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호주
일본을 다시 갈 수 없게 되자 기존의 계획대로 두 번째 나라를 선정하게 되었다.
힘들게 배우고 온 일본어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곳으로 찾은 결과 물망에 오른 곳은 하와이였다. 리틀 도쿄라고도 불리는 그곳은 영어를 못 해도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알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아시아권이 아닌 곳에서 일본어가 통용된다는 사실에 주저 없이 그곳을 다음 장소로 정했다. 그런데 그곳은 워킹비자가 나오지 않는 곳이어서 갈 방법이 학생 비자밖에는 없었다. 학생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어학원을 등록해야 했는데 비용도 상당히 비쌌고 등록할 돈도 수중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현실적인 방법이 없었다. 포기하지 않고 인터넷을 비롯한 주위에 수소문 한 끝에 이번에는 하와이와 흡사한 곳을 찾게 되었다. 그곳은 호주의 케언스라는 곳이었는데 하와이와 마찬가지로 많은 수의 일본인들이 있는 곳이고 영어를 못 해도 일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호주는 워킹비자가 발급 가능한 나라였고 신청 절차도 간단했다. 일본처럼 분기별로 한정된 인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신청비만 내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 복귀한 지 4개월 만에 다시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다. 일본과 달랐던 점은 일본은 가기 전 언어를 비롯한 최소한의 자금을 준비해서 갔지만, 호주는 조금의 언어공부도 없이 수중에 비행기 삯만 가지고 혈혈단신으로 떠났다. 한 번의 외국 생활을 통해 자신감도 붙어 있었고 일본어라는 무기를 맹신해서 저지른 일이었다.
호주 케언스는 스쿠버다이빙과 스카이다이빙, 번지점프, 래프팅 등 다양한 활동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신혼여행으로 많이 오는 곳으로 항상 많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예상과 달리 그곳에서의 정착은 쉽지 않았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경우는 벼룩시장과 같이 구인광고를 내는 책자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연락을 취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곳은 이력서를 작성한 다음 일일이 가게를 돌며 이력서를 직접 주고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력서를 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문제는 수십 통의 이력서를 돌렸음에도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이었다. 호주에 도착한 지 3주를 넘어 한 달이 다되어 가는데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방값과 식비 등의 지출로 수중에 돈이 점점 떨어져 가니 점점 더 초조해졌다. 무언가 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가만히 앉아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사방팔방으로 수소문 한 끝에 케언스 인근에 있는 파로넬라 공원이란 곳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천공의 성 라퓨타’의 배경이 된 곳으로 많은 수의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었으며, 특히나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이곳을 알게 된 순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했다. 도보로 접근이 가능한 곳이었으면 바로 찾아갔을 텐데 케언스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라 우선 전화를 했다. 용기 있는 자가 일자리를 얻는다 했던가. 전화를 받은 일본인 매니저는 일단 면접을 보러 오라 했고 케언스에서 출발하는 자사의 관광버스가 있으니 그것을 타고 올 수 있는 배려까지 해주었다. 다음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면접을 보러 갔다. 현장 책임자인 현지인과의 면접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어색한 웃음과 함께 YES라는 답변으로 일관한 나는 그 자리에서 불합격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비록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만 현장 직원들과의 소통 및 모든 안내는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부족하면 일을 할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는데….
돌아오는 버스에서 본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다. 마지막 히든카드까지 다 써버린 기분이 들자 더는 구직의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타지에서 굶어 죽겠구나 하는 불안과 돌파구 없는 답답함만이 나를 짓눌렸다.
머지않아 통장 잔액은 바닥을 보였고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멍하니 집에만 있다가 지푸라기라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주말에 교회를 나갔다. 한인들과 유학생들이 다니는 한국 교회로 점심을 무료로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갖가지 정보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그곳에서 바나나 농장에 관한 정보를 듣게 된다. 케언스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시즌이라서 일할 사람을 뽑고 있다고 했다. 사실 농장에서 사람을 많이 구한다는 정보는 입국 전부터 조사해서 알았지만 웬만하면 농장은 가고 싶지 않았다. 케언스에 인접한 바나나 농장의 일꾼은 대다수가 한국인 사람들도 구성되어 있었다. 워낙 농장에 관한 악소문도 많이 들었고 외국까지 왔는데 이왕이면 현지인들의 삶에 들어가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농장일 또한 현지인들의 삶을 체험해 볼 기회이긴 했다. 이왕 농장 일을 할 거면 한국 사람이 없는 곳에서 농장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교회에서 돌아온 다음 날 방을 구할 때 냈던 보증금을 빼서 한국인이 가장 없다고 알려진 퍼스라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한 달여 넘게 머문 케언스에 대한 미련도 있었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타개하려 내린 극단의 조치였다. 케언스에서 퍼스까지는 비행기로 5시간이 걸렸다. 같은 나라 안에서 이동하는데 5시간이라니….
참고로 호주는 한국의 77배 정도 되는 크기로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나라이다.
타이거 항공이라는 저가항공을 타고 이동했는데 물도 사 먹어야 했다.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었다. 비행기 동체가 워낙 작고 약하다 보니 기류에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웬만한 놀이기구보다 더 심하게 흔들렸는데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준이었다. 5시간의 아찔한 비행을 마치고 무사히 퍼스에 도착하자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퍼스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6시간 이상 달려 도착한 곳은 팸버튼이라고 하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이곳은 워낙에 외진 곳에 있는지라 한국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실제로 도착해 보니 단 한 명의 한국 사람도 없었다. 백패커라고 불리는 숙소에서 머물렀는데 프랑스, 독일, 대만, 일본, 영국, 에스토니아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었다. 근처에 위치한 농장주들이 이곳에 일손을 요청하면 백패커의 매니저가 숙소에 있는 여행객들에게 일을 나누어 주는 방식이었다. 근처에는 포도 농장을 비롯한 감자, 사과, 아보카도 등 다양한 농장들이 있었다. 농장일은 처음이라 걱정도 되고 두렵기도 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묘한 설렘도 있었다.
처음 배정받은 농장은 포도 농장이었다. 손 가위를 이용해서 포도의 가지를 치는 일이었다. 직접 농장에 가보니 규모에 놀라웠고 각종 기계장비를 도입하여 현대식 공정으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평소 농사라고 하면 경운기에 비닐하우스 등과 같은 재래식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데 전혀 다른 느낌의 현장이었다. 포도 농장의 일은 예상외로 어렵지 않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배정받은 곳은 감자 농장이었다. 땅속에 묻혀 있는 감자를 캐내는 일이었다. 사람이 직접 캐는 것이 아니라 트랙터 모양의 감자 캐는 차가 있다.
그 차로 밭 위를 지나가면 땅속에 있는 감자와 돌멩이들이 차 뒤쪽 컨베이어 벨트 위로 올라오는데 그곳에 서서 썩은 감자와 돌멩이들을 걸러내는 작업이 우리가 할 일이었다. 일본에서 경험한 해체 작업을 통해 힘든 일에는 어느 정도 이골이 나 있는 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만만한 일이 아녔다. 땅속에서 올라오는 감자와 이물질들은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먼지를 동반했고 울퉁불퉁한 밭 위를 달리는 차위에 서서 균형을 잡고 감자를 걸러내는 일은 허리와 무릎에 많은 무리를 안겨줬다. 또한, 말도 한마디 하지 않고 반복되는 일을 하루에 12시간씩 하다 보니 정신마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머릿속을 통째로 비울 수 있는 수양의 단계까지 이르렀다.
감자 농장 뒤로도 사과, 아보카도 등 여러 작물의 농장 경험을 했다. 작물에 따라서 쉽고 돈을 많이 주는 곳과 어렵고 돈도 작게 주는 곳이 있었다. 대부분 가족 단위로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으며 농사보다는 농업에 가까운 규모들이 컸다. 농장 생활을 하면서 세계 각국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평소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농업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농장에서 수개월 동안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호주 곳곳을 돌면서 여행하며 경험했다. 홈스테이도 해보고 번화가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때로는 관광객처럼 즐겼고 때로는 현지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그들의 삶을 경험해보기도 했다. 호주 현지인들의 생활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서정적이고 가족적이라는 점이다. 광활한 대자연이 주는 환경 덕분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성향이 세속적인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미래의 기대보다는 하루의 행복과 현재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삶을 산다.
삶의 질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호주에서의 경험 이후로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늘 가슴에 품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