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던 스티커를 노트북에 붙이며
요즘 화제의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 2'에 푹 빠져있다. 공부나 취준 이외의 시간에는 이걸로 '사이버펑크 2077'이라는 게임만 죽어라 하는 중인데, 아직 먼 미래인 2077년의 미국에서 열심히 신체를 기계로 개조하고, 나쁜 놈들에게 총알맛을 보여주는 재미가 쏠쏠하다(사실 주인공도 그리 좋은 인간은 못 된다).
헌데 게임을 구매할 때 케이스 안에 스티커가 딸려왔다. 출시한 지 꽤 오래된 PC용 게임을 다시 스위치 2 버전으로 내놓은 거라 보너스 형식으로 제공된 것인데, 이걸 한동안 책상 위에 두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더랬다. '저걸 어따 쓰지...'라고 생각만 하면서. 원래 노트북에 가끔 스티커를 붙이기도 해서 그냥 그렇게 써도 됐건만, 고질병인 '수집욕'이 다시금 고개를 드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책상 자리만 차지하도록 내버려 뒀던 것이다. '더 좋은 곳에, 더 나은 곳에 쓸 기회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무려 3주씩이나 말이다.
하지만 필자와 같은 '중증 수집병'에 걸리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가 아끼다가 똥을 만든 것들이 거짓말이 아니라 한 트럭은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무리 바라고 원해도 우리가 원하는 '더 좋고 나은 기회'는 좀체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보통 그전에 우리가 스티커의 존재를 잊곤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생각의 근원이 우리의 마음속 한 구석에 자리한 '내가 설령 사용하지 않더라도 쥐고 있고 싶어', '결코 남들 좋은 일은 하기 싫어'라고 하는, 나 자신이 보기에도 부끄러운 몹쓸 마음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그냥 쿨하게 써버렸다. 어디에 붙일까 고심한 끝에 과감하게 맥북의 상징과도 같은 사과 로고를 가리기로 하면서 말이다.
오... 썩 마음에 든다. 붙어있는 모양새도, 책상 위에 공간이 생긴 것도. 이 녀석도 자칫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는 N번째 스티커가 될 뻔했는데, 그러지 않길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뿌듯한 것은 쓰지도 않을 거면서 쥐고만 있으려는 욕심을 한 톨은 덜어냈다는 사실. '아니 그깟 스티커 하나를 쓰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지만, 언급했듯 '수집병 환자'인 필자 입장에서는 이런 것 하나를 쓰는 데에도 나름의 각오와 용기(?)가 필요함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나한테 쓰는 것도 이리 후련한데, 내게 필요 없는 것을 남에게 기꺼이 베푸는 이들의 마음은 대체 얼마나 넓은 것이며, 또 어디까지 후련해질 수 있단 말인가. 아직 수행이 부족해 거기에까지는 채 닿지 못했지만, 그간 묵혀뒀던 스티커들을 꺼내 어디에 붙이면 좋을지 한 번 생각해 보면서 조금은 생각이라도 해보려 노력해야겠다. 그러면 스티커 이외에도 내가 아끼고만 있던, 혹은 앞으로 쥐고만 있게 될 그 수많은 것들이 더 귀하게 쓰이는 기쁨을 앞으로 더 많이 맛보게 될 수도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