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중력인 줄 알았는데, 밤고구마였다.
그 고요하고 웅장한 세계에 발을 내딛다.
영화 ‘승리호’에 이어, 다시 한번 우주로 떠난 우리 영화가 반가웠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갱장히 칭찬하고 격려하며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는 대단히 잘 만들었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특히 우주라는 미지의, 고요한 공간을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흥미로웠다.
일반적인 장면에서는 캐릭터의 심리에 따라 흔들리던 카메라가 우주의 공간에서는 한없이 정적이다. 보는 이가 같은 중력을 느끼는 것처럼 조금의 흔들림도 없고 느린 시선의 이동이 묵직한 무게감을 전해준다.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음성의 떨림이라던가 소리로 느껴지는 거리감, 공간감이 신선했고 우주에서 빛이 주는 색감과 명암의 대비 같은 세밀한 장치들을 잘 활용해서 우주의 환경을 극대화했다. 이젠 한국 영화를 통해서 우주를 엿볼 수 있다니 즐거웠다. 다시 한번 전 세계가 한국의 성장을 주목하길 바랬다.
스토리에 있어서는 어지간하면 모두가 재밌게 볼 내용이라 생각된다. 발해 기지로 떠난 우주 대원들이 하나씩 죽기 시작하고,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을 마주하는 대원들. 그 중심에는 공유와 배두나가 있다. 공유는 아픈 딸을 구하기 위한 아빠로, 배두나는 하나뿐인 언니를 잃은 동생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 설정은 많이 식상하다.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로 가야만 하는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이미 ‘부산행’에서 비슷한 역할을 했던 공유가 ‘승리호’의 송중기와 유사한 감정선을 갖고 간다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공유가 표현하는 표정과 억양, 분위기가 자꾸만 봤던 연기 다시 보는 느낌이다. 부산행의 모습에서 장소만 바뀐 느낌이 들었다. 배두나 역시도… 누군가에게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신선한 연기라 하지만, 내 눈에는 무슨 연기인지 잘 모르겠는 연기라서 난처하다. 좀처럼 속을 모르겠고, 뭘 말하고자 하는지 느껴지지 않는 멍하고 의욕이 없는 듯한 무표정이 계속된다. 그녀는 조선판 좀비물 ‘킹덤’에서도 똑같은 표정을 했고, ‘우주’에 가서도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익숙해지기엔 여전히 어렵다.
답답하고 익숙한 캐릭터의 바다에서
신선함은 ‘이준’이 가지고 왔다.
오랜만의 연기가 매운 반가웠고, 정말 군대를 막 전역한 동생을 만난 것처럼 꽤나 각이 잡힌 모습, 한층 성장한 연기가 인상적이고 좋았다. ‘홍닥’으로 연기한 김선영의 다채로운 연기도 좋았다. 다소 축 쳐질 수 있는 전체적인 극의 흐름에 힘을 준건 ‘홍닥’이었다. 때론 어떤 막대한 역할을 안 해도 충분한 캐릭터가 있다. 필요할 때 돋보이고 평소엔 잘 받쳐주는 연기를 잘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캐릭터들이 ‘뻔하다’. 얘가 이러겠는데? 하면 걔가 그런다. 마치 가장 활발한 캐릭터가 제일 먼저 죽는 필연적인 법칙이 하나같이 맞아떨어져서 대단히 김 빠진다. 차라리 이 중에서 누가 먼저 죽을지를 적어두고 맞추는 사람에게 치킨을 사는 내기를 하면서 보는 건 어떨까. 물론 모두가 승자가 될 순 있다. 그만큼 뻔하고, 눈에 보인다. 아, 이 한계를 뚫을 순 없단 말인가. 털썩.
놀랍게도 나를 가장 열 받게 만드는 캐릭터는 배두나가 연기한 ‘송지완’ 역이었다. 그녀는 우주 생물학 박사로 이번 임무에 합류하게 된다. 발해 기지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과 사연이 깊은 만큼, 대원들에게 말하지 않고 홀로 사건을 파헤치고자 하는 단독 행동을 상당히 많이 한다. 나는 이런 단체에서의 개인행동을 굉. 장. 히 싫어한다. 특히나 주변에 위험을 가져오고 혼란을 야기하는 행동은 절대로 반대하는 사람인데 그 정점을 ‘송지완’이 다 해준다. 같이 있으라는데 혼자 다른 데 가고, 같이 가자는데 다른 데로 가버리고, 하지 말라는데 하고, 자기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아무 말이나 다 하고. 민폐 종합세트가 바로 송지완이다. 개인적인 사연 있으면, 우주까지 가서 막 나가도 되는 거?…
진짜 8화까지 보면서 속이 부글부글 해서 참기 힘들었다.
우주까지 가서 개인행동이라니, 너무한 거 아냐? 혼자만 다른 ‘임무’를 가지고 움직이는 모습에 너무 화가 났고 내가 ‘대장’ 공유였다면 임무 끝날 때까지 독 방행이었다. 하 진짜 빌런… 우주 최대 빌런 송박사…
지구에 물이 바짝 마르고 사라져서, 이젠 돈의 역할을 ‘물’이 하는 시대가 온 것으로 시작하는 부분은 참 좋았다. 물 부족에 대해 백 번 얘기하는 것보다, 이런 콘텐츠 하나를 경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교육이라 본다. 나 역시도 물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됐으니까. 그런 시도는 참 재밌고 좋았는데 뒤로 갈수록, 아니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또 실망스러워진다.
이미 이런 ‘진실’은 너무 많은 영화에서 다뤘다. 스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점점 크고 빠르게 커지던 진실을 확 열었는데 그대로 극이 끝나는 느낌이다. 뭐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다다. 정말 이게 다야? 이건 이미 너무 많이 보았잖아… 이게 전부라고 하지 말아 줘. 흐름 좋았잖아. 다른 거 더 있지? 아니야?? 정말 이거야?(털썩)
어떤 영화에서 봤을까? 스포 주의
: 한국 영화로는 ‘마녀’가, 넷플에는 ‘기묘한 이야기’가 있다.
요즘은 시즌2를 염두에 두고 열린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좋은 결말은 이미 나온 결말 만으로도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나와야 한다. 제작자가 ‘시즌 2’의 여지를 남기고 똥을 싸다가 헐레벌떡 나온 것처럼 끝내면 안 된다. 요즘 이런 결말을 ‘열린 결말’로 치부하는 것 같아서 상당히 불만스럽다. 잘 마무리 지어주길 바란다. (불쾌) 휴…
어쨌든, 우주의 묵직하고 느린 분위기에
압도되는 부분은 분명히 있고 상당히 몰입감이 좋다.
뭐랄까 비염 때문에 코가 막혀서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는 폐쇄감이 느껴진달까. 단절된 공간과 상황이 주는 공포가 답답함과 어우러져서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 목 막히는 고구마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종류의 영화도 좋아하려나?
기대했던 사람에겐 실망스러울 테고 기대치가 없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흥미롭고 재밌을 영화. 하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정말 ‘우주’에 있는 것 같은 ‘답답함’을 인지하고 감수하며 봐야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계 살짝 엿보고 올 수 있다. 다음 우주는, 더욱 다채롭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