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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Jul 31. 2022

이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채 퇴장하게 될 줄이야

<쥬라기월드 - 도미니언(2022)> 리뷰



들어가며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 <매트릭스 4 - 레저렉션> 보다는 괜찮기를 바랐다


개봉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수많은 악평이 이 영화를 뒤덮기 시작했기에 짐작은 하고 있었다.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이 시대를 풍미했던 프랜차이즈의 대서사시를 마무리 짓는 작품으로서 팬들의 기대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도무지 이 영화를 보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쥬라기 공원’이었으니까. 1편과 2편에서 이미 충분한 실망을 겪었음에도, 결국 이 시리즈의 후광은 그렇게 어린 시절 추억을 인질 삼아 필자를 영화관으로 불러내고야 말았다. 영화를 보기 전 필자는 딱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부디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 <매트릭스 4 - 레저렉션> 보다는 괜찮기를…’


제 아무리 러닝타임이 2시간 30분으로 긴 편이라지만, 사진 속의 주인공들이 저마다 하나씩 이야기를 보태버리니 영화가 맹탕이 되어버린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사공’이 지나치게 많았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다행히 앞서 언급한 두 영화보다는 괜찮긴 했지만, 그 두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영화를  둘과 엮는 것만으로도 시리즈의 위상이 얼마나 곤두박질쳤는지 충분히 짐작하실  있으리라.


문제점이 차고 넘치지만,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부분은 역시 '주인공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오웬(크리스 프랫)과 클레어(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두 사람에 더해 과거 <쥬라기 공원> 시리즈를 이끌었던 주인공 3인방이 모조리 등장한다는 점은 분명 <쥬라기 공원> 때부터 시리즈를 지켜봐 온 올드 팬들에게는 반갑고 즐거운 광경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랜트 박사 일행의 분량을 잔뜩 늘려놓은 탓에 상대적으로 신 시리즈 주인공들의 존재감이 크게 죽어버렸다는 점이다. 쥬라기 월드의 주인공 2인방이 연기력 면에서 눌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연출적으로 너무 많은 것을 쑤셔 넣고 밸런스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누가 주인공인지 종잡을 수 없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메인 스토리가 옅어져 버린 것이다.


여기에 PC주의를 굉장히 의식한 조연급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추가되며 영화는 '2인분 같은 1인분 잡탕밥'이 되어버렸다. 뭔가 많이 들어가긴 해서 배는 부른데, 맛은 없다. 비싸기만 하다. 신 시리즈의 주인공들만으로 부족했다고 생각한 것이었는지, 영화의 마지막 시리즈이기에 이전 시리즈의 주인공들을 불러서 화려한 축제를 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축제 이전에 연출을 먼저 생각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상황만 놓고 보면 긴박하긴 한데, 현실적이지가 못해 긴장감이 확 죽어버리고 말았던 오토바이 추격씬.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이 정도면 이제는 '판타지'의 영역


또 하나 큼지막한 실망 포인트를 꼽자면 이전 작들보다 더더욱 강해진 '판타지화' 현상이다.


물론 <쥬라기 공원> 시리즈는 애초에 SF 판타지물이다. 현실 속에, 현실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인 공룡을 풀어놓고 스토리가 진행되기 때문에. 하지만 <쥬라기 월드 - 도미니언>은 관객에게 이런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



아, 저거 CG지...



개인적으로 과거 <쥬라기 공원> 시리즈가 인기 있었던 이유는 정말 현실 속에 공룡을 데려다 놓은 듯한 느낌을 제대로 구현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금처럼 CG가 발달되지 않았던 상황이다 보니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직접 모형 등의 특수효과를 많이 활용했고, 그 결과 정말 현실적인 공룡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를 대하는 연기자들 역시 현실적인 연기가 가능해지며 영화에 자연스레 현실성이 더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선을 거의 지키지 않았다. 대부분의 공룡이 CG로 만들어지다 보니 관객들이 공룡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특히 오토바이를 타고 좁디좁은 구도심에서 미친 듯 쫓아오는 공룡을 떼어내는 추격씬에서 그런 부작용이 제대로 드러난다. 주인공이 제 아무리 무적이라고는 하지만, 진즉에 잡히고도 남았어야 할 상황에서 마치 '별을 먹은 슈퍼마리오'처럼 상처 하나 없이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다. 그리고 이는 관객들이 화면 속의 공룡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이 그저 영화일 뿐이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게 만들어 긴장감의 끈을 '툭' 끊어버린다.


이런 장면들 조차 CG라는 게 티가 나서 도무지 긴장감이라는 것이 생기질 않는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우연에 우연을 더하고, 또 곱하고…


이 영화가 이전의 그 어떤 시리즈보다 ‘우연’이라는 요소에 강하게 기대고 있다는 점 역시 굉장히 불쾌했다. 주인공 일행이 영화 시작 전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사라도 지냈는지, 어려움에 맞닥뜨리는 순간마다 주인공들의 일이 술술 잘 풀리게 천지신명이 도와주기라도 한 듯 뻔뻔하게 진행되는 스토리는 실소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그랜트 박사 일행이 불법 유전자 실험이 자행되고 있는 실험실에 잠입할 수 있게 때마침 나타난 말콤 박사가 키를 건네주고, 악역인 '루이스 박사' 옆에 있던 비서 '램지'가 사실 그의 비리를 파헤치는 환경단체의 인물로서 주인공 일행을 돕기 시작한다는 것 등등...


이렇게 일일이 나열하기 조차 벅찬 수많은 ‘우연’들이 오로지 주인공 일행을 돕는다는 목적 하나만을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동안 관객들은 어이를 상실하고 만다. 이게 <쥬라기 공원> 프랜차이즈의 대서사시를 마무리 짓는 영화라니 기가 찰뿐.


이 영화에서 나름 긴장감을 자아냈던 거의 유일한 장면.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초반부는 <잃어버린 세계>, 후반부는 <쥬라기 공원 3>


전 시리즈의 우려먹기에 불과한 스토리 구성 역시 실망스러운 포인트 중 하나.


전작인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의 스토리 라인이 전반부 쥬라기 공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다가 후반부에 공룡들을 인간 세계로 데려오며 벌어지는 <잃어버린 세계>식 구성을 띄고 있었다면, 이 영화는 그와 딱 정반대의 구성을 하고 있다. <세계 잃어버린> 정도로 표현하면 될까. 문제는 그 가운데 이 영화만이 가지는 특색이랄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전작들을 오마주한 장면들을 제외하고도 구성 자체도 놀라울 정도로 전작들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보는 입장에서 새롭다 느껴지는 부분이 거의 없다.


그 와중에 환경 파괴 이슈를 묶어서 뭔가 관객들에게 이 영화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 같지만 그 역시 굉장히 작위적으로 느껴질 뿐이다(어찌 보면 이는 그저 이전 작의 주인공들인 그랜트 & 앨런 박사 일행에게 독립된 스토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메인 스토리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묶이는 게 아니고 '아, 이거 스토리가 이렇게 저렇게 엮이겠구나'하는 것이 너무 빤히 보이니 긴장감도 거의 느낄 수 없다.


차라리 <폴른 킹덤>의 밀렵꾼 아저씨가 나아 보일 정도로 매가리 없었던 악역, 루이스 독슨. 출처: 다음 영화

기왕 이야기를 시작한 거 있으나 마나 했던 악역도 짚고 넘어가 보자. 애플 CEO인 팀 쿡을 연상케 하는 이 영화의 악역, 루이스 독슨은 치밀하지도, 사악하지도 않다. 실로 엉성하기 짝이 없는 캐릭터인 그는 결국 <쥬라기 공원 1>의 '목도리도마뱀' 딜로포사우루스에게 최후를 맞이하며 또 하나의 '추억팔이' 용도로 전락한 채 쓸쓸히 퇴장하고 만다. 


하지만 이런 식의 오마주가 먹히려면 우선 그가 영화 내내 그만큼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른, '죽어 마땅한 존재'로 만들어질 필요가 있었다. 구성 상 거의 악역을 조명하고 있지 않는 영화인 데다(공룡이 악역, 주인공 모두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주인공들을 밀어주느라 그나마 있어야 할 출연 분량마저도 뺏긴 악역의 어디가 죽어 마땅하고 관객들의 분노를 유발하겠는가. 그냥 '아, 얘는 그냥 죽이려고 넣어놨구나' 싶지.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조차 이번 <쥬라기월드 - 도미니언>이 얼마나 못 만든 영화인지가 너무 잘 드러난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 공룡은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묻어야 할 때인가' 싶어 기분이 편치 않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부디 이대로 추억으로만 남아주길


그 위대했던 시리즈의 마무리를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지은 것도 가뜩이나 실망스러운데, 이 영화는 은근히 후속 시리즈를 예고하며 이후의 제작진들에게 모든 것을 떠넘긴다. 이미 힘을 잃을 대로 잃은 시리즈를 이전 시리즈의 전설들을 불러다 억지로 심폐소생을 하려 했던 것도 뭐 넘어갈 수 있고, 그걸 망친 것도 이해는 간다만,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결말을 짓고 후속 편까지 예고한 것은 굉장히 양심 없는 행동 아닌가 싶다. 때문에 정말 좋아했고 아직도 그렇지만, 이 시리즈를 다시 극장에서 볼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뚫린 연출, CG로 범벅이 된 공룡들로 이 시리즈가 더 이상 얼룩지는 걸 보고 싶진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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