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나무 순이 피었다며 보러 오라는 김선생의 말을 듣고 집 옆의 밭으로 가봤습니다.
김선생의 말마따나 음나무 순이 따먹기에 딱 알마춤하게 피어 있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새끼 손톱만큼도 올라오지 않았는데, 언제 저렇게 큰 걸까요.
구경만 할 생각으로 밭에 갔는데 순을 보자 그냥 올 수가 없었습니다.
순을 담을 봉지나 그릇이 없는데도 나는 그 자리에서 순을 따기 시작했습니다.
새 순이라고 했지만 여기서 말하는 새 순은 나무 가지의 맨 끝부분에 있는 순을 뜻합니다.
가지의 중간에 나는 새 순은 크기가 실하지 않아 대개 새 순 따기는 가지의 끝부분에 난 것을 최고로 칩니다.
가지 끝에 난 새 순은 크고 실합니다.
가지가 자라나가는 부분이라 순 또한 크고 좋겠지요.
그 부분의 새 순을 똑 딸 때면 나무에게 좀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생장점을 꺽어버리는 것이나 매한가지이니 나무에게는 안 좋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새 순이라면 모름지기 가지 끝에 난 실하고 통통한 것이 최고이니 안 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지 끝에 난 순만 똑똑 분질러 땄습니다.
음나무는 개두릅이라고도 불리는 나무입니다.
'개'자가 앞에 붙은 것으로 보면 두릅보다 한 긋 낮다는 의미로 읽힐 듯합니다.
하지만 개두릅, 즉 음나무 순은 그렇지 않습니다.
'개'자가 앞에 붙는 불명예를 당할 이유가 없는 나무입니다.
음나무에는 소염과 진통의 약성이 있어 신경통과 관절염을 완화시키는 약재로도 쓰입니다.
봄에 나오는 음나무의 햇순은 쌉사름하면서도 특유의 향긋한 맛이 있어 미식가들이 즐겨 찾습니다.
특히 햇순에는 무기질과 비타민 성분이 많아 활력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제 고향에서는 음나무를 '엉기나무'라고 불렀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 뒤안에는 아주 큰 엉기나무가 한 그루 서있었습니다.
얼마나 큰 나무였냐 하면 어른이 두 팔을 벌려 안아도 한 아름이 넘을 정도로 굵었습니다.
높이 역시 아주 높았습니다.
음나무가 25미터 정도까지 큰다고 하니 우리 집 엉기나무도 그 정도 높았을 것 같습니다.
휘거나 굽지도 않고 쭉 뻗은 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서있었습니다.
엉기나무는 관절에 좋다고 합니다.
엉기나무 가지와 닭을 한 솥에 넣고 푹 고아서 국물과 고기를 먹으면 관절염에 효과가 있어 민간에서는 조약으로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엉기나무의 가지를 얻으러 우리 집으로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이웃 동네 분들도 오셨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나무에 사다리를 기대 세워놓고 올라가서 가지를 쳤습니다.
나무가 워낙 크고 곧아서 사다리 꼭대기까지 올라가도 가지에 손이 닿지 않습니다.
긴 장대에 낫을 묶어 쳐야 할 만큼 엉기나무는 크고 높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엉기나무 가지를 치던 아버지가 다쳤습니다.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 목을 뒤로 꺽고 나무를 바라보며 가지를 치던 아버지 머리 위로 엉기나무 가지가 떨어져 내린 겁니다.
사다리 위에 서있었으니 피할 수도 없었습니다.
가시에 찔리는 것도 큰 일이었지만 사다리에서 떨어지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엉기나무는 가시가 촘촘히 나있습니다.
그 가시에 찔리면 얼마나 아픈지, 통증이 며칠은 갑니다.
아버지는 떨어져 내리는 가지를 보고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다리 위에 서있어서 꼼짝없이 가시가 달린 엉기나무 큰 가지를 덮어 썼습니다.
사다리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니 천만 다행이었지만 온 몸이 가시에 찔려 며칠 고생했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엉기나무 가지를 얻으러 오는 분들에게 직접 잘라서 가져 가시라고 했습니다.
제 마음 속 고향집에는 엉기나무가 있습니다.
제게는 엉기나무가 꿀벌로 다가옵니다.
(집 뒤안에 고라니가 놀러왔습니다.)
엉기나무에 꽃이 피면 어디서 알고 오는지 벌들이 찾아옵니다.
아주 큰 나무니까 꽃도 엄청나게 많이 피었습니다.
꿀벌들은 엉기나무꽃의 꿀을 얻으러 옵니다.
집에 있어도 벌들이 잉잉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얼마나 많이 왔으면 벌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 집까지 다 들렸을까요.
나른합니다. 잠이 솔솔 옵니다.
벌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잠이 듭니다.
꿀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직도 벌들의 축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