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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하라 Jul 10. 2022

헤어질 결심

부질없이 무너지는 모래성 같아서

박찬욱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정할  ‘헤어질 결심 사람들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표현이라 처음부터 제목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말이 참으로 맞다. 사랑하는 데는 결심이 필요하지 않지만, 헤어지는 데는 결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결심을 해도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수없이 실패하면서도 다시금 이를 악물고 ‘헤어질 결심 해야  때가 있다.  결심은 단순히 사랑이 없음을 뜻하지 않는다. 감정을 배제하고 다시금 이별을 감수하기로 마음을 정하는 것이 헤어질 결심이다. 모래성 같던 결심들이 생각난다. 파도  번에 사라져 버리고 마는  성을 쌓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었나.  모래성은 헤어질 결심이었을까, 남은 사랑이었을까.


미련하게도 나의 헤어질 결심 뒤에는 원망 섞인 설움이 뒤섞여 있었다. 나의 결정을 단순한 이별로, 이기적인 선택으로 치부되는 것이 억울했다. 얼마나 많은 날을 눈물로 보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끝내 해야 할 것이 헤어질 결심인 내 심정을 보여주고 싶어서, 짠내에 절여진 눈이라도 빼내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없던 현실과 상황이, 마음이, 선택이 나를 죽일 듯이 괴롭혔다.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헤어짐을 말하는 순간에도 내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던 순간도, 뒤돌아 서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걷던 사람인지 오른쪽으로 돌아설 때 어떤 발이 먼저 나가는 것이 맞는지 조차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게 멈춰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끝내, 굳게 헤어질 결심을 내보였다.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렇게 헤어지게 된다는 것을 고하는 것뿐이었다.

 수없이 생각하면서 이미 나의 모래성은 다 무너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스라지는 작은 모래알 하나까지도 날카롭게 마음을 긁고 지나갔다. 이렇게 아프면서도 다시금 ‘사랑’을 택할 수 없는 마음이 나를 어렵게 만들었다. 힘들고 괴로워도 감수해야 함을 알기에 슬픔을 견딜 수 없었다. 붙잡을 것이 없어서 맨 손으로 울었다. 기댈 힘이 없어서 고개를 무릎에 처박고 울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아서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내 소리가 퍼지는 순간만 비로소 조금씩 흐르는 것 같아서 슬픔으로 모든 시간을 채웠다.


사랑했던 시간보다, 헤어진 날보다 

헤어짐을 결심했던 시간들이  오래 남게 되었다.

그 길고 지독했던 시간이 가장 강렬하게 오래, 나를 사로잡는 감정이 되고 말았다. 그 순간의 처참한 슬픔과 초라하기 그지없는 결심이 가장 진하게 남았다. 길거리를 걷다가 울던 시간이, 앞으로 나를 찾아올 슬픔을 예상하게 되고 마는 수많은 상황이,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시간 모두가 헤어질 결심으로 모이고 말았다. 어째서 그것이 최선이었을까. 이렇게 고통스럽고 미운 감정이 홀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헤어질 결심이라는 것이 꼭, 바다에 빠뜨린 무언가를 찾는 일 같다. 분명 여기선 또렷하게 보여서 손을 내밀었는데 자꾸만 헛것만 잡게 된다. 흔들리는 물결을 이겨내며 그 결심 하나를 똑바로 잡으려 손을 뻗어도 자꾸만 허탕을 치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고 없다. 아무래 다시 잡아보려 바닥을 수없이 만져봐도 더 이상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져서 결국 나의 다짐도 마음도 결심도 모두 다 잃고 말게 된다. 잡았어야 했는지, 일찍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버려 뒀어야 하는지 조차 모른다. 다만 남은 아쉬움이 차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게 할 뿐이다. 미련만 남아서 바닥에 처박히고 마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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