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2017 8 29 서울의 밤

by 이오늘


이른 점심 무렵 h를 만났다. 예전 직장의 동료였던 h는 나와 한 달 간격으로 입사했고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이름 세 글자 중 두 글자가 같고, 함께 알고 지내는 지인이 있고, 둘 다 오랜 연애 중이며 취향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회사를 다니던 2년 내내 h는 내 왼쪽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늘 비슷한 고민을 서로에게 털어놓았는데, 대부분의 대화는 '사는 게 뭘까?', '그래서 지금 행복한 걸까?'같은 자조적인 질문으로 마무리됐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결심을 한 뒤 같은 날 퇴사했다.

퇴사 후에는 닮은 구석이 많던 h와도 완벽히 공유할 수 없는 이야기가 생겼다. 내 일상이 그대로인 동안 h는 결혼과 임신, 출산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육아의 고충을 털어놓는 h의 얼굴은 누군가의 엄마라고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앳되고 명랑해서, 나는 낯선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는 낯선 h의 모습에 예전보다 더 집중해야 했다. h는 기쁘지만 힘이 든다고 했고, 즐겁지만 생각이 부쩍 많아졌다고 했다. 커피잔을 다 비워 갈 즈음 h는 "그래서 지금 행복한 걸까?" 그때처럼 가만히 되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한탄에 가까워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 물음에 대꾸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엔 나도 모르는 새 대답이 튀어나왔다. "불행하지 않으니까 행복한 거겠지?" 엉터리 대답이었다고 생각하는 사이 h는 "그렇겠지?" 하고 답했다.

다음 계절, h를 다시 만나는 날엔 더 멋진 대답을 해주고 싶다. 그땐 행복이 무엇인지, 지금 내 손에 가득 넘쳐흐르는 건지 모래알처럼 작아 눈을 씻고 찾아야 하는 건지 조금은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사이 눈치챌 수 있는 거리에서 행복이 h에게 자주 드나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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