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돌아온 한국
이왕지사 외국물도 마신김에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의료관광이라는 분야를 접하게 되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의료의 목적으로 여행을 와서 수술이나 시술을 받고 남은 시간 동안은 여행을 즐기는 형태의 내용이었다. 당시 정부에서 17대 신 성장 동력 중 하나로 의료관광을 지정하면서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행도 좋아하고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일이라 하니 주저하지 않고 진로를 정했다.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알아보던 중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면서 취업까지 연계해 준다는 교육기관을 알게 되었다. 직접 찾아가서 상담을 받아보니 수업료가 제법 비쌌다. 교육적인 부분만 생각했다면 등록을 하지 않았을 것이나 취업까지 연계해 준다는 말에 혹해서 고민 끝에 등록했다. 병원 코디네이터 과정과 의료관광 전문가 과정 두 개를 등록하니 2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그렇게 6개월에 걸쳐서 교육을 받았고 시간은 흘러 과정을 수료하게 되었다. 수료 후 당연히 교육 기관에서 취업까지 연계해 주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으나 현실은 달랐다. 교육 기관에서 수료생들에게 소개해주는 곳은 의료관광 관련 회사가 아니라 한의원과 병원 등의 일반 코디네이터 자리였다.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나와 같이 수업을 들었던 동기들이 17명가량 되었는데 다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비싼 수업료도 아까웠지만 갈 데가 없다는 것이 더 절망적이었다. 현실의 우리에겐 사설 교육기관의 교육 수료증 한 장만이 전부였다.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수료생들에게 우리 스스로 살길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수료생들은 거의 여성들이었고 연령대는 30대에서 40대가 주축을 이뤘다. 막내급인 내가 주동하고 나서자 다른 분들도 힘을 실어 주었다. 그렇게 해서 교육 기관의 수료생들과 함께 자체적으로 정보 교류 및 스터디 모임을 시작했다. 관련 회사를 찾는 작업도 지속해서 이어나갔다. 내막을 알아보니 의료관광이라는 것이 이제 막 태동하는 무렵이라 설립된 회사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기껏해야 서울에서 1~2개 정도 막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교육 기관은 우리들을 상대로 취업 연계를 시켜준다는 말로 등록을 시킨 것이었다. 눈 뜨고 있는데 코 베어 가는 세상이라고 했는데 순전히 남의 말을 믿은 내 탓이지 누굴 탓하겠는가.
갖고 있는 돈을 전부 투자해서 들은 수업이라 상황이 너무 막막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미친 듯이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온라인 의료관광 전문카페를 발견했다. 서울의 운영자가 운영하는 카페로 회원 수가 2천여 명 가까이 되는 큰 카페였다. 게다가 구성된 회원들도 통역사를 비롯해 현직 병원근무자, 여행사 직원 등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서울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으며 다른 지역은 비활성화되어 있어 거기서 기회를 발견했다. 막무가내로 서울 운영자에게 연락하여 신원을 밝히고 부산 지역을 맡아서 운영해 볼 테니 부산 운영자 권한을 달라고 요청했다. 운영자는 40대로 서울에서 렌터카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흔쾌히 내 제안에 응했다. 의지가 강한 것 같고 적극적인 것이 마음에 든다며 자신이 후원해 줄 테니 부산 지역을 맡아서 잘 운영해 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온라인 카페의 지역 운영자 자리를 하나 맡았을 뿐인데 왠지 큰일을 해낸 것 같았고 이것으로 인해 앞으로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예감도 들었다.
부산 운영자로 활동하면서 카페를 통해 부산 지역 오프라인 모임을 주최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모임에 나왔으며, 반응도 좋았다. 모임은 자체 스터디와 네트워킹 위주로 진행했고 장소는 모임 공간을 대여해 주는 곳에서 하다가 한 회원이 다니는 교회의 공부방을 지원받아 그곳에서 이어나갔다. 매주 1번씩 정기적으로 한 달에 4번을 일 년 정도 진행했었다. 한번 모일 때마다 십여 명에 가까운 인원이 모였고 서울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직업군이 모였고 연령층 또한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는데 리더인 내가 제일 어렸다. 비록 스터디 형식의 작은 소모임이었지만 나이가 많고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이끌어보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렇게 이어진 모임은 일 년 정도가 되었을 무렵 한계에 봉착했다. 공부할 새로운 콘텐츠도 서서히 고갈되었고 가장 중요한 수익적인 부분과 연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익을 위해 모인 모임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나 또한 그렇게 계속 공부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해서는 안 될 발언을 해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끼리 회사를 한번 만들어보면 봅시다."
10명 가운데 반 정도가 찬성의 의견을 냈고 나머지는 반대 의사를 표했다. 한번 뱉은 말이니 못 먹어도 고라는 심정으로 회사 설립 준비해 들어갔다. 나이는 가장 어렸지만 모임을 일 년 동안 이끈 리더이고 발언의 제안자이니 대표 자리를 맡으라고 모두가 권했다. 얼떨결에 대표를 맡게 되었고 구성원들도 직함을 하나씩 나눠 가지게 된다. 이것이 창업의 첫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