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거미
오늘 아침에도 김선생(남편)은 거미줄 걷는 걸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장대를 휘두르며 여기저기에 있는 거미줄을 걷습니다.
"우리 집은 거미 천국이야. 전신에 거미줄이네."
거미줄만 걷어도 될 텐데 그는 거미까지 잡아 죽입니다. 김선생에게 거미는 아무 상관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에게 거미는 없애야 할 대상입니다.
거미줄 걷기, 하루의 시작
거미에게 죄가 있다면 거미줄에 걸린 꿀벌들을 잡아먹은 것밖에 없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한 일인데 그 일로 날마다 집이 부수어지고 일터가 다 망가집니다. 심지어 목숨까지 왔다 갔다 합니다. 꿀벌에게는 든든한 한 편이 있지만 거미에게는 뒷배를 봐주는 한 편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하는 일입니다.
꿀벌을 치기 시작하고부터 거미는 없애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둘은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먹고 먹히고’의 자연계의 지엄한 순리는 인간이 끼어드는 순간 더 이상 순리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간섭하면서 적과 동지가 생겼습니다.
농약도 비료도 주지 않고 자연 그대로 놔둔 채 지낸 지 20여 년째인 우리 집은 곤충들과 벌레들에겐 살기 좋은 곳일 겁니다. 집과 마당은 물론이고 텃밭까지 완전 청정지대입니다. 땅 속에는 두더지, 지렁이, 땅강아지 등이 살고 있고, 땅 위에는 진딧물이며 개미, 거미 등등 온갖 벌레들이 제가끔 제 자리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적과 동지, 그 구분은?
그들이 있어도 괜찮았습니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사이가 아니니 오히려 그들의 존재가 고맙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벌을 치고부터 거미는 없애야 할 '적'이 되었습니다. 거미가 벌을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편은 저렇게 아침마다 거미줄을 걷습니다.
거미는 매우 영리합니다. 거미줄을 치는 장소를 물색하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거미는 아무데나 거미줄을 치지 않습니다. 날벌레들이 날아다니는 길에 거미줄을 칩니다.
'해질 무렵에 왕거미가 나타났다. 엉금엉금 기어 나와 한참을 웅크리고 정황을 살피는 듯하더니 안테나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사시나무가 있는 남쪽으로 항문을 향하고는 실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북동풍이 그 하느작거리는 실을 날리고 날려 마침내 사시나무의 높은 가지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서 한 가지 발견한 사실은, 이놈은 아래 있을 때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미리 눈치를 채고 안테나로 올라갔다는 점이다. 만약 바람이 반대 방향으로 불었다면 (안테나가 아니라) 사시나무로 올라갔을 것임에 틀림없다.'
- 장돈식, 학고재, '빈산엔 노랑꽃' 69쪽에서
거미줄은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습니다. 거미는 힘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거미줄을 치느냐에 자신의 생존이 걸려 있는데 어떻게 아무데나 함부로 거미줄을 치겠습니까.
꼭 있어야 할 자리
거미줄은 늘 있는 그 자리에 있습니다. 어제 분명 걷었는데 오늘 아침에 가보면 또 있습니다. 그 자리가 최적지라서 그랬겠지요.
꿀벌을 위해 거미줄을 걷었습니다. 거미가 꿀벌을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거미줄을 걷고 거미를 없앤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닙니다. 꿀벌을 잡아먹는 천적은 거미 말고도 많습니다. 두꺼비와 개구리도 꿀벌을 사냥합니다. 잠자리며 사마귀도 꿀벌에겐 무서운 존재입니다. 가을이면 찾아오는 장수말벌은 벌통을 초토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더 무서운 게 있습니다. 농약입니다. 거미나 말벌 등등은 꿀벌을 몰살시키지는 않는데 농약은 꿀벌 집단의 생존 자체를 위협합니다.
농부는 농사의 효율성과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농약을 칩니다. 해충을 없애기 위해 살충제를 치고 살균제도 뿌립니다. 잡초가 나고 자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초제도 칩니다. 그 외에도 여러 종류의 농약들을 살포합니다.
농약, 침묵의 봄을 부를 수도
꿀벌은 반경 2킬로미터를 이동하며 꿀을 모읍니다. 그러다보니 농약에 진간접적으로 노출돼 피해를 입게 됩니다. 농약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친환경 농약이 개발되었지만 꿀벌에게는 친환경이 아닙니다.
레이첼 카슨이 1962년에 쓴 책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는 농약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는 농약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리면서 “이들 농약이 새소리도, 꿀벌의 날갯짓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봄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꿀벌을 지키기 위해 거미줄을 걷었습니다. 집 주변 풀숲에 모기가 극성스럽게 창궐해도 참고 넘깁니다. 그러나 동네 이웃들이 논과 밭에 치는 농약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꿀벌 농사가 중하듯 그들에게도 농사가 중하기 때문입니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립니다. 장대를 들고 매일 거미줄을 걷던 남편도 오늘은 쉽니다. 비가 내리니 벌들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거미 역시 활동하지 않습니다. 지난밤에 쳐둔 거미줄에 조롱조롱 맺힌 물방울이 아름답습니다. 비가 내려 우리 집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