대비했습니다. 몽골은 화친의 조건으로 강화의 성을 모두 헐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강화산성은 헐렸습니다. 이후 조선 숙종 때 성을 보수하면서 토성이었던 강화산성을 돌로 다시 쌓았습니다.
강화산성의 성벽을 따라 걷습니다. 산마루에 올라서자 북녘 땅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황해도의 산과 들입니다. 황해도를 그려봅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곳의 산과 들이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바다를 가운데 두고 떨어져 있지만 원래는 한 몸뚱이였을 황해도와 강화도입니다. 바다 밑으로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을 테니 둘은 한 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생산되는 농작물들도 비슷할 겁니다. 6년근 강화인삼은 개성인삼에서 비롯된 것이고 음식 맛 역시 엇비슷하지 않을까요. 깔끔하고 바지런한 강화 사람들의 처세술 역시 개성 사람과 닮았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노라니 멀게 느껴졌던 북한이 지척인 듯 가깝게 여겨집니다.
그곳에도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내 또래 부인네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아들 딸 잘 키워 시집 장가보내고, 이제는 손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지는 않을까요. 웃음꽃이 활짝 피었을 그네들의 얼굴이 그려집니다.
우리와 같은 말, 같은 글자를 쓰니 이름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숙’이도 있고 ‘자’야도 있을 겁니다. ‘옥’이며 ‘희’야는 없을까요. 갑자기 나와 같은 이름을 가졌을 북한 땅의 ‘숙’이가 궁금해집니다.
북녘 땅을 향해 큰소리로 불러봅니다. “숙아~~, 북녘 땅에 사는 내 친구 숙아, 잘 있니?” 그런 나를 따라 미숙 씨도 손나발을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숙아, 내 친구야, 반갑다~~.”
그렇게 이름을 부르노라니 추상적으로만 느껴지던 북녘 땅의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마음입니다.
그곳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김해 김 씨도 있고 전주 이 씨도 있습니다. 밀양 박 씨는 물론이고 경주 최 씨며 진주 강 씨 등도 있겠지요. 우리나라 성씨 중에서 ‘김이박’ 씨가 가장 많다는데, 북한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그 외에도 여러 성 씨들이 어울려서 살고 있을 겁니다.
미숙 씨와 같은 청주 한 씨도 있을 겁니다. 저와 본관이 같은 사람도 있을 터이지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모두 한 형제 한 핏줄입니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는데, 북한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우리의 먼 친척이고 집안일 겝니다.
다시 한 번 불러 봅니다. “북녘 땅의 내 친구 숙아~~.” 그러자 마치 진짜 내 친구인 듯 그들이 다가옵니다. 북쪽 땅의 내 친구 ‘숙’이에게 말을 건넵니다.
“이제야 네가 있다는 걸 알았어. 너도 나와 마찬가지로 자식 낳고 키우며 잘 살고 있지? 며느리와 사위는 봤니? 손주는 몇을 두었니?”
산마루에 서서 북녘 땅을 바라봅니다. 그곳엔 나와 이름도 같고 나이도 같은 또 다른 ‘숙’이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짐작도 안 되지만, 만날 그 날까지 건강하게 잘 살기를 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