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음악, 짧아져서 섭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영화를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봤습니다. 스케일 큰 할리우드 영화들, 특히 새로운 기술들로 눈이 즐거운 SF 영화나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판타지 영화들이 그랬죠. 큰 스크린의 영화관에서 그런 영화들을 보면 특유의 그 '압도당하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제게는 너무도 즐거운 체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맥스가 나온 이후 특히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냥 어릴 적에는 작은 스크린에서도 충분히 기쁘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보며 느꼈던 그 감정들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헌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특히 제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되면서부터는 영화를 보는 이유가 그때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는 이제 영화를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 봅니다. 물론 예전처럼 스케일 큰 명작들이 나오면 빠짐없이 챙겨보는 편입니다만, 이전보다는 자연스레 드라마 장르의 영화 감상 비중이 커지게 되었죠. 비록 그게 실화에 기반을 둔 영화가 아닐 지라도, 그를 통해서 어느 정도는 나와 다른 세계, 다른 직업, 다른 생각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내는 방식을 보고, 느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요즈음 저는 '인간극장'을 참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을 앞두고 밥을 먹으면서 TV를 틀어 놓으면 7시 50분쯤 인간극장이 시작됩니다(원래는 '황금시간대'라 여겨지는 평일 저녁 시간에 방송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시청률이 많이 떨어졌는지 자리를 내준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 짧아지기는 했지만 타이틀 음악도 여전하고, 방송 구성 또한 여전한데, 예전이랑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그런 이야기들이 재미가 있어졌다는 거예요. 어릴 적에는 분명 그냥 지나쳤던 '노잼 프로그램' 중 하나였는데(이 외에도 '동물의 세계'나 '9시 뉴스'가 그랬습니다), 이제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고, 눈에 밟힙니다. 출근을 해야 해서 10~20분 정도 밖에는 못 보지만, 정말 재미있어졌어요. 달라진 건 나이를 먹은 저 자신밖에 없는데 말이에요.
스스로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많이 생기기도 했지만,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그들의 삶에 대해서, 그 삶의 무게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게 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저 관심만 있었다면, 자연스레 내가 관심 있는 사연에만 흥미가 생겨 매주 다른 사람들의 에피소드들이 항상 똑같이 재미있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들의 힘든 순간에는 '하 그래... 저거 참 힘들겠다' 싶고, 그들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는 '그렇지~ 세상 힘들기만 하라는 법은 없지' 하면서 공감할 수 있게 되니까, 새삼, 재미있는 거 아닐까요.
이제는 시그널 음악도 짧아지고, 예전처럼 명맥을 이어가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 같다는 예감에 조금은 슬퍼지는 프로그램들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바뀌지 않는 프로그램의 틀에서 오는 한계도 물론 있고, 젊은 층들이 거의 찾지 않는 프로그램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하지만 최대한 오래오래, 없어지지 않고 남아줬으면, 아니 버텨줬으면 합니다 이제는. 이만큼 서민들의 삶을 조명해주는, 사람 냄새나는 프로그램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옛것으로 치부되며 하나하나 사라지다 보면, 우리의 삶이 돌이킬 수 없이 팍팍해지고 말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그러니까 돈 안 된다고 은근슬쩍 개편하지 말아 주세요 KBS 사장님. 매일같이 고정 시청자는 못하더라도, 아침에 스치듯이 사람 사는 느낌은 느끼면서 출근할 수 있게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