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말없이 저 너머를 건너다봅니다. 눈앞이 뿌옇게 흐린지 안경을 벗어 닦습니다. 건너편 민둥산이 제법 파릇합니다. 아버지는 그예 건너가기라도 할 듯 난간을 부여잡습니다.
“야야, 여기가 맞다. 여기가 그 기다. 하, 희한하네. 어쩐지 눈에 익다 했다.”
강 건너 북쪽 땅을 바라보던 아버지가 감격스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연신 희한해 하던 아버지는 그러나 곧 조용해졌습니다. 반가운 마음보다 더 큰 어떤 감정이 밀려온 듯했습니다.
자유로를 달려 '오두산 전망대'에 왔습니다. 저 멀리 임진강이 보입니다. 북한 땅과 가까운 곳이지만 여느 관광지와 다를 바가 없이 휴일 나들이를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망대를 구경하고 또 길을 나섰습니다. 자유로를 타고 계속 달립니다. 길 저쪽으로 들판과 산이 연이어 나타납니다. 강 쪽으로 툭 튀어나온 언덕도 보입니다. 차창 너머로 밖을 구경하던 아버지는 어딘가 눈에 익다고 하면서 차를 좀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어디서 봤더라? 그 참,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아버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습니다. 심연 속을 헤집던 아버지는 기억을 끄집어 올렸습니다.
“아하... 여기가 그 기네. 어쩐지 눈에 익다 했다."
흥분된 목소리로 아버지가 소리칩니다.
“여기가 그 기다. 여기서도 주둔해 봤다."
아버지는 떨리는지 말을 더듬기까지 합니다.
“그, 그 겨울에 여기를 지나갔다. 아하... 세월이 그래 많이 지났는데도 고대로 있 네. 하, 그 참.”
“여기서 그 때 하룻밤 잤디라. 저거 보니 생각나네. 저기 저거, 툭 튀어나온 저거 옛날하고 똑 같네. 아, 그 참... 허, 그 참 똑 같네.”
난간을 부여잡은 손에 힘을 줍니다. 빨려들 듯 저 건너를 바라봅니다. 잊고 지냈던 먼 기억들이 되살아납니다. 아버지의 그해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
여름 한낮엔 움직이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천지 사방이 다 조용하다. 바람도 숨을 죽인 한낮, 매미만 왱왱 울어댔다. 태동양반은 문지방을 베고 누웠다. 서늘한 기운이 등골을 타고 전해져 온다. 까무룩 잠에 빨려 들어간다. 온 동네가 다 조용하다.
해가 기울자 불볕더위도 사그라졌다. 조용하던 마을이 다시 깨어났다. 집집마다 굴뚝엔 파란 연기가 피어오르고 밥 짓는 냄새가 난다.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놀던 아이들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다들 집으로 돌아갔다. 마을은 다시 조용해졌다.
샛별이 산 위에서 깜박이며 졸고 있고 하늘은 검푸르게 어두워져 온다. 마을 일을 보고 있는 동네 이장이 찾아왔다. 막 밥숟가락을 뜨던 태동양반이 한 쪽으로 비껴 앉으며 이장이 앉을 자리를 만들어준다.
"하따, 낮에는 우에 그래 덥든동, 해 지니까 살 만 하네."
이장은 괜히 바지춤을 한번 들춰 올리며 날씨 얘기로 말을 꺼낸다.
"그케. 올 여름은 유달시리 더 더분 거 같네. 날이 예사 더버야제요. "
태동띠기(댁)가 얼른 밥 한 그릇을 더 떠와서 이장 앞에 놓으며 한 숟가락 들기를 권한다. 마당 한 쪽에선 가느다랗게 모깃불이 피어오르고 하늘은 검푸른 기를 점점 더해 간다.
"난리가 났다 카더이만 우에 된능공요?"
"야,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왔심더. 종채 쟈가 뽑힜심더. 원앞댁에 흥갑이랑 둘이 뽑힜심더. 한 개 면에 20명씩 할당됐는데 우리 동네에는 두 명이 배당 됐심니더. 흥갑이랑 종채가 나가야 됩니더."
"뭐라꼬요? 종채 쟈가 뽑힜다고요? 그러면 우리 종채가 전장터에 나가야 된다는 말인교?"
태동띠기가 울상이 되어 물었다. 맏아들인 종채가 전장에 나가야 된다니,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 따로 없다.
난리가 났지만 종채가 사는 동네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낙동강 어디서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어 나갔다지만 그건 남의 동네일인 양 전쟁과는 거리가 먼 경상도 촌 동네였다. 마을마다 자위대를 조직하여 밤이면 큰 길을 지키는 게 일이라면 일이었지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종채가 전쟁터로 가게 되었으니, 이제 전쟁은 내 일이 되었다.
......
그해 여름, 억세게도 더웠던 8월 초에 종채는 출정 명령서를 받았다. 벼논에 세벌 김도 안 맸는데 전쟁터로 끌려가게 되었다. 가기 싫다고 안 갈 수도 없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종채와 흥갑이었다.
아침 일찍 집을 출발해 일차 집결지인 면사무소로 갔다. 하나둘 청년들이 모였다. 인솔자와 함께 2차 집결지인 경산까지 걸어갔다. 8월의 땡 양달 아래 후끈 달구어진 길을 50리나 걸었다.
도착한 경산의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뽀얗게 먼지가 피어올랐다. 범 같은 장정들이 천 명 가까이 모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대구 인근의 각 군에서 뽑혀온 청년들이었다. 방위장교들이 청년들을 몰아붙였다. 스무 살 남짓 나이를 먹었지만 촌에서 살아 어리숙기 이를 데 없는 청년들이었다.
국방색 군복을 입은 방위장교들이 돌아다니며 사람을 뽑는다.
"중학교 이상 졸업한 사람, 앞으로 나왓!"
쭈볏대며 한 둘이 나온다.
"아, 중학교 이상 졸업한 사람이 없단 말이야? 그러면 국민학교 졸업한 사람 나왓!"
역시 서로 눈치 보며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 없다. 종채도 고개를 푹 수그렸다.
배운 사람을 찾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자 장교들이 돌아다니며 사람을 차출했다. 빠릿빠릿해 보이는 사람을 골라 대열 앞으로 내보냈다. 무리에서 뽑혀나간 사람들은 울상을 지었지만 남은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뭐가 뭔지 모를 때는 가만있는 게 상책이다. 숫자가 많은 쪽에 남아있는 게 신상에 이롭다. 그제야 종채도 안심이 되었다.
그때 뽑힌 사람들은 수류탄 2개를 지급받고 입은 옷 그대로 전선으로 떠났다. 그들은 경북 안강전투에 투입되었다. 총 쏘는 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그들은 그대로 전선에서 산화했다. 안강전투가 워낙 다급해서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한 총알받이로 그들이 뽑혀갔던 것이다.
......
8월의 땡볕 아래 장정들이 굼실댄다. 훈련이 안 된 청년 수백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니 복대기 시장 저리 가라할 만큼 혼란스럽다. 그래도 처음 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훈련이랬자 줄 맞춰 서며 열중 쉬엇에 차렷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그래도 제법 군인 티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최종 합격자를 뽑는 심사가 있었다. 사지육신만 멀쩡하면 다 합격이다. 종채도 당연히 합격이었다.
경산 역에는 장정들을 태울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뚜껑도 없는 열차였다. 군인들을 가득 태우고 열차는 하염없이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운명이 가리키는 대로 갈 뿐이었다.
열차가 도착한 곳은 구포 역이었다. 역에서 15리 쯤 떨어진 김해 대동국민학교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말자 발가벗겨놓고 하얀 가루를 막 덮어 씌웠다. 하얀 가루의 정체는 디디티(DDT)였다.
뭔지 모르는 주사도 예닐곱 방이나 맞았다. 줄을 지어서 지나가면 이쪽에서 한 방, 저쪽에서 한 방씩 막 놓았다. 주사를 맞고 교실로 들어가니 사방에서 앓는 소리가 낭자했다. 한꺼번에 예방주사를 그렇게 많이 맞았으니 몸이 약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픽픽 쓰러졌다. 밤새도록 앓으면서 그 날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배낭이랑 군복, 그리고 철모를 지급했다. 칼빈 총도 나눠주었다. 총을 지급 받으니 그 전의 내가 아닌 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제야 본격적인 군인이 된 듯 했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또 군사 훈련을 받았다. 사격 연습도 했다. 총알 4발을 지급받아 건너편에 있는 허수아비를 목표물로 삼아 총을 쏘았다. 이때 딱 한 번 사격 훈련을 받은 게 총 쏘는 훈련의 전부였다. 그리고 전선으로 출동했다.
사격 훈련을 받은 다음 날 구포 역으로 집결했다. 집에서 나온 지는 스무 날 쯤 지났을 때였다. 더위가 한 풀 꺾여 가는 8월 말이었지만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따가웠다. 다시 열차를 타고 마산으로 갔다.
마산 역 앞에 대기하고 있던 지에무시(GMC) 트럭을 타고 나락창고였을 법한 큰 창고로 갔다. 그 곳엔 양코배기 미군 중령과 통역 장교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선별 작업이 있었다.
"중학교 이상 나온 사람 앞으로!!"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눈을 아래로 내리깐 채 서로들 눈치만 봤다.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다들 애쓰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무도 없어? 그럼 국민학교 나온 사람 나왓."
몇몇이 앞으로 나간다. 그걸 본 일부가 또 따라 나간다. 종채는 망설였다.
'저기 나가는 게 좋을까? 아니야. 그래도 여기에 끼어 있는 게 더 좋을 거야. 죽어나 사나 여기에 끼어 있자.'
사람들이 이리저리 갈라졌다. 어디가 좋은 건지는 몰라도 일단 많은 무리에 끼어서 종채는 안심이 되었다. 그때 먼저 뽑혀간 사람들은 좋은 보직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고학력자라 행정직으로 뽑혀갔다. 그 나머지는 모두 소총수로 배치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앞으로 나서지 않았던 종채도 소총수가 되었다. 이후 종채는 최전선을 달려야 했다.
......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트럭을 타고 이동했다. 한 대에 스무 명 남짓 되는 군인들을 태우고 트럭의 대열은 마산에서 철원까지 올라갔다. 철원연병장에 군인들을 부려놓고 트럭은 떠났다. 그 곳에서 3일간 교육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날 밤에 다급하게 명령이 내렸다. 인민군이 근처까지 왔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신병들은 탄알 50발씩을 지급받고 허겁지겁 고지대인 산으로 올라갔다. 밤새도록 대기하다 아침이 되어 산에서 내려왔다. 다행히 인민군과의 접전은 없었지만 처음으로 경험해본 실전 상황이었다.
아침 10시쯤에 미군 트럭이 잔뜩 왔다. 그들은 두세 명씩의 한국군을 뽑아서 각자의 트럭에 태우고 갔다. 자대 배치였다. 종채가 배속 받은 부대는 미 25사단 35연대 3대대였다. 1개 중대에 한국군이 1명씩 배치가 되었는데, 이들은 미군부대에 배속된 최초의 한국군들이었다.
한국동란이 터지자 곧바로 참전한 미 25사단은 북한군과의 첫 전투에서 크게 패했다. 한국의 지리와 정서를 잘 몰라 당한 패배였다. 뼈아픈 패배를 경험한 미군은 한국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미군은 한국군을 한 중대에 한 명씩 배치했다. 종채를 비롯한 대원들이 미군부대에 배치 받은 첫 한국군이었다.
철원의 어느 산에서 며칠을 대기했다. 그 이전 전투에서 크게 패한 25사단은 그곳에서 인원을 보충 받으며 재충전하고 있었다. 큰 전투를 치룬 뒤라 주변에는 주검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다. 종채는 처음 보는 주검에 놀랐다. 너무 무섭고 끔찍했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아 주검을 봐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도 많이 봐서 감정이 무디어진 것이다.
......
요란스레 총성이 울렸다. 교전이 시작되었다. 사방이 부옇게 동이 터 오는 새벽인데 또 전투가 시작되었다. 저 밑에서 적들이 산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일제히 총을 쏴댔다. "드르륵, 드르륵." 기관단총도 불을 뿜는다. 픽픽 쓰러지는 적군이 보인다.
산 밑에서 까맣게 적이 기어 올라온다. 아군에 비해 적이 너무 많다. 아무리 총을 갈겨도 적은 계속 올라온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이었다. 무전병이 적탄에 맞아 죽었다. 이젠 지원을 요청할 수도 없다. 대대본부에서 무전기를 총으로 쏴버렸다. 숫적으로 밀리는 상황에서 후퇴만이 살길인데 무거운 무전기는 애물단지였다. 버리고 가면 적이 차지하니 지휘부가 무전기를 쏴버린 것이다.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대대본부를 살리기 위해 중령 계급의 미군 장교가 부하들을 데리고 100 미터 쯤 떨어진 곳에서 교전을 하고 있었다. 그 틈을 이용해서 빠져나가야 된다. 중공군이 도로를 집중사격 했다. 총알 세례를 받은 도로에서는 먼지가 폭폭 일어났다. 저 도로를 건너야 하는데 건널 도리가 없다.
갑자기 제트기들이 새카맣게 몰려왔다. 이제야 지원군이 오는 모양이다. 길 저 밑에서 탱크도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이젠 살았다.
......
종채는 운이 좋았다. 전쟁터에 뽑혀 간 것으로 봐서는 운이 나빴지만 돌아보니 나쁜 것도 아니었다. 집에 있을 때 언제 한 번 배부르게 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혀가 빠지게 일했지만 늘 양식은 달랑거렸다. 먹을 입은 많은데 땅은 적었고 소출 역시 많지 않았다. 양식 장만하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집에 나이로 22살, 호적 나이로 20살이었지만 종채는 그리 탄탄한 몸이 아니었다. 그러나 군대에 와서 키도 컸고 근육도 붙었다.
종채가 배속 받은 곳은 미군부대였다. 전쟁 중이었지만 그곳은 별천지였다. 먹을 것도 지천으로 깔렸고 고기도 질리도록 먹었다. 생전 처음 보는 군수물품들이 막 지급되었다. 더구나 식당차가 따라다니면서 식사를 공급했다. 배불러서 못 먹지 없어서 굶어본 적이 없다.
입대한 지 두 해가 지났다. 그 무렵 종채는 후방인 부산 해운대의 탄약보급소를 지키고 있었다. 추석을 얼마 앞둔 어느 날 고향집의 숙모님이 면회를 왔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동네를 벗어나본 적이 별로 없는 촌 아낙네가 부산까지 찾아왔으니 예사로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종채도 숙모도 섣불리 입을 떼지 못했다. 저녁을 먹고도 다른 이야기만 하던 숙모가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다가 입을 열었다.
"종채야, 놀래지 말거레이. 형님이 세상 버리셨다. 돌아가셨다."
순간 종채는 제 귀를 의심했다.
“작은 어무이, 무신 소립니꺼?”
"행님이 세상 베리싯다고. 아이고 아이고, 종채야 우야꼬."
숙모님이 참았던 울음을 쏟아냈다. 순간 종채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하늘이 빙 돌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윙 하고 귀에서 소리가 울렸다. 방 밖에서는 음력 8월 중순의 가을비가 추적추적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숙모와 조카도 눈물의 강을 보태고 있었다.
......
전쟁이 끝나고 종채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엄마는 없었다. 전쟁터로 떠날 때 “우야든동(어떻게 해서든) 약빠르게 처신해서 살아서 돌아오라”고 했던 엄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종채는 뒷산에 있는 엄마 산소에 가서 절을 올리며 다짐을 한다.
"엄마요, 제가 왔심더. 살아 돌아왔심더. 저 보고 우야든동 살아서 돌아오라고 하시더니 왜 엄마는 저 세상으로 가버리셨습니꺼? 저는 어쩌라고 갔심니꺼."
굵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귓속이 먹먹하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제 아버지와 동생들을 위해 뛰어야 한다. 코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고 또 뛴다면 살 길이 열리겠지. 산 밑 마을을 내려다보며 종채는 불끈 쥔 두 주먹에 힘을 주었다.
......
눈앞이 뿌옇게 흐린지 아버지는 안경을 벗어 닦았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뿌연지 눈을 껌벅입니다. 반백 년 이상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대로인 휴전선 안의 산과 들을 보니 옛 기억들이 찾아왔습니다.
햇빛이 내리 쬐는 땡볕 길을 걸어 경산까지 갔던 그해 8월이 떠올랐을 겁니다. 뽀얗게 피어오르던 먼지며 겁에 질려 있던 청년들도 떠올랐을 겁니다. 뚜껑 없는 열차에 몸을 싣고 한없이 달렸던 철길도 기억이 났을 겁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떨었던 날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말없이 북쪽을 바라봅니다. 까닭을 모르는 손주들이 할아버지를 찾습니다. 그제야 아버지는 현실로 돌아옵니다. 차는 다시 달려 임진각으로 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