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12 파리의 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교내 흑백사진 동아리에 들었다. 남대문에서 구입한 중고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처음 출사를 갔던 날이 떠오른다. 북촌 곳곳을 누볐는데, 카메라를 맨 내가 제법 근사하게 느껴졌었다. 현상이나 인화 같은 번거로운 작업엔 흥미가 없었다. 지루한 무채색톤 사진만 갖는 것에도 곧 싫증이 났다. 그 시기에 나는 한 시도 쉴 틈이 없었다. 가입한 동아리가 두어 개 더 있었고, 주말엔 봉사활동을, 시간표가 빈 날엔 아르바이트를 했다. 틈틈이 연애를 했고 노는 일에도 열성을 다했다. 잠은 죽어서나 자는 것이라고 떠들던 날들이었다. 개중에 흑백사진은 가장 따분한 취미였다. 당연히 사진동아리 활동은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촬영해놓고 현상하지 못한 필름 몇 롤만을 남긴 뒤 나는 졸업을 했고, 그 후로 수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호기심이 많고, 대부분 들떠있고, 쉽게 싫증을 내며 성미가 급하다. 대신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느린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동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필름 사진을 찍고, 도자기를 굽고, 식물을 가꾸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가진 세계는 내가 가진 세계보다 훨씬 묵직하고 충만할 거라 믿는다. 번거로운 취미를 갖는다는 건 변덕 부리지 않는 단단한 태도를 갖는 일과도 같으니까, 나는 조금 더 느슨하되 점잖은 마음을 갖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궁금하다. 글을 적다 흑백사진의 정취가 그리워져, 파리에서 찍어온 사진 몇 장에 흑백 톤을 입혔다. 앱을 몇 번 조작하는 것만으로 꽤 그럴싸한 흑백 필름 느낌이 난다. '필름 카메라를 쓸 필요가 없겠는걸' 하고 생각하는 나는,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