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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숙 Oct 27. 2022

눈에 불을 켠 호랑이가 지켜주는 '인화보'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인화보

올해는 임인년(壬寅年), 호랑이의 해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동물로 산신으로 모시는 등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호환(虎患)으로 인해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호랑이에 대한 전설도 많고 호랑이와 연관된 땅 이름 역시 많다.


강화에도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이 있으니 강화군 양사면의 '인화리(寅火里)'가 바로 그곳이다. 인화리의 '인(寅)'은 호랑이 곧 범을 뜻하는 한자어이고 '인화(寅火)'는 범의 눈에서 나는 빛이라는 뜻이다. 뭍도 아닌 섬에 무슨 호랑이가 있다고 동네 이름에 호랑이 '인'자를 다 붙였을까. 임인년 새해를 맞아, 지난 9일 강화 양사면의 인화리에 다녀왔다. 

             

▲  범 바위가 지켜주는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


       



인화리는 강화도 서북단 끝에 위치한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동네 앞에는 바다가 있고 건너편에는 교동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 황해도 연백반도도 빤히 바라보인다. 그래서 예전에는 교동도와 연백으로 가는 배가 이곳 인화나루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인화리 바닷가 쪽으로 튀어나온 높다란 언덕에는 큰 암반 위에 커다란 범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풀쩍 뛰어올라 바다를 건널 기세다. 짙은 검은색의 바위 색깔하며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범이다. 지긋이 바다를 응시하고 있는 범을 보니 왜 이곳이 '인화리'인지 알겠다.

             

▲  인화리 인화석진(범 바위)


      



조선 정조 8년(1783년), 강화유수였던 김노진이 간행한 <강화부지>에는 "남쪽을 향한 바위가 있는데 호랑이 모양이어서 인화석진(寅火石津)이라고 부른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호랑이가 지켜보고 있는 바다여서 그런지 인화리 앞바다는 물살이 꽤 세다. 그 옛날 뱃길로 교동도와 황해도 연백으로 갈 때면 호랑이바위 근처에 있던 당집에 재를 올리고 배를 띄웠을 것도 같다.

 

인화리에서 건너다 보이는 교동도는 조선시대 왕족들의 유배지였다. 유배형은 고려와 조선시대 중죄인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형벌이었다. 주로 정치범들을 유배 보냈는데, 섬이 바로 최적지였다. 그중 교동도는 도성인 한양에서 멀지 않아 중죄인의 동태를 감찰하기에 좋아서 조선시대에는 연산군과 광해군을 비롯해서 안평대군, 능창대군, 영창대군 등이 교동도에서 유배형을 살았다.

             

▲  강화군 양사면 인화리와 교동도를 이어주는 "교동대교"


        


 

폭정을 하다 왕좌에서 끌어내려진 연산군도 교동도로 유배를 갔고 광해군의 유배지 역시 교동도였다. 최고 권력자에서 하루아침에 땅에 메다 꽂힌 두 사람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유배를 가는 두 폐군의 눈물이 인화리 앞바다에 떨어졌을 듯하다.


인화리에는 조선시대 군사시설인 '인화보'와 '인화포대', 그리고 '인화돈대'가 있었다. 조선 숙종은 한양을 지키기 위해 강화도를 요새화 했다. 48개의 돈대를 해안가에 촘촘히 축조해 강화를 난공불락의 성으로 만들었다.

             

▲  바다 멀리 황해도 연백이 보인다.


        


 


강화에는 5진 7보 54개의 돈대가 있는데 진과 보가 지금의 대대와 중대 규모의 상급 부대였다면 돈대는 그 아래 속해 있는 소대 급의 군사시설이었다. 인화보(寅火堡)는 인화돈, 광암돈, 구등곶돈, 작성돈, 무태돈 등 모두 5개의 돈대를 관할했다.


인화보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인화보가 있었으리라고 짐작되는 곳에는 집들이 들어서 있다. 산을 깎고 언덕을 뭉개서 택지를 만들고 집을 지었다. 그래서 인화보는 기록 속에서만 존재할 뿐 실제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  인화보가 있었던 자리에는 집들이 들어섰다.


        

 


주택지를 지나 높다란 언덕에 오르면 범 바위가 있다. <강화부지>에서 말했던 그 '인화석진'이다. 바다를 응시하며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범이다. 크고 검은 범 한 마리가 금방이라도 튀어오를 것 같다.  


눈에 불을 켜고 이 바다를 지켜줬던 범 바위다. 사람이 살기 이전부터 바위는 그 자리에서 묵묵히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역사 이후에도 범 바위는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탐욕의 손길이 지금 범 바위를 갉아먹고 있는 것 같다. 범 바위 바짝 아래까지 산을 깎아 집을 지었다.


세세년년 그 자리에서 우리 땅, 우리 바다를 지켜주었던 범 바위였다. 교동도로 가던 연산군과 광해군의 눈물도 보았을 바위다. 340여 년 전, 인화보며 인화돈대를 축조하던 선인들의 피와 땀 역시 지켜봤던 범 바위다.


전쟁이 나서 총알이 날아가던 것도 바위는 지켜봤다. 그 후 70년, 배 한 척 다니지 않는 바다를 범 바위는 묵묵히 응시한다. 바닷가에 가시 철망을 치고 사람 하나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놓은 것도 범 바위는 지켜봤다.


범 바위 앞에 서서 바다를 내려다 봤다. 둥실 다리가 떠 있다. 2014년에 개통한 교동대교다. 이제 인화나루에는 배 대신 차들이 다리 위를 달린다. 인화석진 범 바위는 오늘도 묵묵히 바다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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