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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유부남, 나 홀로 도쿄 일주일 #14

기타리스트들의 천국, '펜더 플래그십 도쿄'

by 김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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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진구마에 역 인근에 자리한 '펜더 플래그십 도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자기타 브랜드, 펜더(FENDER)에서 최초로 만든 대형 매장이다. 펜더를 동경하는 이들에게는 물론, 필자처럼 펜더를 보유한 기타쟁이들에게도 한 번쯤은 들러보고 싶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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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제대로 못 찍어서 그렇지, 1층부터 굉장히 넓은 공간에 '펜더 천국'이 펼쳐져 있다.


펜더가 미국 회사인데도 일본에 플래그십 매장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다소 의아한데, 펜더 중에서는 일본에서 생산하는 '펜더 재팬' 모델군이 있는 만큼, 브랜드 내에서 일본이라는 국가의 존재감이 꽤 크지 않나 추측해 본다(참고로 펜더는 원조인 '펜더 USA'를 시작으로 멕시코, 일본, 인도네시아, 차이나 라인이 존재하며, 라인 별로 가격과 소리 등 차이점이 꽤 큰 편이라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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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및 관련 액세서리뿐 아니라 옷, 가방, 머그컵 등 다양한 펜더 관련 제품들을 판매한다. 삶을 펜더로 가득 채우고 싶은 분들께는 정말 낙원처럼 느껴질 법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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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펜더 매장이기도 하지만, 펜더 플래그십 도쿄는 지금껏 펜더가 쌓아 올린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박물관이라는 점에서도 타 지점들과 확실한 차별점이 있다.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였던 '지미 헨드릭스', 미국 록 역사에 굵은 획을 그은 밴드 너바나(Nirvana)의 '커트 코베인'이 쓴 시그니쳐 모델 같은 귀한 제품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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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좋아하는 일본의 밴드, 라르크앙시엘의 기타리스트인 '켄'(왼쪽 사진에서 오른쪽)의 시그니쳐 모델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팬으로서 시연을 안 해볼 수가 없는데,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신형 장비와 헤드폰만 있으면 소리를 들을 수 있게끔 돼 있어 편했다. 웬만한 모델은 직원분께 말하면 한 번씩 쳐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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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펜더 브랜드 앰프(기타 전용 스피커)를 시연해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층은 총 3층으로, 층계마다 펜더를 애용해 온 아티스트들의 사진이 훈장처럼 걸려있다. 방문객들에게 '보이지? 우리 이런 브랜드야'라고 말하는 듯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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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꼭대기인 3층은 커스텀 샵이 자리하고 있다. 펜더 중에서도 가장 비싼 '주문제작형 기타'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인데, 벽면에 걸린 정사각형 모양 타일은 모두 기타의 바디에 적용할 수 있는 재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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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로 들어가면 수많은 기타들이 벽면을 덮고 있다. 사진이라 감흥이 덜해서 그렇지, 기타리스트로서는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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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구매 관련 상담을 받거나, 커스텀샵에서 주문제작을 해서 제품을 받는 고객들은 이 쪽으로 안내를 받는 듯하다. 아늑한 소파와, 기타를 시연할 수 있는 앰프가 완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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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들었던 기타. 샛노랗게 잘 익은 바디, 강렬한 붉은색 픽가드(기타 줄을 튕기는 용도의 플라스틱 연주용품, '피크'에 바디가 긁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피크에 긁히는 부분에 씌워둔 커버)의 조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라도 한 번 시연해 볼걸...


다만 가격이 100만 엔(1000만 원)으로 상당히 비싼데, 놀라운 것은 이 녀석이 여기서 가장 비싼 기타가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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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봤던 응접실 내부에 고고히 모셔져 있던 녀석. 가격은 보다시피 문의해야 한다. 아마도 이곳에서 가장 비싼 기타가 아닐까 싶은데, ASK 해봤자 '안살게'라는 답변이 나오는 가격을 듣게 될 테니 굳이 물어보진 않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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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이 녀석과 다른 제품 간의 가격을 이토록 벌려놓았을까. 렐릭*이 헤비하게 돼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듣도 보도 못한 소리가 나서일까. 차마 확인할 배짱도, 돈도 없으니 그저 상상의 나래만 펼쳐볼 따름.


※렐릭(Relic): 오랫동안 사용된 빈티지 악기의 도장 벗겨짐, 흠집, 황변 등 낡고 해진 외관 그 자체, 혹은 커스텀 기타에 그에 준하는 흔적들을 만들어주는 옵션을 말한다. 한 마디로 '잘 까진 기타'일수록 더 비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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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하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여기에도 갖고 싶은 상품이 한가득이지만 돌아서기로(제일 예쁜 게 텀블러인데, 집에 너무 많아서 또 사가면 와이프에게 등짝을 맞을게 뻔하다).


아무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행복했던 '펜더 플래그십 도쿄'였다. 펜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와보셔도 괜찮을 곳인데, 단순히 기타나 액세서리를 사러 오신 분들, 혹은 다수의 브랜드들을 한꺼번에 보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너무 무리해서 이곳에 오실 필요까진 없을지도 모르겠다. 도쿄에는 악기 거리로 유명한 '오차노미즈'를 비롯해 다른 악기상가들도 많으니 말이다(다만 펜더의 신품, 특히 독특한 색상이나 커스텀 모델들의 구매를 원한다면 플래그십 도쿄에 방문할 메리트는 충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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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저녁을 먹으러 근처의 오므라이스 & 함박스테이크 집, '니쿠토타마고'(한국어로 '고기와 계란')에 왔다. 함박스테이크와 오므라이스를 각각 먹어보고 싶었는데, 둘 다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선택지라 괜찮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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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을 하고 카운터석에 앉았다. 함께 시킨 맥주는 기린의 '하트랜드'인데, 얼핏 사과향이 나는 무난한 라거 타입 맥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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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반찬 중에서는 왼쪽의 양파수프가 기대 이상이었다. 맑으면서도 진한 국물이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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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나온 필자의 '철판 더블 함박 오므라이스'. 큰 함박 스테이크 두 덩이가 오므라이스 위에 올라가 있다. 가격은 맥주 1병까지 합해 2490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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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과 오므라이스, 모두 그 맛이 엄청나게 대단하진 않아도 기대를 충족시켜 줄 정도는 된다. 축구로 치면 전방에서 간간이 득점을 터트려 주는 투톱 스트라이커랄까. 다음에 오게 되면 꼭 따로따로 먹어봐야겠구나 싶다.


R0011927.JPG 계산 후에 받은 가라아게 2개 혹은 계란 2배 무료권. 다시 올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받아는 놨다.

이렇게 도쿄에서의 7일 차도 마무리됐다. 다소 늦게 시작한 하루였지만, 낭만의 농도(?)만큼은 프라모델을 찾아 떠돌던 첫날 못지않게 진했던 날이 아니었나 싶다.


내일은 오전 중에 출국인 만큼 시간이 별로 없지만, 일찍부터 움직인다면 뭔가 더 할 수 있을지 모르니 빨리 숙소로 가야겠다. 다만 그전에, 와이프에게 부탁받은 것들이 있으니 돈키호테서 쇼핑만 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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