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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숙 Oct 13. 2021

하늘을 올려다 본 1분, 그 1분은 우리의 시간이었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 영화 <제8요일>을 보고


                        

A선생이 별세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이 뜻하는 바가 금방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요. 어쩌다가 그리 되었느냐고 묻는 내 말에 남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급작스럽게 병이 나서 그렇게 가버렸대.” 했습니다.   

  

이제 오십 대 중반인데, 세상을 떠나기에는 아까운 나이입니다. 백 세 인생 시대에 오십 대 중반이면 아직도 한창인 나이가 아니겠습니까.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이렇게 급작스럽게 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A선생이 세상을 떴다는 부음을 듣고 우리는 새삼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로한 사회그 속의 우리들   

  

A선생은 교장 발령을 눈앞에 두고 있던 교감 선생님이었습니다. 교장이 되어 학교를 자신의 소신대로 운영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달려왔는데 여기서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잠시 A선생의 명복을 빌고,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A선생이 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A선생의 부음을 들은 지 며칠 뒤에 <제8요일>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다운증후군인 사람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지적장애인인 다운증후군 환자가 영화에 나온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데 세계적인 영화제인 칸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니,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일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보통의 경우 장애를 가진 사람을 다룬 작품들은 그들의 인간 승리를 보여주거나 아니면 동정심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경우 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짠하고 불쌍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이내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기며 잊어버립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부족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8요일>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정상인이라고 하는 우리가 비정상인이고 뭔가 좀 모자란다고 생각한 그들이 오히려 정상인들을 돕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주인공 아리(Harry: 다니엘 오떼이유 분)는 알람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토스트를 먹고 옷을 입고 출근길에 나서는 그의 하루는 늘 똑같습니다.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혀 있습니다.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들. 도로는 온통 경적과 짜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리는 어떻게 하면 고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성공한 세일즈 기법 강사입니다. 그는 늘 웃을 것을 주문합니다. 그래야 고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서는 웃음을 볼 수 없습니다. 아리의 차갑고 계산적인 삶의 태도에 염증을 느낀 부인 줄리(Julie: 미우 미우 분)는 그의 곁을 떠나버렸고 아이들 역시 아빠를 믿지 못합니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그는 사실 인생에서 큰 것을 놓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뭔가 자신의 삶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는 돌아가고 있는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고 있는 몸이었고, 따라서 그곳에서 내려올 수가 없습니다.    

 

성공하려면 당연히 내 시간과 정력을 하고 있는 일에 바쳐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정과 주변에 소홀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눈 뜨면 일터로 나가고 해가 져서야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주말이나 휴일도 온전히 내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내 시간은 단 한 시간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모든 것들은 일을 위해 있을 뿐입니다.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타고 있는 몸     


그렇게 달리다가 문득문득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도 있을 테지만 그 역시 어쩔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달려가고 있는 컨베이어 벨트에 몸을 싣고 있어서 멈출 수도 없습니다. 멈추려면 그곳에서 뛰어내려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입니다. 멈추면 궁핍이 따라올 것 같고 남들보다 뒤떨어질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남들이 사는 삶을 따라가면서 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잘 굴러가던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잘못되고 있습니다. 성공하려면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데, 아리는 자꾸 멈칫거리는 자신을 봅니다. 자신의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것, 그것부터가 잘못입니다. 아리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강의도 삐걱대기 시작하고 회의시간에도 멍하니 있기 일쑤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아리는 그것을 찾기 위해 휴가를 내고 길을 떠납니다. 비가 내리는 밤에 한적한 길을 운전하다가 뭔가를 치고만 아리, 이제 그는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만약 사람을 치었다면, 그의 인생은 자기 뜻과는 상관이 없는 방향으로 굴러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개를 치었습니다. 물론 개도 사람과 똑같이 소중한 생명이지만, 어쨌든 사람은 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리는 교통사고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다운증후군인 조지가 달라붙어 통 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조지(Georges: 파스칼 뒤켄 분)는 다운증후군 환자로 요양원에서 지냅니다. 그는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주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현실과 환상을 오락가락하며 어머니를 찾아 헤맵니다. 엄마를 찾아 요양원을 빠져나온 조지, 주인이 없는 개가 그를 따릅니다.     


다운증후군인 사람은 한눈에 봐도 딱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외모가 특이합니다. 외모가 그러한 것처럼 그들의 정신세계 역시 보통의 사람들과는 좀 다릅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자신의 감정 역시 꾸미거나 덧칠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타냅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순수함 그 자체이지만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사회인으로 어울려 살기 위해 때로는 자신의 감정에 진실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것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고, 싫어하는 것조차도 좋은 척 꾸미기도 합니다. 그것이 살아가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운증후군 환자인 조지는 그러한 것들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는 좋으면 좋다고 있는 그대로 표현합니다. 그것이 정상인들에게는 이상하고 비정상인 행동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1분 동안 바라본 하늘우리의 시간이었다     


아리는 조지를 통해 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차갑고 계산적이던 그는 따뜻한 가슴을 회복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내와 자녀들은 그를 믿지 못하고 밀쳐냅니다. 가족이 그리워서 찾아갔지만 냉정하게 대하는 그들을 보고 아리는 절망합니다. 오열하는 아리를 품에 안고 달래주는 조지. 다운증후군인 조지는 우리보다 한참 모자라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리에겐 조지가 마음을 읽어주고 달래주는 둘도 없는 친구였습니다.     


가족을 만나지 못해 오열하는 아리를 위로하다가 조지가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면서 우리만의 1분을 만들어보자고 합니다. 둘은 편안히 누워 하늘을 바라봅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하늘만 보여줍니다. 그 시간은 '좋은 시간이었고 우리의 시간'이었습니다. 아리는 조지의 눈을 따라 하늘을 보게 되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됩니다.     




하루 중에서 1분이라는 시간은 아주 잠깐의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조지가 아리에게 준 1분은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정지된 1분이 아니라 조용히 바라보고 생각하도록 해준 1분이었습니다. 또한, 타인과 정서를 나누고 함께 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바쁘지 않음은 곧 나태함이고 또 패배자의 삶으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쁘지 않음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과 부끄러움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제8요일>은 현대인들에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아리는 잃었던 가족을 되찾았습니다. 거짓 웃음을 버리고 진정으로 활짝 웃는 아리 옆에는 사랑스러운 두 딸이 있습니다. 아리는 아이들과 함께 나무에 얼굴을 대고 가만히 나무가 되어 보기도 합니다. 또 조지가 자신에게 주었던 1분을 아이들에게도 나눠줍니다. 풀밭에 누워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는 그들에게서는 행복감이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복지가 '8요일'     


태초에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신이 세상을 만들 때 첫째 날은 태양을 만들었고 둘째 날은 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풀밭과 젖소를 만들고 일곱째 날은 세상을 만든 신도 안식을 취하며 쉬었습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것 같아 신은 제8요일에 또 뭔가를 만들었는데, 아리에게 그것은 조지였습니다.     


제8요일은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또 정신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실천으로 옮기기엔 무수히 많은 걸림돌이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용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인 함의에 의한 공유와 복지만이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까요. 최소한 굶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고 살 수 있는 최소한도의 사회적인 안전망이 있다면 우리는 앞만 보고 달리는 삶에서 잠시 잠깐이라도 내려서 자신만의 '1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제8요일>을 보면서 내내 멈추면 보이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머리를 맴돌았습니다.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는 그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처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녁이 있는 삶'은 진정 이루기 어려운 것일까요?





                    

제8요일 (1996) The Eighth Day, Le huitième jour


감독 - 자코 반 도마엘(Jaco van Dormael)

출연 - 파스칼 뒤켄(Pascal Duquenne), 다니엘 오떼유(Daniel Auteuil), 미유 미유(Miou-Miou), 등

수상경력 - 제49회 칸영화제[1996년, 남우주연상(파스칼 뒤켄느, 다니엘 오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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