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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숙 Aug 31. 2021

아카시 꽃 피는 계절, 통일꿀을 상상하다

신경림의 시 '끊어진 철길'과 남북 통일꿀이 만들어진 그날

아카시아꽃이 활짝 피었던 5월 하순의 어느 날, 강화 양사면의 평화전망대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남편의 눈이 자꾸 산으로 갔습니다.      


“벌치는 사람 눈에는 아카시 꽃밖에 안 보여. 저 산에 아카시 꽃이 참 많이 피어 있네.”     


남편은 활짝 핀 아카시 꽃이 아까운지 자꾸 산 쪽으로 눈길을 주었습니다.     


벌치는 사람들에게는 아카시 꽃이 필 무렵이 일 년 중에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아카시 꽃에는 꿀이 많아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벌꿀의 약 70%가 아카시 꿀이 차지할 정도입니다. 만약 날씨 문제 등으로 아카시 꽃이 덜 피기라도 하면 우리나라 벌꿀 생산량에 차질이 생깁니다. 꽃봉오리가 생길 때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냉해를 입는다거나 아니면 한창 활짝 피었을 때 비가 오면 아카시 꿀 수확량이 확 떨어집니다.   


 

  



그러니 비라도 오면 큰일입니다. 비가 오면 벌은 바깥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또 비를 맞고 꽃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양봉가들은 일기예보에 신경을 쓰며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부터 살피는 게 일입니다.   

  

아래 지방에서는 아카시 꽃봉오리가 막 나올 무렵에 날씨가 들쑥날쑥해서 꽃이 제대로 피지 못했다고 합니다. 활짝 만개해야 꽃의 꿀샘이 열리는데 그렇지 못하니 꿀 수확량이 예년의 절반 수준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행히 강화도는 아카시 꽃이 절정일 때 날이 맑고 기온도 높았습니다.      


평화전망대는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 시설물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평화전망대도 문을 닫은 지 꽤 되었습니다. 전망대에 올라 북녘 땅을 바라보려고 왔던 사람들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코로나 19로 일상이 흐트러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강 건너 북녘땅의 사람들은 어찌 살고 있을까요. 우리처럼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을까요. 설마 마스크가 부족해서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강화 양사면 평화전망대에서 건너다 본 북녘땅



강화 양사면에서 건너다 본 북녘땅





강화 교동도 지석리에서 건너다 본 황해도.



강화 교동도 지석리에서 건너다 본 황해도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강 건너 북녘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도 아카시 꽃이 피었을 것입니다. 북쪽의 벌을 치는 사람도 남쪽의 우리처럼 날마다 하늘을 바라보겠지요. “비야 비야, 오지 마라. 아카시 꽃이 질라, 비야 오지 마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빌고 있지는 않을까요.       


“황해도 땅이 건너다 보이는 이쪽에 벌통을 두면 남쪽 꿀벌과 북쪽 꿀벌이 만날 수도 있겠네. 그러면 남북통일 꿀이 생산되는 거야. 그래, 통일 꿀이네 통일 꿀이야. 남북의 꿀벌이 하나가 되어 만든 통일 꿀이네.”     


강 건너 북녘땅을 바라보던 남편이 꿈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턱도 없는 소리였지만 듣노라니 설렜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강화도와 황해도 사이에 폭이 2킬로미터가 넘는 강이 흐르니 벌은 날아갈 수 없습니다. 또 설혹 날아갈 수 있다 해도 가까운 곳에 아카시 꽃이 많은데 뭐 하러 그 먼 곳까지 날아가겠습니까.     






꿀벌은 밀원을 찾아 반경 2킬로미터 정도까지 날아간다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4킬로미터 거리도 날아간다고 하니 폭 2킬로미터 내외의 강쯤이야 못 날아갈 일도 아닙니다. 그러니 남과 북의 꿀벌이 아카시 꽃을 찾아 오간다고 상상해 봅니다.     


남과 북의 꿀벌이 만나 통일 꿀을 만든다는 꿈같은 이야기를 듣노라니 문득 시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신경림 시인이 쓴 <끊어진 철길>이란 시입니다.            



끊어진 철길이 동네 앞을 지나고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붙은     

민통선 안 양지리에 사는 농사군 이철웅씨는     

틈틈이 남방한계선 근처까지 가서     

나무에서 자연꿀 따는 것이 사는 재미다     

사이다병이나 맥주병에 넣어두었다가     

네댓 병 모이면 서울로 가지고 올라간다     

그는 친지들에게 꿀을 나누어주며 말한다     

“이게 남쪽벌 북쪽벌 함께 만든 꿀일세     

벌한테서 배우세 벌한테서 본뜨세”     

- 아래 생략     










벌들의 세계에 남이 있으며 북이 또 있을까요. 민통선 마을에 피는 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을 타고 꽃씨들이 날아가고 날아올 것입니다. 벌들은 남과 북을 구분하지 않고 꽃을 찾아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남쪽의 꽃이 다르고 북쪽의 꽃이 또 다를까요. 같은 땅에서 나는 같은 꽃이고 또 꿀입니다. 벌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벌을 본떠야 합니다. “이보게, 벌에게서 배우세, 벌을 본뜨세. 싸우지 말고 함께 사세.”   

  

남쪽의 꿀벌과 북쪽의 꿀벌이 만나 함께 달콤한 꿀을 만들 듯이 사람들도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걸까요. 이념이 어떻고 조건이 어떻고 할 것 없이, 좋은 게 생기면 나누주고 싶은 그 고운 마음처럼 한 민족 한 겨레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 보듬고 안아주면 안 될까요.     


강화 양사면의 산에는 아카시 꽃이 활짝 피었다가 졌습니다. 잉잉대며 꿀을 따던 벌들의 노래도 사라졌습니다. 이제 그 자리에 또 다른 꽃이 피었습니다. 밤나무 꽃향기가 비릿하게 전해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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