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의 수첩>과 가슴에 묻은 슬픔
1919년 6월의 어느 밤, 생애 첫 무도회에 온 16살 크리스틴은 마치 천상의 세계에라도 온 양 황홀하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들과 연미복 차림의 멋진 청년들이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다. 하늘거리는 모슬린 커튼에 휘황하게 빛나는 샹들리에 불빛,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까지, 크리스틴의 가슴은 벅차오른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호숫가 대저택의 안주인인 크리스틴은 부유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공허하기만 하다.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남편은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둘 사이에는 자녀도 없다. 남편의 물건들을 정리하던 그녀는 오래된 수첩을 발견한다. 그녀가 처음으로 무도회에 갔던 그 날, 함께 춤을 추었던 남자들의 이름을 적어둔 수첩이었다. 한 명씩 이름을 보고 있자니 그들이 한 말이 귓가를 맴돈다. “당신을 평생 사랑하겠습니다.” 라고 했던 그 남자들이 문득 떠올랐다.
생애 첫 무도회, 순백의 드레스
어제 일인 듯 무도회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펼친 부채 뒤에 얼굴을 감춘 크리스틴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이던 그 청년들. 레이스가 달린 새하얀 드레스며 황홀하게 빛나던 샹들리에 불빛까지, 갑자기 그녀는 그때가 그리워진다.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였던 그 남자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그때의 나는 또 어떤 모습이었던가. 크리스틴은 첫 무도회 때의 자신을 찾고 싶어졌다.
추억은 추억일 때가 아름다운 법이라며 첫사랑은 다시 만나는 게 아니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순정한 마음을 나누었던 그 사람도 세월 속에 때가 타서 보통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환상을 깨고 싶지 않다면 추억은 그냥 두는 게 더 낫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옛 친구들이 궁금했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또 어떻게 변했을지 알고 싶었다. 그것은 어쩌면 첫 무도회 당시의 자신이 그리워서였는지도 모른다. 빛나던 청춘의 한때, 잊고 지냈던 그때를 찾으러 그녀는 여행을 떠난다. 수첩 속에 이름으로만 남아있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수첩 첫머리에 적혀 있는 ‘죠르주’를 찾아간 크리스틴을 죠르주의 어머니가 반겨 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죠르주의 어머니는 크리스틴더러 '따님과 꼭 같이 닮았다'고 하며 크리스틴의 어머니로 본다. 그런가 하면 문이 열리는 소리만 들려도 산책하러 나갔던 아들이 돌아온 것이라고 하며 현관 앞으로 달려간다. 죠르주의 어머니는 정상이 아니다. 그녀의 집은 20년 전 시간에 멈춰 있다.
크리스틴을 짝사랑한 죠르주는 그녀가 약혼했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거두고 만다. 죠르주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현실을 부정하며 과거 속에서 산다. 산책 갔다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는 그녀에게 시간은 20년 동안 멈춰 있다.
20년 동안 기다리는 어머니
죠르주의 어머니는 자신을 비난하며 살았다. 아들의 아픔을 알지 못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내 아들은 행복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못했다. 엄마인 내가 그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나는 죄인이다. 죠르주의 어머니는 이렇게 자책하며 지난 20년을 살아온 것이다.
초인종이 울리면 아들이 온 줄 알고 뛰어가지만 기다리던 아들은 오지 않는다. 그래도 엄마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제 돌아오렴. 엄마에게로 돌아오렴.”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간절하게 말하는 그녀를 보니 내 마음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지만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어떤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지만, 자식을 잃은 그 아픔만은 늘 생생하기만 하다. 오죽했으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이란 뜻의 ‘단장지애(斷腸之哀)’란 말이 다 생겼을까.
자식이 죽은 그 순간부터 부모는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다. ‘그때 이랬더라면, 아니 저랬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모두 내 탓이다’라고 그 부모들은 자책한다. 자식을 잃은 그 순간부터 부모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평생을 자책과 그리움 속에 산다. 더구나 자식이 횡액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떠하겠는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다 못해 온 세상이 깜깜한 암흑천지가 되어 버릴 것이다. 기쁨도 사라지고 살아갈 희망도 없다. 자식이 죽으면 세상의 빛은 사라지고 암흑만이 남는다.
죠르주 어머니의 비탄을 뒤로하고 화면은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아들이 돌아오기를 빌고 또 비는 죠르주 어머니에게서 한동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멀지 않은 과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가슴에 묻은 자식
2014년 4월 16일에 시간이 멈춰버린 부모들이 우리나라에 있다. 자식이 죽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부모들이다. 그것은 비단 그 부모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5천만 전 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며 바닷물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배를 지켜봐야만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무력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알 수 없는 대상을 향해 종주먹을 들이대며 분노의 발길질을 해댔다. 우리의 분노가 향한 그것은 하늘일 수도 있고 운명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늘도, 운명의 장난도 아니었다. 오만한 자들의 탐욕이 빚은 결과였다. 그래서 막을 수 있는 사고를 막지 못했고 살릴 수 있었던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
3박 4일 동안의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여행을 마친 금요일에는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차오르는 물을 보며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절망감에 몸부림치며 엄마와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을 것이다. "엄마, 엄마" 하고 부르는 그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아들아, 돌아오렴, 어서 집으로 오렴." 애타게 아들을 부르는 죠르주의 어머니처럼 세월호의 유가족들도 자식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렸을 것이다. 단 한 번만이라도 내 자식을 안아볼 수 있다면…. 그 따뜻한 볼에 입맞춤할 수 있다면…. 아니, 단 한 번만이라도 "엄마, 아버지"라고 불러주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했을 부모님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추억 속의 무도회를 그리며 여행을 떠났던 크리스틴은 호숫가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녀는 다시 삶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들을 잃은 죠르주 어머니의 아픔은 끝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그 형벌은 계속될 것이다. 가슴에 묻은 자식을 그리면서 어머니는 평생 살아갈 것이다.
무도회의 수첩(Dance of Life)Dance Of Lifece Of LifeDance Of LifeDance Of Life
원제 : Un carnet de bal
1937년 프랑스영화
감독 : 줄리앙 뒤비비에
출연 : 마리 벨, 해리 바우어, 피에르 블랑샤르, 루이 주베, 모리스 베나르
베니스 영화제 최우수 외국영화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