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문학관의 명예 관장인 양선생의 별명은 '오천 수'입니다. 외우고 있는 시가 많다고 해서 붙은 별명입니다. 어떤 자리에서건 꼭 그 상황에 맞는 시를 찾아내는 그 분의 능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시를 읊는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매번 감탄합니다.
읍에 나간 김에 강화문학관으로 놀러갔습니다. 나를 보자 양관장이 덥석 내 손을 잡으며 반깁니다.
"반갑소. 커피 한 잔 할랑교?"
양관장은 일부러 경상도 사투리로 말합니다. 동향인 내가 반갑다는 표시입니다.
차를 마시면서 열흘 전에 다녀온 고향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곳에는 진달래며 벚꽃이 한창이었는데 강화도는 이제야 꽃이 핀다고 하자 양관장이 시 한 수를 꺼내 읊습니다. 눈까지 지그시 감고 시를 읊는 그를 따라 나도 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김포서 강화까지 오는데 일주일 걸렸구나
내 걸어보아도 한나절이면 가겠던데
들를 곳 다 들러왔구나
봄에 진달래도 그랬다
함민복 시인이 쓴 '자귀나무 꽃'이란 시입니다. 자귀나무는 모든 나무들이 다 꽃을 피우고 잎을 내도록 내내 지켜보다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 마침내 잎이 돋고 꽃이 핍니다. 꽃이 핀 모양새가 꼭 공작새가 꼬리를 활짝 편 것 같이 아름답습니다.
양 선생은 연거푸 한 번 더 읊습니다. 시를 읊을 때면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역시 눈을 감습니다. 그를 따라 나도 눈을 감았습니다. 꽃이 올라오는 길이 어렴풋이 그려집니다. 시인이 그렸던 꽃길이 우리 앞에도 펼쳐졌습니다.
내 고향의 4월은 꽃 천지였습니다. 4월 초순인데도 꽃 잔치가 한창이었습니다. 진달래며 벚꽃이 활짝 피었고 자두나무는 자잘한 꽃들을 담뿍 쓸어 담아 부풀어 올랐습니다. 운문사로 가는 길은 온통 벚꽃 터널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한참을 달리도록 내내 꽃물결이 출렁였습니다. “벚꽃을 보러 진해까지 갈 것 없다. 사람이 별로 없어 여기가 더 좋다”며 우리는 연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강화로 올라오니 아직도 겨울이었습니다. 꽃이 필 낌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결에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벚나무 가지 끝에도 볼그스름하게 물이 들었습니다. 한 번 꽃물이 오르자 금방이었습니다. 앞 다투어 꽃들이 피었습니다. 벚꽃은 뜨거운 냄비에 쏟아 부은 강냉이 알갱이인 양 꽃송이가 톡톡 튀어 나왔습니다.
진달래를 보러 고려산에 갔습니다. 고려산은 진달래가 떼로 피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진달래축제 때면 찾는 사람이 많아 길이 막힐 정도입니다.
고려산 자락에는 고인돌이 많습니다. 산 아래 마을에도 여기저기 고인돌이 흩어져 있습니다. 강화에 있는 100여기의 고인돌 대부분이 고려산 자락에 있습니다. 부근리를 비롯해서 고천리, 오상리, 삼거리 등등 곳곳에 고인돌이 있습니다.
삼거리 고인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으로 들어섰습니다. 얼마 안 올라가자 진달래가 반겨줍니다. 진달래 물결 사이로 고인돌이 보입니다. 온전하게 서있는 고인돌은 별로 없습니다. 밑돌은 삐딱하게 넘어졌고 그 위에 얹은 덮개돌도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고인돌이 세워진 건 몇 천 년 전입니다. 그 정도 세월이면 뭐든 남아나겠습니까? 고인돌이 돌로 만든 것이니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일 테지요.
진달래가 무더기로 피어 있는 근처에 자리를 깔았습니다. 작은 유리병에 담아온 오미자 술을 꺼냈습니다. 잔에 술을 따르고 사방에 고수레를 합니다. "천지신명이시여, 한 잔이지만 천 잔, 만 잔인 양 여기시고 기쁘게 받아주옵소서." 엎드려 절을 하며 천지신명께 고했습니다.
진달래가 따뜻한 남쪽에서 강화까지 오는데 근 열흘이 걸렸습니다. 영변의 약산까지 가자면 며칠이 걸릴까요. 재게 발을 놀리면 빨리 갈 수 있을 텐데 진달래는 여기저기 참견하며 가느라 천천히 올라갈 것 같습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라고 옹골차게 말하던 영변의 약산 진달래입니다. 더딘 걸음으로도 북녘 땅에 봄소식을 전하겠지요.
영변의 약산 진달래는 강화도 소식을 바람결에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꽃 피울 차비를 하지는 않을까요. 꽃봉오리가 볼그스름하게 물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진달래 산천이 될 영변의 약산을 그려봅니다. 강화도를 거쳐 영변까지 올라갈 길도 그려봅니다. 그러노라니 북한이 이웃집인 양 가깝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