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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Jan 23. 2021

영화 리뷰: <그래비티(2013)>

생의 의지를 모두 잃은 당신에게 권합니다.

서문


좋은 영화는 때로 단순한 시간 때우기나 즐거움을 뛰어넘어 '놀라운 체험'으로 기억된다고 했던 이동진 평론가의 말에 백 번 공감한다. 감사하게도 필자 역시 그런 체험을 몇 번 할 수 있었는데, IMAX 3D라는 새로운 시스템의 등장과 함께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아바타(2009)>가 그랬고, 놀라운 그래픽과 색감으로, 그리고 이야기로 나를 현혹시켰던 <라이프 오브 파이(2013)>가 그랬다. 그리고 영화 <그래비티(2013)> 역시 그러했는데, 영화관을 나오면서 눈앞이 하얘지면서 현기증이 났던 영화는 이 영화가 유일했기에, 내게는 굉장히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지난 2018년, 영화관에서 이 영화가 IMAX 3D로 재개봉한다고 했을 때 단 한 줌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예매를 하고 용산 아이맥스로 달려갔다(사실 이 글은 2018년에 영화관에서 재개봉한 당시에 보고 써놨던 글로, 약간의 수정을 거쳤습니다).





짧게 감상부터 말해보자면, 2회차 관람한 <그래비티>는 내게 2013년과 또 다른 의미의 영화가 되어있었다.


2013년, IMAX 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첫 관람 당시에는 광활한 우주 한 켠을 뚝! 떼어다가 스크린으로 옮겨다 놓은 시각효과 그저 넋을 . 정말 그 의 다른 부분은 보이지 않 정도로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시 보지 못했던 스토리적인 부분들을 하나하나 맞추어나가는 느낌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느이전과는 또 다른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관람 당시 느꼈던 현기증은 발생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글에서는 그 '메시지'에 집중하기 위해, 굳이 스토리를 주욱 나열해가며 느낀 바를 이야기하고 싶다.







*이후로 영화의 결말을 포함해 스포일러가 다량 포함된 글이 이어집니다.

신경이 쓰이신다면 영화를 보고 오신 후 읽으셔도 늦지 않으니,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스토리, 그리고 필자의 생각



'우주의 눈'이라 불리는 허블 망원경을 고치기 위해 파견된 나사의 우주 탐사대원들. 그러나 돌연 폭발한 다른 위성의 잔해들이 고속으로 망원경과 우주선을 덮치는 예상치 못했던 사고가 일어나고, 두 명을 제외한 모든 대원들이 사망, 우주선마저 산산이 부숴지며 살아남은 두 대원들 조차 무사귀환을 장담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첫 번째 생존자.

초짜 우주인,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


고작 6개월의 훈련만 받고 우주로 나온 우주인, 첫 임무에서 위성 파편들에 맞아 달랑 우주복 하나만 입고 우주로 떨어져 나가게 될 확률은 대체 몇 퍼센트일까. 런데 그녀의 첫 임무에서 스톤박사는 고속으로 날아온 파편들로 인해 추진체도, 그 무엇도 없이 그저 지구에서부터 계속, 계속 멀어져만 가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고 만다.




그런 스톤 박사를 구해준  두 번째 생존자이자 번 미션의 총 책임자, '맷 코왈스키' 박사(조지 클루니).


이번 비행을 마지막으로 은퇴 후 여생을 즐길 예정이었던 그. 하지만 스톤박사가 위기에 처하며 그는 잔혹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살리고 죽느냐,

죽이고 살아남느냐





결국, 그는 끊어질 뻔 했던 스톤 박사의 생명의 끈을 이어놓고 그녀 대신 머나먼 우주로 끝 없이 떠내려가게 된다. 안하고 아름다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불구, 코왈스키는 박사를 대신해 기꺼이 그의 삶을 내준 채 통신이 끊기기 전까지 계속 스톤 박사가 지구로 돌아갈 수 있게끔 여러 지시를, 그리고 응원을 해주며 최선을 다한다. 상급자로서,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영화를 보고 수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야 각하게 된 것이지만,  어느 누가 이런 상황에서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 찰나의 순간 코왈스키가 내린 선택의 무게 대체...








하지만 살아남았다는 기쁨도 잠시. 스톤 박사는 필사적으로 도착한 마지막 보루, 러시아 정거장의 우주선마저 연료 부족으로 기동이 불가능하고, 그 결과 이대로 죽을 때까지 우주를 떠다녀야 한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가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그녀 한 명 뿐다.

희망이 사라진 데에서 오는 좌절감, 코왈스키가 자신을 대신해 희생했다는 데에서 오는 죄책감 오롯이 느낄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험난한 우주공간 홀로 남겨진 스톤 박사는, 결국 선내의 산소를 제거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택하고야 만다.




'아니, 기껏 살려놓았건만, 대체 왜 죽으려고 하는거야?'



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앞서 말했 스톤 박사는 어디까지나 1. 초보 우주인. 게다가 무시무시한 우주폭풍을 얻어맞고 코왈스키를 비롯한 동료들의 죽음을 눈 앞에서 지켜본 직후2. 냉정함을 유지하기 힘든, 아니 유지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리고 글에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 스톤 박사는 3. 딸의 죽음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인물이다(영화 내에서 초반에 언급됨). 그러니 아무리 코왈스키에 의해 한 차례 살아남았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그 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 여전히 그녀 자신은 '살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태'인 것이. 이런 데다 4. 마지막 희망이었던 우주선의 연료마저 바닥으니...

그녀가 목숨을 끊으려 하는 도 사실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언제나 그랬듯, 포기는 가장 쉬운 선택지이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존 본능'은 그리 약하지 않았다. 희박해진 산소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정신을 차리게 되는 스톤 박사는 다시금 자신이 받았던 교육들과 코왈스키의 조언을 바탕으로 착륙용 추진체(착륙 시에 발화되어 지구에 충돌하는 충격을 줄여주는)를 동력으로 사용한다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정거장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그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중국 우주 정거장에 가까스로 도착하는 데에 성공, 탈출선에 탑승해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게 된다.






<그래비티>는 우주, 그리고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사고를 당한 탐사대원이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오로지 그 하나에 집중한 영화라는 점에서 꽤나 단순한 구성의 영화이다.

(심지어 등장인물도 두 명 밖에 없는데다 그마저도 한 명은 영화 초반에 사라져 버린다...)


단순한 구성의 작품인 만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역시 간단한 듯 지만, <그래비티>가 그저 '눈이 호강하는 영화'라는 수식어를 뛰어넘어 명작으로까지 인정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어디까지나 관객들의 마음 속에 깊은 울림을 주는 '무언가'가 더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사랑했던 딸의 죽음으로 삶의 의미를 모두 상실한 채 생을 이어가던 스톤 박사. 그가 갑작스레 우주에서 마주하게 되는 재난은 그녀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난이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그 순간 주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살아있어야 하는가?' 라는, 인간의 존재 이유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이처럼 관객에게 생각해볼 여지를 제공하는 영화가 진짜로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인간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이는 스톤 박사도 마찬가지이기에 그녀는 한 차례 삶를 포기하지만, 코왈스키가 그녀의 생명의 불씨를 다시 살려 놓는다. 우리가 때로 우리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외부적인 것들로부터 삶의 이유를 되찾는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몇 차례 위기를 더 겪고 나서야 결국, 그녀는 삶의 이유를 상실하게 만들었던 주된 원인인 딸의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너무도 아픈 기억이었기에 숨기며 살아왔지만, 그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한 덕분에 그녀 안에서 꺼져버렸던 '삶을 향한 의지'가 조금씩 되살아나게 되고, 그렇게 그녀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점점 간절해질 수록 관객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 역시 점점 힘을 얻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톤 박사가 모든 것을 이겨내고 지구로 귀환하면서, 그녀가 위기를 헤쳐나왔던 그 지난한 과정들과, 비로소 빛을 발하는 코왈스키의 숭고한 희생이 주는 메시지가 하나가 되어 관객들에게 심플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삶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면 안 된다'고 말이다.



본디 단순한 것이 가장 강하다고 하지 않나. 아마도 공간을 우주로 한정하고, 스토리의 단순화한 것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기 위한 아주 영리한 연출 전략이었으리라.






마무리



지구에 착륙한 우주선이 강으로 빠지고, 스톤 박사가 뭍으로 기어나와 두 발로 땅을 밟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이 난다. 헌데 이 장면이 순간 아기가 엄마의 양수를 뚫고 태어나는 모습처럼 인 것은 단순히 내 착각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연출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기에, 아마도 영화를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딸의 죽음과 함께 한 차례 생명을 잃었던 스톤 박사의 삶이 다시 시작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입은 어떠한 상처도 치유될 수 있며, 그를 거름삼아 다시금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라는 메세지를 이 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보여주려했던 것은 닐지.

비록 스톤 박사 지구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동안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살아있다면, 일단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 그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러므로 생의 의미를 상실한 채, 끝없는 어둠 속에 부유하고 있을 당신에게 이 영화를 권한다.

머지 않아 당신의 생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표류가 끝나고 그 두 발이 땅에 닿았을 때, 당신도 스톤 박사처럼 그저 살아 숨쉬고 있음에, 당신이 밟고 설 땅이 언제나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었음에 감사하게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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