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큐레이션(2022)> 북 리뷰
우리는 때로 오로지 느낌에 의존해 무언가를 선택하곤 한다. 영화, 식당, 심지어 연애 상대까지도. 그중에서도 책은 그런 방식으로 가장 자주 고르게 되곤 하는 뭔가가 아닐까 싶다. 서점에 들어가서 표지만 보고 책을 골라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테니 말이다. (만약에 그런 경험이 없다면 필자에게 돌을 던지셔도 좋다. 어차피 맞지 않을 테니까.)
필자에게 있어 ⟪도쿄 큐레이션⟫이 그랬다. 오로지 '도쿄'라는 도시, 그리고 공간에 대한 애정으로 구매하게 된 책. 당분간은 두 발 닿을 일 없을 그곳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 한 권으로 달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기대감으로, 그리고 에디터인 저자가 얼마나 섬세하고 진중한 시각으로 그곳을 바라봤을지에 대한 궁금함으로 532쪽이라는 두께를 자랑하는 책을 집어 들고야 만 것이다. 이렇게 오로지 느낌에 의존해 집어든 책들은 대부분 다 읽기도 어려울뿐더러, 읽고 나서도 좋은 감정을 갖기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이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그렇듯 적중하고야 말았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말이다.
6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저자가 도쿄라는 공간을 자기만의 기준으로 열심히 훑어낸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도쿄라는 도시 자체를 '큐레이션'하는 데에 집중한다.
하지만 큐레이션이라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저자의 취향에 기반해 골라낸 좋은 것들'을 소개하는 행위. 이 책을 보는 동안 우리는 오랜 기간 잡지사 패션 에디터로 일한 저자의 전문 분야인 패션과, 그에서 파생된 관심 분야인 디자인, 건축 등에 대해 진득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아니 가져야 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해당 분야들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적다면, 적어도 저자에 준하는 만큼의 관심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당신이 새로운 책을 접했다는 설렘은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한다는 피로감으로 인해 빠르게 지워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을 터이니 말이다.
필자 역시 도쿄를 두 번이나 갔다 왔고, 스스로가 이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자부할 수 있었음에도 이 책을 쉬이 읽기는 쉽지가 않았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어쩌면 필자는 단순히 이 책이 '일반인의 도쿄 살아남기'같은 내용일 거라 기대했던 것 같다). 앞서 설명한 기조로 방대한 내용이 계속해서 나열되는 것은 물론, 때로는 소소하고 개인적인 표현들의 반복으로 인한 낯간지러움 또한 필자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만큼 이 책이 결코 완독하기 쉬운 종류의 책이었다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이슈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포기 않고 완독한 이유는 읽는 동안 도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음은 물론, 필자에게 필요한 내용과 요소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저자의 번뜩이는 표현능력이 그중 하나. 최근 필자에게 있어 고민 중의 하나가 수려한 표현, 그러니까 소설이나 시에서 주로 접할 수 있는 종류의 표현 능력이 약하다는 부분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이성과 감성의 영역을 넘나드는 좋은 언어적 표현들이 많아 글쟁이 입장에서 참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비록 감정의 과잉이 적지는 않으나, 오랜 기간 잡지사 에디터로 근무하며 좋은 표현들을 꾸준히 콘텐츠화해 온 저자의 내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특정한 생각과 취향을 가진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우리가 알고 있던 도쿄를 새롭게, 더 깊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강점. 새로운 시각으로 다양한 지식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며, 기존에 알고 있던 것도 다시 바라보는 '열린 자세'의 중요성은 몇 번이고 강조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마 이 책은 대부분의 독자에게 생경한 경험으로서, 그러니까 익숙함에서 벗어나 생각을 전환하고 다른 시각을 갖게 만드는 촉매로서 작용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쿄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이지만, ⟪도쿄 큐레이션⟫이 이를 바라보는 방식은 다소 개인적이고, 일반적인 방향과는 결이 약간 다른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도쿄를 큐레이션 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저 도시라는 딱딱한 주제를 상대적으로 말랑한 '브랜드'라는 개념으로 바라보며 정보를 나열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쉬운 작업일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이 거대한 도시를 그저 바라보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오랜 기간을 들여 깊게 들여다봤고, 부드럽게 소화해 내는 데에 성공했다. 때문에 ⟪도쿄 큐레이션⟫이 단순히 정보 제공을 넘어 생생한 현장감과 고유한 느낌, 그리고 도쿄에서 태어나 그 일부가 되어 살아온 이들의 값진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비록 그녀가 개인적 사정으로 예기치 않게 도쿄에 뚝 떨어졌기에 철저한 의도 하에 이 책을 만들었다는 표현을 할 수는 없겠다마는, 한 개인이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를 사랑하고자 노력하며 치열하게 매일의 삶을 살아낸 흔적으로서도 이 책은 나름의 가치를 갖는다 평하고 싶다.
물론 일반적인 도쿄 여행 수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하게 될 가능성도 적잖은 만큼, '패션 에디터가 전하는 내밀한 도쿄 이야기'라는 문장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다른 책을 고르심이 맞을 듯도 하다. 보다 쉽고 일반적인 내용을 수려하고 정돈되게 담아낸 도쿄 여행책들은 얼마든지 있을 터이니. 하지만 한 사람이 진득하게 타지에서의 삶을 꾹꾹 눌러 담은 책을 보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고 싶다면 읽어봐도 괜찮은 책임에 분명하다. 그게 어쩌면 자칫 평범해 보이고, 흘려보내기 쉬운 우리의 매일을 보다 진중하게 살아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결단으로 이어지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 제목: ⟪도쿄 큐레이션⟫ (부제: 에디터 관찰자 시점으로 전하는 6년의 기록)
- 저자: 이민경
- 출판사: 진풍경
- ISBN: 9791197915277
- 발행(출시)일: 2022년 07월 01일
- 쪽수: 532쪽
- 크기: 142*205*37 mm / 881g
- 가격: 20,700원(교보문고 모바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