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 후 집에 온 아들이 목이 아프다고 했다. 학원 갈 시간인데 아프다고 하니 대뜸 불신이 올라왔다. 학원 가기 싫어서 그러는거 아닐까. 진통제를 먹이고 복싱학원을 보냈다. 집에 온 아이가 몸이 쑤신다고 했다. 운동을 다녀와서 그런가 보다 하고 괜찮아 질거라 아이와 나에게 세뇌를 시켰다. 저녁에 세미나가 있어서 잠시 나가야 했다. 남편이 있으니 안심하고 집을 나섰다. 세미나 도중 아이에게 문자가 왔다.
'엄마 어디예요? 나 아파요. 춥고 무서워요. 빨리 오세요.'
'남편은 뭐하는 거야' 라는 생각과 함께 서둘러 집으로 갔다. 남편은 해열제를 사러 나갔다 왔다고 했다. 해열제는 집에도 있었다. 남편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아이를 위해 뭐라도 하려고 약국에 다녀온 남편을 칭찬했다.
"당신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당신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약국도 다녀오고 정말 수고 많았어요."
"내가 체온을 딱 쟀지."
남편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동시에 남편의 위신도 치켜세웠다. 저녁 식사를 하는데 아이가 잘 먹지 못했다고 한다. 남편은 음식 남기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아이에게 아프리카 아이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영상을 보여주며, 아이가 남긴 밥 한 그릇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음식을 잘 먹지 못했고, 춥다며 담요를 덮었다고 한다. 초여름에 춥다고 하자 남편이 아이의 체온을 쟀다. 39도의 체온계를 보고 남편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 약 바구니에서 해열진통제를 찾아보려 했지만 못 찾았고 늦은 시간에도 문이 열린 약국을 찾아 빠른 걸음으로 다녀왔을 것이다.
남편의 모든 행동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밥을 잘 못 먹을 때 이유를 물어봐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팍팍 먹어라, 많이 먹어라, 음식이 아깝지도 않느냐, 아프리카 아이들은 지금도 굶고 있다 등등 잔소리를 늘어놓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 말 대신 '밥을 잘 못 먹네. 어디 안 좋아?'라는 말이 아이에게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은 약을 두 군데에 보관한다. 선반 위 바구니와 냉장고 옆 틈새장. 해열제는 틈새장에 있었고 남편은 바구니만 찾아보고 해열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저기 찾아보고 그래도 없으면 나에게 물어봐도 됐을텐데. 해열제를 사러 나갔다 온 그 시간에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을지 엄마인 나는 조금 언짢았다. 잔소리를 막 퍼붓고 싶었다.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단점만 콕콕 지적하던 나였다. 그렇게 하면 내 속도 후련하고 상대방도 반성하여 더 나아질 거라 믿었다. 내가 하는 말이 잔소리가 아닌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의 말은 잔소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서로 기분이 상하기만 했다. 점점 마음이 닫히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떤 책에서 가족한테 좋은 점을 말해주라는 내용을 보게 되었는데 뜨끔하면서도 깨달음이 왔다. 단점은 눈에 잘 띄어서 누구라도 이야기 해줄 수 있지만 장점은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보인다는 것이다. 그건 가족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니 가족끼리는 좋은 점 잘한 점 노력한 점을 말해주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메세지를 마음 속에 새기고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잘 안 될 때도 많다. 그러나 중요한 건 방향이다. '너는 이거 못해'가 아닌 '어떻게 하면 네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하는 말을 하려고 애 쓰다 보면 우리 가정을 평화롭게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상대방의 단점을 눈에 담지 말고 좋은 점을 마음에 담아 날마다 되새겨 주자. 그 사람이 더 가치롭고 빛나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