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11 파리의 밤
계절이 바뀌는 지점에 내리는 비는 낌새가 수상하다. 비가 그치면 무엇이든 달라지겠구나 짐작하게 한다. 어제 내린 비가 꼭 그랬다. 요즘의 날씨답지 않게 차가운 비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나는 얇은 옷차림으로 외출했었다. 몸이 으슬으슬했다. '오늘부로 여름이 갔구나' 생각하다가 우산이 몇 번 뒤집힐 뻔했다. 이미 옷이 다 젖어버려 대충 우산을 쓰는 시늉만 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귀신, 그다음으로 추위인데 그날의 비바람은 귀신만큼 끔찍한 것이었다. 몸을 움츠리고 걸음을 재촉하다 문득 파리에 도착하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다. 8월의 날씨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냉랭한 바람이 불던 오후였다. 공항에서 시내로 나오자 역 앞에 반팔 반바지 차림을 한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우산 없이 걷는 사람도 우리 둘 뿐. 있는 대로 옷을 껴입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숙소를 찾아 헤맸다. 너무 추웠는데, 파리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파리를 걷고 있다는 설렘에 자꾸만 마음이 들떴다. 오늘 오싹한 비바람을 뚫을 때 그날의 기분이 조금 되살아났다. 늦여름 무렵 이렇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몸이 으슬으슬할 때 앞으로 몇 번은 더 파리의 그날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