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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숙 Oct 08. 2021

여보 미안해, 보름만 혼자 살아볼게

[리뷰] 영화 <산티아고 가는 길>과 나의 제주도행



                              

덜컥 돈부터 입금했다. '제주도에서 보름 이상 살 수 있다니,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아'. 나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면서 일을 저질렀다. 이것저것 따지다보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 무조건 저지르고 봐야 한다.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돈부터 입금했던 것이다.     


그때, 2016년 6월에 제주도에 사는 지인이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집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이는 독신의 여성인데 해외여행을 자주 했다. 여행을 갈 때면 적당한 금액을 받고 자신의 집을 지인들에게 빌려주었다. 여행 경비에 보태기 위해 그렇게 했는데, 집을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 모두에게 좋은 방식이었다.  


정착민인 나, 유목민을 꿈 꾸다  


'제주도에서 살아보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을 때였다. 아예 거처를 옮겨 이사를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신기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들은 쉽게 거처를 옮길 수 있는 조건의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처럼 붙박이로 한 곳에 머물러 사는, 소위 정착민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의식 한 편에서는 유목민처럼 떠돌며 살고 싶다는 꿈이 자라고 있었던가 보았다. 그러니 '제주도 살이'를 그렇게 불쑥 저지르지 않았을까.     


제주도에서 살아볼 수 있다는 설렘은 얼마 안 가 고민거리가 되었다. 좋았던 것은 잠깐이었고 걱정이 나를 내리눌렀다. 남편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내 마음대로 일을 저절렀던 것이다.   

  



나 혼자 사는 게 아니니 남편과 의논해서 일을 진행하는 게 마땅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보통의 양식과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고 실천하는 삶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가족과 함께 하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게 보통의 사람들이 추구하고 누리는 삶이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그에게 제주에서 혼자 살아보겠다는 아내의 말은 낯설기만 할 것이다. 나중에 퇴직을 하면 그때 둘이서 좋은 곳에 가서 몇개 월씩 살아보자는 말은 늘 했었지만 그것은 지금 현재가 아닌 미래의 일이고, 더군다나 혼자가 아닌 둘이 같이 하는 계획이었다. 남편은 당혹감과 함께 배신감까지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마침 핑곗거리도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책 출간을 위해 그동안 써놓았던 글들을 수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해 가을까지는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데 집에서는 잘 되지가 않았다. 이렇게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다가는 영영 끝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었다. 그러던 차에 제주도행이 나왔으니, 얼싸 좋구나 하고 일을 저질렀다. 분위기 전환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집 놔두고 낯선 곳으로    

 

그날 저녁에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어이없어하며 화를 냈다.      


"아니, 집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집 놔두고 뭐 하러 남의 집에서 지낸다는 거야? 집에서 안 되던 글이 제주도에 간다고 될까? 그리고 당신 혼자서 지낸다고? 말도 안 돼."     


마지막 "말도 안 돼"라는 말은 실제로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 남편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아, 일은 저질러 놓았는데 수습할 일이 태산이었다. 동의도 구하지 않고 집부터 얻어놓았으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온갖 궁리를 하느라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그러던 차에 강화 동검도에 있는 예술영화관에서 <산티아고 가는 길>이란 제목의 영화를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산티아고라면 순례자의 길로 유명한 스페인의 그 길이 아니던가. 치유와 소통의 길로 널리 알려진 산티아고 길은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이름난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다.     


길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꾼다. <강화나들길>을 걸으며 알고 지내던 분이 800킬로미터에 달하는 그 길을 걷고 왔다는 소식도 그 당시 들었던 참이었다. 그 분은 직장에서 퇴직을 하자마자 오래 준비해왔던 그 길을 마침내 걸었다고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온 그 분의 얼굴은 스스로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빛이 났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란 제목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이 영화의 원 제목은 <The Way>다. <지옥의 묵시록>이란 영화에서 '윌러드 대위'로 나왔던 '마틴 쉰'이 주연을 한 이 영화는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했고,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이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안과 의사인 '톰'은 버클리대학 박사 과정을 하다가 그만둔 아들이 못마땅하다. 아들은 학교보다는 길에서 배움을 얻겠다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다. 그는 피레네 산맥을 넘다가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다. 아들의 사망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도대체 '카미노'가 무엇이길래 죽을지도 모르는 그 길을 아들이 걸었는지 알고 싶어 스페인으로 날아갔고, 유품으로 남아있는 아들의 배낭을 메고 순례길에 들어선다.  

   

꿈을 이루려면 꿈부터 꾸어야     


장장 80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길을, 걸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걷는다. 매일 25킬로미터 정도를 한 달 동안 걸어야 하는 길이다. 그러자면 순례에 나서기에 앞서 여러 달 혹은 여러 해에 걸쳐 걷기에 최적화된 몸을 만들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 길에 대한 꿈도 꾸어야 한다. 기다리고 갈망하며 꿈을 키우는 것이 곧 산티아고를 향한 준비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톰은 그 어느 것 하나 준비된 게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여정은 안 봐도 환히 알 수 있다. 다리가 아프고 몸이 힘든 것 이상으로 마음의 갈등도 많았을 것이다. '왜 아들은 이 길을 걸으려고 했을까. 이 길의 무엇이 아들을 불렀던 것일까'. 톰을 괴롭히는 것들은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길이 아닌 아들의 길을 대신 걷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인 것이다. 


결국 톰은 자신의 길을 걷는다. 아들이 못다 걸었던 길을 대신 걸었지만 그것은 아들의 길이 아니라 아버지 톰의 길이었다. 그 길은 아들을 알아가는 여정이기도 했고, 종래에는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 되었다. 길을 걸으면서 언뜻언뜻 세상을 떠난 아들과 마주친다. 바다를 앞둔 길의 끝에서 마침내 톰은 아들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도 화해한다. 길을 통한 화해였다.




 

삶은 각자 선택하는 것이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선택하고 걷는다. 우리가 선택한 그 길은 각자에게는 최선의 길이고 또 최고의 길인 것이다. 톰이 살아온 인생의 궤적이 톰에게 최선이었듯이 아들이 선택한 길 역시 아들에게는 최선이었고 최고였다. 어쩌면 아버지인 톰은 그것을 느낀 것이 아닐까.     


나의 산티아고를 찾아서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옳다 그르다는 것도 결국은 내가 일으키는 생각일 뿐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이것이 맞고 옳은 것이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보면 다를 수도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톰은 아들이 택했던 삶의 방식, 곧 성공이 보장된 길을 버리고 자신만의 행로를 찾아 떠났던 것 역시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비로소 톰은 아들과 진정으로 만날 수 있었고, 아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영화 <산티아고 가는 길>을 보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산티아고 가는 길은 무엇일까? 나를 꿈꾸게 하고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나는 그것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돌아보니 '제주도에서 보름 동안 혼자 살기'는 '나의 산티아고'의 시작이었을 것 같다. 순간적인 마음으로 선택했지만 그것은 아마도 오래 전부터 꿈꾸었던 일이었으리라. 가정의 주부로서만이 아닌, 나 자신으로 서고 싶다는 소망이 '나의 산티아고'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혼자 보름간 살아보는 일은 그러므로 나의 '산티아고 데 카미노'였다. 






산티아고 가는 길(원제 : The way)


미국 영화, 2010년 개봉

감독 :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출연 : 마틴 쉰,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데보라 카라 웅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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