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 잘 보여? 안쪽에 좀 있지?”
은철은 두 눈을 감은채 말을 이어갔다. 그가 한 마디씩 거들며 턱을 사용할 때마다 미묘하게 귀가 흔들렸다. 그럴 때면 간신히 열었던 귓속의 비밀 문이 빼꼼 열렸다가 금세 닫히는 느낌이었다.
“가만히 좀 있어봐. 자꾸 움직이면 안 보인다니까.”
정연은 한 손으론 은철의 귓바퀴 끝을 잡고 다른 손으론 얇은 귀이개를 들고는 그의 귓속을 빤히 쳐다보는 중이었다.
은철은 곧잘 귀를 파달라고 요청하곤 했다. 뭔가를 더 파낼만한 것이 없을 때에도 그는 자꾸만 귀가 간지럽다고 말했다. 정연은 그게 정말로 귓속에 있는 어떤 물질 그러니까 귓밥 때문에 귀가 간지러운 것인지 자꾸 귀를 후벼대는 은철의 습관 때문인지 혹은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은철에 대해 말하는 이가 많아서 간지러운 것인지 궁금했다. 처음엔 정말 귀에 뭐가 많아서 그런가 싶었고, 그의 귀를 본 후에는 그게 은철의 습관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후자의 의견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도 열심히, 또 자주 귀를 후비고 쳐다보고 꺼내기를 반복했지만 그는 도통 누군가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법이 없었다.
“어제 어머니께 전화 왔었어. 이번 주말에도 집에 안 갔었다며? 부모님이 그렇게 밥 한 번 같이 먹자고 하시는데 한 번은 말 좀 들어라. 그렇게까지 안 가는 이유가 뭐야?”
“뭐 특별한 이유가 있겠니. 가려고 했는데 철호가 한 잔 하자고 부르더라고. 내가 내려간 건 또 어떻게 알고. 그러니 어쩔 수 있나 한 잔 해야지.”
“술 한 잔이야 언제든 하는 거니까 부모님 기다리시지 않게 미리미리 시간 좀 내. 밥 한 끼는 할 수 있잖아”
“알았어, 알았어. 다 했어? 이제 뒤집는다?”
정연의 허벅지에 누워있던 은철은 잽싸게 자세를 돌려 누웠다. 정연은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 그의 귀를 다시금 주의 깊게 살폈다. 그래도 보이는 것은 없었다. 뭐가 보일 턱이 있나. 매일 같이 손으로 후비고 만나면 파내는데. 뭔가가 쌓일 틈도 없이 바쁜 귓 속이었다. 그럼에도 정연은 한 번씩 강하게 은철의 귓바퀴를 쭈욱 잡아당기며 가만히 있으라고 신호를 보내고, 자잘한 솜털만 가득한 귓속을 괜히 스윽 훑는 모션을 취했다. 아무리 없다 해도 단박에 진실을 말하면 은철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자꾸만 무슨 소리가 난다고, 안 쪽에 분명히 있는 것 같다고.
“지난번에 내가 인스타에서 보니까, 불이 나오는 귀이개가 있던데 그걸 사야겠어. 불빛이 나오니까 귓속이 훨씬 더 잘 보인대. 내가 주문할 테니까 그걸로 다시 해보자”
“귀 후비개가 다 똑같지 무슨 불 나오는 걸 사. 이걸로도 충분해.”
“아니야, 내가 보니까 그게 진짜 좋더라고. 안쪽까지 불빛이 비추니까 속에 있던 것까지 다 찾아낼 수 있어.”
몸을 일으킨 은철은 고개를 한쪽으로 넘기고 툭툭 귀를 털어내며 말했다. 정연은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무엇도. 휴지 한 장 깔아 두지 않고 귀를 파는 시늉을 했던 것이 벌써 여러 날이다. 아무리 잡아당기고 플래시를 비추고, 또 안 쪽까지 과감하게 들이밀어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은철은 도대체 자기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귀지의 존재를 어떻게 이 정도로 확신하며 살아가는지 정연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처음엔 은철의 단호한 표현이 듬직해 보였다. 뭔가 확신에 찬 행동 같아서 그를 조금 더 알고 싶었다. 만나는 동안에도 그는 주저함이 없는 태도로 둘의 관계를 만들어갔다. 여기가 맛집이라며 유명한 음식점을 데려갈 때도, 이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다며 초록색 구두를 선물할 때도 정연은 좋았다. 거침없이 삶을 살아가는 그가 곁에 있다면 정연은 아무것도 걱정될 것이 없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