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트루 Mar 24. 2020

영화 리뷰: <스포트라이트(2016)>

우리는 때로 '불편함'과 마주해야만 합니다.


새는 알에서 태어나기 이전까지 '알'이라고 하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만, 그 알을 깨지 않으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올 수 없고,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라는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알에서 나오지 못하는 새는, 과연 '새'라고 할 수 있는 존재일까요?







이후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줄거리, 엔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이 이어지니, 불편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읽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른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지만, 영화 <스포트라이트(2016)>는 미국의 유력 일간지 중 하나인 '보스턴 글로브' 소속의 '스포트라이트 팀'이 보스턴의 가톨릭 교구 소속 신부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에 대해 파헤쳐가는 가운데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그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기독교와 가톨릭이 국교나 마찬가지이기에 성직자들의 위치가 하늘과도 같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를 겁내지 않았던 용감한 몇몇 언론인들의 힘으로 인해 그동안 감춰져있던 가톨릭 교구 소속 신부들의 민낯과, 그리고 이를 알면서도 그들의 명예실추를 두려워해 감싸고만 있던 교단의 추악한 행태가 낱낱이 밝혀지고,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믿고 옹호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던져주었던 거대한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지요.


'헐크' 혹은 'Dr. 배너'로 익숙한 배우, 마크 러팔로. 이번 영화에서는 감정적으로 관객을 쥐락펴락해 몰입도를 한 층 끌어올리는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다른 쓸데 없는 요소를 거의 제거하다시피 하고 딱 한 가지에 대해서만 집중합니다.



'정의로운 언론인들이 기존의 부당한 현실을 뚫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바로 이 선택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게다가 재미있게 만듭니다. 쓸데 없는 요소가 전혀 없어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를 골라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제대로 다루는 영화인 척해놓고, 뚜껑을 열어보면 그 주제는 온데간데 없고 액션, 로맨스, 코믹, 블록버스터, 신파를 다 때려넣어 버무린 몇몇 삼류 영화들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이 영화는 올라가 있습니다. 영화의 장르적 특성상 호불호는 물론 갈릴 수 있겠으나,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들보다 이 주제에 대해, 이 주제에 대해서만 진지하게 다루고 있으며, 이를 보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습니다. 거의 쉬는 모습 없이 '스트레이트'로 일해가며 집요하게 진실을 파헤쳐가는, 오로지 그 한 가지만을 위해 정말 모든 것을 바쳐 일하는 이들의 모습은, 관객의 마음 한 구석에 불꽃를 피어오르게 만듭니다. "그래! 저게 진정 직업윤리의식을 가진 직업인의 모습이지!"하고 말이에요.


특유의 활짝 웃는 미소로 유명한 레이첼 맥아덤스. 그런 그녀마저도 이 영화에서는 미소를 거두고 완벽한 언론인으로 변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출연진들 또한 이 주제의 무거움에 대해 잘 알고, 그에 걸맞는 연기를 보여줬다는 느낌이 이 영화를 더욱 완벽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순히 '홍일점'역할로 낭비되지 않고 극의 주제와 그의 역할에 맞는 선에서의 언론인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리고 영리하게 연기한 레이첼 맥아덤스와,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기자 역할로서 극의 감정선을 쥐락펴락한 마크 러팔로에게 가장 큰 감명을 받았지만, 그 외 여타 주조연 배우들도 어느 한 명 빠짐없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극 전체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그 어느 한 부분도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실 수 있을 거에요(제발 발연기 하는 배우들이나 아이돌들 무리하게 넣어서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무너뜨리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거 하나가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좌지우지 할 때기 있다는 걸 본인들이 더 잘 아실거 아닙니까).



정말 단 한숨도 쉬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이런 언론인들이 더 많아지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워질 겁니다

진실은 때로 불편하고 아프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를 외면하고 사는 길을 택하곤 합니다. 우리는 이 험한 세상에서 '진실되게 산다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면서 깨닫게 되고, 그걸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우는 것을 결국 포기하게 되고는 하죠. 우리는 쥐고 있는 게 너무 많고, 그러다보니 그 편이 훨씬 쉽다고 느껴질 때가 많으니까요(솔직히 말하자면 말이에요). 마치 몇 푼의 합의금과 신앙심을 인질로 잡혀 자신의 일곱 명의 자식들이 모두 신부에게 강간을 당했음에도 꾹 입을 다물고 살았던 부모나,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의 가치가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신고를 하려는 성폭행 피해자의 어머니를 말렸던 주변 신도들처럼 말이죠(저는 단지 영화에서 나왔던 사실을 전달할 뿐, 이들을 비난하는 입장에서 이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당사자가 되어보지 못한다면 아무도 그 상황에서 '나는 이렇게 할건데!'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되게 살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 스스로가 '어른'이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어른이라는 단어가 단지 '나이먹은 사람'을 지칭한다면 뭐 맞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어른이라는 단어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생각하기에, 단호히 "그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여기, 스포트라이트 팀이 모든 언론인들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깨어있습니까?"

자, 처음으로 돌아가 질문에 답을 하자면, 저는 알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새가 되지 못한 어떤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스스로가 아직 진실을 마주하기를 두려워하고 감추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그저 '어른이 되지 못한 무엇'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 아닐까요? 


영화에서 스포트라이트 팀이 기존의 질서에 거스르기까지 하면서 불편한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과정과,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숨어있던 피해자들이 그들의 노력에 마음을 열면서 그들의 사회에 정의라는 것이 바로 서고, 과거로부터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큰 부분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고 앞으로 남은 삶을 온전히 살아가게 되는 이 일련의 과정에서, 저는 당시의 보스턴 사회가 스포트라이트 팀 덕분에 알에서 깨어나 더욱 더 성숙하고, 어른른스러운 사회로 성장하는 모습이 연상되더군요. 하지만 이 영화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었던 부분은, 이 스포트라이트 팀 또한 다른 보스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 때 현실과 타협하며 진실에서 등 돌리고 있던,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로 스포트라이트 팀이 거둔 성과는 결국 '용감한 소시민들', 그러니까 '우리들'이 스스로 이루어낸 성과가 되고, 그렇기에 더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일 그들이 우리보다 월등한 신체나 특수능력을 가진 히어로였다면, 우리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의미로 이 영화가 받아들여지진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몇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런 생각이 드네요. 


오랜만에 쓰느라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려버렸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감동은 물론이고, 직업윤리에 대해서, 그리고 부당함에 맞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등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아주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재개봉하는 작품은 다~ 그럴만 한 이유가 있는 작품입니다 역시. 미래에 언론인을 꿈꾸고 계신 분들, 그리고 현재 언론계에 몸담고 있지만 헤메고 계신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은 영화입니다. 꼭 보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리뷰: <완벽한 타인(201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