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트루 Jul 12. 2021

04. '글쓰기 공포증'에서 벗어나다.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잘은 모르겠지만 '생각이 많은 사람이어서'인 것 같습니다. 끝없이 샘솟는 물처럼, 그칠 줄 모르는 생각과 아이디어들을 정리하기 위해 가장 좋은 수단 중 하나가 글쓰기라는 사실을 몇 년 전, 일기를 쓰면서 무의식적으로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후로 제 생각들을 노트나 스마트폰에 옮기고, 덜어내는 작업을 통해서 한층 제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홀가분함을 느꼈고, 그게 블로그로, 한 발 더 나아가 브런치 작가라는 형태로 이어지면서 '한낱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을 생각을 깎아 조각으로 만드는 재미'를 처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하나하나 브런치에 올리고 나면, 이전에는 묵혀둘 뿐이었던 제 생각이 자연스레 누군가에게 공유되고, 작든 크든 누군가에게 새로운 자극과 아이디어를 주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글쓰기의 마력에 제대로 빠져들게 된 것이죠. 글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왜 글 쓰는 것이 어려워졌을까?


그런데 하면 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글쓰기가 어려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힘겨워지고, 짐처럼 느껴지면서 점점 그 무게가 더해가기 시작하더군요. 처음에는 그저 '내가 성격이 꼼꼼하고 세심하고, 완벽주의도 조금은 있어서 항상 온전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탓이다'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잖게 여겼습니다. 뭐든 완성에 이르기까지는 험난한 과정들을 거쳐야 하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여러 차례 그런 위기들이 겹치면서, 글을 못 쓰고 묻어두고, 묻어두고.... 그러다가 결국 공들여 쓰기로 했던 매거진을 하나 접기도 하면서 스멀스멀,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게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나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외면하려 애썼지만, 마무리짓지 못하고 묻어두는 글이 계속 불어나고 글을 쓰지 않는 날들이 늘어갈수록, '글을 주기적으로 쓰지 못하고, 완결 짓지 못하는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는 부적합하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쌓여만 갔습니다. 글쓰기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닌데, 또 막상 글을 쓰려니 영 부담스럽고, 못 쓰겠다고 느껴지는 상황이 반복되니, 이거 참 미칠 노릇이죠. 돌이켜보면 이게 저 스스로의 한계가 아니라 방법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먼저 했어야 하는데, 그런 슬럼프들이 워낙 오래도록 지속되다 보니 생각과 시야의 범위가 좁아지고, 한 가지 생각에만 파묻혀버리고 만 것 같습니다.





'글쓰기 공포증'에서 벗어나기까지...


이렇게 지난한 시간들을 지나 보내던 저를 수렁에서 건져준 사건은 두 가지였습니다.




1) '너만의 글이 대체 뭐야?'


올해 초였을까요. 제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제 영화 리뷰 한 편을 보고 이런 피드백을 줬습니다.


"야, 니 브런치 생각보다 재미있는데?? 그런데 말이야..."



읽을 만 하긴 한데,

남들이 쓴 글이랑 별 다를 게 없다.




보통 이런 피드백을 받고 나서 망치에 얻어맞은 듯 정신을 차리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인데, 우습게도 당시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하고 넘어갔더랬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그만큼 '줏대 없는 글'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 조차 닿지를 못했던 거죠. '글 쓰는 이'로서 스스로가 어떤 글을 써야겠다는 자각조차 서있지 않은 시기였기에, 내 글이 특색 없게, 별 다를 것 없이 느껴진다는 사실에 충격받고, 분노하지조차 못했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해가 갑니다. 창작자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되기 위해서는, 저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갖추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 창작자들이 흔히 범하고 있을 오류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매체의 종류나 창작물의 형태에 따라서 그 정도는 다를 수 있겠으나 소비자에게 그 콘텐츠를 소비할 만한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이 콘텐츠가 가진 의무 중 하나일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스스로를 오픈하는 것에 굉장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만, 저를 어떤 형태로든 오픈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러웠기에, 저 자신이 오롯이 담긴 글을 쓰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애초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제 글은.


그래서 이 두 가지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봤는데, 신기하게도 하나밖에 없더군요.


글에 나 자신을 조금 더 담는 것.


음... 너무 당연하게 들려서 다소 김 빠지는 듯한 결론이 나왔지만, 이 것 말고는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조금 더 글에 담아 스스로를 독자들에게 오픈하고, 내가 살아오면서 쌓아온 생각이나 기억들을 덧입힌 글을 통해 독창성을 확보하는 것. 지금까지는 그저 무색무취하고,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법한 글을 써왔지만, 위에 쓴 것들이 가능하다면 적어도 읽고서 '시간 낭비는 안 했다'라고 느낄 수 있을 법한 글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쉬운 글 많이 쓰기'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면 맛집 어플을 자주 이용하는데, 최근 여기서 맛집 리뷰를 시작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제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덜 결정적인 기회가 될 줄이야...



'제한'에서 오는 편안함



맛집 리뷰의 특성상 너무 길게 쓰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기에, 한정된 분량으로 짧게 써야만 한다는 제한이 제게는 의도치 않게 편안함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리뷰는 상당히 긴 편입니다만, 1000자 남짓의 짧은 글들을 부담 없이, 반복해서 쓰다 보니 어느새 결과물들이 쌓이기 시작하고, 글을 완성시키는 데에서 오는 성취감도 다시 회복하면서 '내가 생각보다 글을 어렵게, 완성하기 어렵게 쓰고 있었구나', '나한테 맞지 않는 방법으로 글을 쓰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 역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물론 맛집 리뷰보다는 제가 기존에 브런치에서 써왔던 에세이나, 영화 리뷰가 조금 더 길고, 완성하기 어렵긴 하지만, 어떤 글이든 형태를 갖추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덕분에 '나만의 글'이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렵게, 현학적인 단어들을 나열하며 쓰지 말고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어깨의 힘을 빼고, 내가 매일 쓸 수 있는 글을 쓰는 것. 그게 지금의 제게는 가장 필요했던 거죠.


(그래서 저처럼 글이 써지지 않아 답답함을 겪고 계신 분들께는 일기나 맛집 리뷰 같은, '쉬운 글들을 많이 써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글을 쓴다는 부담감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콘텐츠 메이커로서 이런 소소한 성취감을 조금씩이나마 이어가는 것은 글을 완성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슬럼프를 해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내 식대로, 나만의 방법으로.



그만두렵니다.


다른 타고난 글쟁이들처럼 '유려한 글솜씨를 가진 척'하거나, 전문가 분들처럼 '깊은 지식을 가진 척'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멋져 보이는 무언가'를 하려 애쓰지 않고, 제 안에 있는 재료들만을 가지고 최대한 풀어내고, 그 걸로 부족하다 싶으면 외부의 것들을 조금씩 가져와 덧대는 글쓰기가 지금의 제게는 가장 어울리는 방법이 아닐까 싶네요. 그게 바로 제게 가능한, 일종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창작자로서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렇게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치명적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래도 이대로 저 스스로에게 잡아먹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겠다 싶습니다. 그저 마음을 비우고 겸허하게, 무언가 대단해 보이려는 욕심보다는 나 자신이 되고자,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커다란 돌들을 쌓아서 돌탑을 세울 수도 있겠지만, 조그만 돌들을 많이 쌓아도 그만큼 커다란 돌탑을 쌓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그리고 그런 돌탑이 오히려 튼튼할 수도 있고요).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들겠지만, 스스로가 가진 것이 작은 돌들이라면 이를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저에게 더 도움이 될 테니까요. 지금까지 허비한 시간들이 아쉽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쓰기 자체는 싫지 않으니, '힘들었지만 큰 산 하나 넘었다' 생각하고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3. 서른 하나, '인간극장'이 재미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