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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Apr 24. 2022

한 발짝씩 전진하는 하마구치 류스케를 보는 즐거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2021)> 리뷰







※본 글에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2021)>와 <해피 아워(2015)>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원치 않으실 경우 영화를 보고 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품은 '독', 과연 얼마나 가셨을까


과거 <해피 아워(2015)>를 통해 처음 만났던 하마구치 류스케는 뭐랄까, 독했다.


영화라기보다는 일상에 가까운 자연스럽고 편안한 연출, 길지만 착실히 목표한 바로 나아가는 성실한 호흡은 몹시도 인상적이었으나, 전반부의 좋았던 흐름을 모조리, 또 갑작스레 뒤집어엎어버리며 파국으로 치닫는 후반부는 그가 마음속 어딘가 '관계'라는 것에 대한 깊은 불신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잔혹했기 때문이다(심지어 밝았던 전반부 역시 그런 생각을 대변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 <드라이브 마이 카>가 부디 하마구치 류스케 스스로가 품은 독을 걷어내고 만든 결과물이길 진심으로 바랐더랬다. 스스로가 장장 5시간에 걸쳐 쌓아 온 모든 것을 모조리 파괴한 채 끝나버린 <해피 아워>의 결말은 분명 관객 입장에서도 받아들이기 쉽지도, 유쾌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독함을 덜어내니, 대중성이 더해졌다


초반부만 놓고 보면 하마구치 류스케는 과거와 크게 달라진 바 없는 듯했다. 그는 주인공인 가후쿠에게 사랑하는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게 만드는 것도 모자라, 곧바로 사별의 아픔을 선사하며 가후쿠를 또 다른 '불신의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허나 다행히도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정의 파괴는 단지 영화의 출발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후 가후쿠가 만난 사람들과 사건들은 그에게 슬픔과 절망이 아닌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선물했음은 물론, 더 나아가 그가 다른 이의 아픔마저 보듬을 수 있는 성숙한 인격체로 발돋움하는 밑거름으로 오롯이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해피 아워> 이후 약 7년 간 하마구치 류스케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필자는 그 사이에 그가 내놓은 작품을 아직 보지 못했음을 말씀드린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을 모종의 상처가 많이 아물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렇게 독기가 가신만큼 그의 영화에 한층 대중성이 더해졌음은 물론이고.



조금 더 극적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그의 작품 세계


배우들마저 일반인으로 꾸리는 치밀한 구성으로 현실감을 한껏 끌어올렸던 <해피 아워>만큼은 아니지만, <드라이브 마이 카> 역시 하마구치 류스케의 강점인 '영화의 일상화'가 비교적 잘 이루어진 작품이라 생각한다. 니시지마 히데토시, 오카다 마사키 등 이전보다 배우들의 이름값이 상당히 높아진 데다 극적인 요소들 또한 강해져 확실히 전보다 '영화스러워'지긴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을 이 정도로 억눌러 현실에 발 붙여놓은 것은 어디까지나 하마구치 류스케가 영화를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이번 영화에서도 자신이 보고 있는 세계가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감각을 갖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 또한 우리가 하마구치 류스케에 열광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


이전보다 깔끔하고 세련된 '액자식 구성' 역시 위력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마구치 류스케를 다른 감독들과 구별되게 만드는 포인트를 하나만 꼽자면 바로 '액자식 구성'. '작품 속의 작품'을 통해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관객에게 우회적으로 전하는, 우아하면서도 독특한 그만의 스토리 텔링 방식은 <해피 아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 바 있었다. 허나 문제는 각각 1시간에 달하는 워크숍, 그리고 소설 낭독회를 통째로 넣어놓은 탓에 러닝 타임이 지독하리만치 길어졌고, 덕분에 대다수의 관객들에게는 시도할 엄두조차 안 나는 독보적인 길이의 영화가 되어버렸다는 점. 


그런데 이번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이런 부분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고 세련된 작품이었다. <해피 아워>의 그것이 말 그대로 '날 것 그대로의 연출'이었다면, 이번에는 극 연출가인 가후쿠가 하나의 연극을 만드는 과정, 그러니까 연습과 연극의 일부로 범위를 한정해 그 속에서 가후쿠의 심리적 변화와 영화 전체의 주제를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러닝타임이 짧은 편은 아니라지만, 이 정도면 그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정제하고 깎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해도 괜찮을 성싶다. 하지만 '하마구치 류스케스러운' 매력은 여전한 만큼, 이번 영화는 그의 팬들은 물론, 그를 몰랐던 일반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잘 참았다, 하마구치 류스케!



에게  영화가 ‘종착지 아닌 ‘경유지’가 되길


이번 <드라이브 마이 카>를 통해 하마구치 류스케는 많은 것을 증명했고, 또 얻어냈다. 아카데미와 칸에서의 수상은 물론, 보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대중성'을 갖춘 감독으로 한 단계 진화를 이루어냈으니 말이다. 물론 그에게 있어서 이 영화가 그저 '타협'으로 얻어낸 결과물일 뿐이라면 그 자신에게는 썩 만족스럽진 않은 결과물이었을지도 모르겠다마는(물론 애초에 그가 어떤 회복이나 성찰의 과정이 전혀 없이 영화를 만들 인물로는 보이지 않기에 이는 쓸데없는 가정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많은 관객과 전문가들이 엄지를 치켜세워준 만큼 그에게도 이 작품은 분명 하나의 분기점으로 작용할 만한 영화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도 한 번쯤은 '아, 사람들이 이런 나의 영화, 나의 생각을 좋아해 주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앞으로 그의 후속작들에는 자연스레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담길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벌써부터 거장이라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하마구치 류스케이지만, 아직 충분한 발전 가능성을 감추고 있는 감독인 만큼 그가 언제까지나 굳어지지 않는 '기대주'로서, 계속해서 깊어지는 사유를 갖춘 작품으로 관객들을 찾아오기를 바란다. 곧 개봉을 앞둔 <우연과 상상>에서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 기대가 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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