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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리 Nov 07. 2024

어서와, 사춘기는 처음이지?

집나간 영혼 찾습니다.

"으악!"


바쁜 아침, 난데 없는 비명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얼른 달려가 보니 소녀가 울고 있었다.

"왜 나 안 깨웠어? 으아아앙"

소녀가 나한테 깨워달라고 했던가? 지금 학교 가기 늦은건가? 당황한 내 눈동자는 이유를 찾아 헤메고 있었다.


나는 샌드백이다.

가만히 있다가 얻어터지는 샌드백.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거기에 있기 때문에 두들겨 맞은 것일뿐.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도 내가 샌드백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나한테 깨워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안 깨웠냐니.. 황망하기 그지 없어 말문이 턱 막혔다.


어서와, 사춘기는 처음이지?

도둑고양이처럼 그놈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5학년 여름방학 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춘기 아니야'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소녀가 이제는 '나 사춘기인가봐' 라고 무심히 소리치고 있었다. 나만의 아리따운 소녀의 몸에서 사춘기가 터를 잡고 봄날 아지랑이 피듯 슬그머니 일어서려고 하는 중이다. 이제 어쩌지.




옆 집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그랬다고 한다. 공부는 물론이요 샤워나 양치도 잘 안 해서 좀 하라고 하면 내가 알아서 한다고 신경 좀 끄란다고. 아직까지 그런 험한(?) 말은 안 들어봤지만 곧 들을 것도 같다. 


아니, 소녀도 어쩌면 4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힘들었던 그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일까. 굉장히 오래된 일처럼 아득히 느껴진다. 4학년 여름 방학 즈음에 소녀는 주구장창 울었다. 울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모든 상황 속에서 계속 울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슬퍼서, 화가 나서, 힘들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밥을 먹으려는데 식탁에 젓가락만 놓여져있고 숟가락이 없다며 울었다. 엄마를 자신만 들리는 모기 목소리로 스무번쯤 부르다 엄마가 대답도 안 한다며 펑펑 울었다. 친구들이랑 같은 게임을 하고 싶은데 그 친구는 다른 게임을 하고 싶어 한다며 울었다. 


정말 하루 종일 갖은 이유로 울었다. 눈물이 나는 이유는 소녀에게 길가에 돌맹이만큼 차고도 넘쳤다. 그리고 한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나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든 것은 나도 이해한다. 나도 그러니까. 그렇지만 하루종일 우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는 것은 괴로웠다. 등짝스매싱을 해서라도 그치게 하고 싶었다. 처음엔 달래도 보고, 화도 보다가, 급기야 나도 같이 우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힘든 아이에게 나도 힘들다고 도대체 그러냐고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면 소녀는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듯이 눈물을 그치고 흐리멍텅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거기 추노 두명이 서 있었다.  




답답했다. 소녀가 우울의 바다로 한발씩 걸어들어가는 거 같아 괴로웠다. 이게 사춘기인가 아니면 우울증인가 헷갈렸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상담센터를 발견하고 여기다 싶었다. 구세주를 찾았구나. 할렐루야, 제발 저와 소녀를 이 우울구렁텅이에서 꺼내주세요. 부랴부랴 상담 신청 페이지를 열었다. 상담신청을 할 때 어떤 일로 상담을 신청하는지 그 경유와 이유를 써야 하는데 쓰기도 전에 각티슈 반 통이 사라졌다. 역시 나를 닮았나. 눈물이 많은 것 말이다. 내가 이러고 있으니 소녀도 그리 울지 싶어 번뜩 정신이 들었다. 


며칠 후, 상담선생님이 배정되고, 예비 상담전화가 왔다. 상담신청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고 답하는 시간이었다. 아, 또 터졌다. 지금도 이런데 상담 잘 할 수 있을까. 


소녀와 엄마의 기질 검사를 시작으로, 총 10회의 상담이 진행되었다. 소녀는 예민한 편이고, 불안이 높다. 그래서 익숙한 것들을 좋아한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을 힘들어 한다. 나는 소녀에게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어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고, 새로운 것을 배우도록 했다. 나의 잘못이 컸다. 또, 4학년 담임선생님이 질병으로 결근을 자주 하시고, 매 교시마다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신 일, 담임의 부재를 무질서의 합당한 이유인양 혼돈의 세계를 만들어 나간 아이들. 소녀는 그 안에서 불안이 밀려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미안했고, 안타까웠다. 소중한 나의 소녀에게 엄마의 계획에 따르라 강요를 했었구나. 상담을 통해 깨달은 내용들을 현실에 적용해 보려 노력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일단 소녀의 이야기를 많이 듣기로 했다. 나의 입은 좀 다물고. 한동안은 그렇게 했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걸 먹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들어주었다. 




작년과 다른 5학년이다. 이제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되는 것 같다. 하루하루 최대한 잘 넘어가보는 게 목표다.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독여 학교를 무사히 보냈다. 성공이다. 사춘기 이또한 지나가리.

학교에 다녀온 소녀는 친구와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었고, 마라탕이 먹고 싶다, 노래방 가고 싶다 얘기하며 재잘재잘 즐겁게 떠들었다. 이 틈이다. 절대 강요는 아니다.


"오늘 엄마도 알아본게 있는데, 명상 캠프 한번 가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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