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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Nov 26. 2018

영화 리뷰: <완벽한 타인(2018)>

명배우들과 명연출이 빚어낸, 한 편의 멋진 막장드라마.

※스포일러 주의!※

영화 내용의 전반적인 흐름을 포함하고 있는 스포일러가 이후 계속 이어집니다.

영화가 개봉한지는 오래되었다지만, 이 영화를 아직 기대하고 계시는 미관람자 여러분께서는 필히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길 바랍니다.












핸드폰을 끼고 사는, 이제는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변한 우리 현대인들에게 핸드폰은 꽤나 민감한 부분이다. 그 증거로, 핸드폰을 남에게 공개한다는 행동이 '신뢰의 증명'과도 같은 일이 되어버렸을 정도로 꽤나 어렵고, 불편한 일이 되지 않았는가? 친구, 연인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부부 사이에서도.


남자들 사이에서 어릴 적부터 그 사이가 너무나 막역해, 흔히 'X알친구'라는 단어로 설명되곤 하는 관계인 남자 넷,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동석한 그들의 아내들이 이번엔 그 시험대에 오른다. 잘 나가는 성형외과 의사인 진호(조진웅)의 집들이 기념 저녁식사에서 우연찮게 꺼낸 이야기로 이 '진실게임'은 시작되고, 왜 이런 불편한 게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하기도 전에 이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불편한 진실들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들을 하나씩, 하나씩, 오픈하게 된다.



저녁 시간만 되면(이제는 아침 시간에도) 우리네 브라운관을 터질 듯 메우고 있는 막장 드라마들. 그 흔한 특징 중 하나는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소재가 불륜, 출생의 비밀, 우연한 기회로 인한 여주인공의 신분상승, 불륜, 불륜.....으로 꽤나 한정지어져 있다는 사실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 예측 가능성에서 오는 일종의 심리적 안정감(과 어느 정도 보증되는 안정적인 시청률)때문인지 아직 주말드라마의 이런 '막장화(化)'는 현재 진행 중인 것 같다. 참으로 안타까운 대한민국 드라마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런 소재 외에 대체 어떤 것으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데?" 하며 날 선 질문을 한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저 '무난하게 잘 팔린다'는 이유로 그냥 그저 그런 기획들을 공장처럼 찍어내기 바쁜, 때로는 팔리지 않을지언정 다양한 컨텐츠들을 만들 용기를 발휘하기에는 이미 너무 고여버린 기획자들의 행보가 아쉽다는 것이다. 이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오늘의 영화, '완벽한 타인' 역시 그렇다. 2016년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인 <퍼펙트 스트레인저스>를 리메이크한 영화로, '핸드폰의 공개'라고 하는 자극적이고 민감한 소재를 메인으로 들고 나온 영화이지만 역시나 주제는 일반적인 드라마들과 다를 것이 없다. 불륜, 흔들리는 가정, 흔들리는 우정 등.


허나 이 영화가 다른 무수한 막장드라마들과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1. 연출



집들이 장소인 진호의 집, 사각형의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 보아야 하는 1.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게임. 그런데 그 게임이 서로의 어떤 진실을, 언제 내보여야 할지 전혀 알 수 없는 2. '숨 막히는 게임'이라면, 그리고 그 상황에 여러분이 처했다면 어떠시겠는가. 실로... 긴장되지 않으시겠는가?


예진(김지수)의 제안으로 반 강제적으로 시작된 게임. 그리고 참으로 영화답게,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한 가닥 씩은 밝히기 어려운 불편한 진실들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대부분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참여하지 않으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 곳에 정말 아무런 거리낄 것도 없었던, '죄 없는 어린 양'들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애들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이런 때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또한 참으로 영화답다.


그들로 인해 불행히도(물론 관객들 입장에서는 재미있지만) 게임은 시작되고, 누가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언제, 어떤 비밀이, 어떤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관객들은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게 판이 벌어진다. 공간을 한정해 놓고 스토리 전개를 더욱 숨 막히게, 긴장감 있게 만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스타트를 끊으며 이 영화는 시작한다.





하지만 긴장도 계속되면 지루함이 되는 법. 특정 강도의 자극이 계속되면 그 자극에 익숙해져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되는 인간의 특성상, 긴장이 있으면, 완화도 필요한 법이다(영화에 몰입한 관객들은 마치 자신이 그 상황에 들어있는 것처럼 느끼는 경향이 있지 않던가. 특히나 '일상'을 보여주는 드라마 장르에서는 더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은 더욱 중요하다). '완벽한 타인'에서는 그 '긴장감 완화'라는 것을 위해 두 가지 완충장치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1. '또 다른 공간', 그리고 2. '유머'를.





한강뷰가 보이는, 좋다는 말로는 부족할 너무 좋은 집. 아무리 주된 영화 배경이 거실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공간들도 좀 보여줘야 아쉽지 않겠나. 안방, 화장실, 여러 공간이 스쳐가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로 '테라스'라는 공간을 통해 영화 내내 이어지는 긴장감을 상쇄한다. 남자, 아니 친구들끼리는 담배를 피우며 거실에서는, 그들의 아내 앞에서는 절대 털어놓을 수 없을,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고민과 치부를 드러내며 '대책회의'를 하고, 혹은 드러난 진실로 인해 무거워진 공기를 의도적으로 환기하기 위해 모두들 테라스로 우르르 이동해 애써 화기애애한 무드를 조성하려 애쓰기도 한다. 이런 것을 통해 그들 사이의 어색해진 무드만이 아닌, 관객들 사이에서 높아진 긴장감마저 해소된다.


그리고 또 하나. 그 긴장감 넘치는 테이블에서도 관객들을 웃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유머'이다. 극 중 인물들이 다 같이 빵! 하고 웃음이 터지는 상황은 물론이거니와, 극 중 인물들은 절대 웃지 못할 상황이지만, 그 상황을 제 3자의 입장에서 그저 지켜볼 뿐인 우리 관객들에게는 충분히 웃음 포인트로 작용할만한 어이없는 상황들이 이 영화 내에서는 적재적소에 잘 배치되어있는 편이다. 특히나 심각하고 진지하기만 한 영화가 잘 팔리지 않는 대한민국 영화시장에서, 이 영화가 지금 각광받을 수 있는 이유는 아마 이런 유머적인 요소의 힘 또한 컸으리라(2018년 11월 25일 기준 500만 명을 바라보고 있는 흥행성적이 이를 증명한다).





2. 연기


포스터를 다시 한번 보자. 가운데 위치한 배우들과, 밑에 적힌 일곱 배우들의 이름에 주목하자.
'와... 이 배우들이 한 자리에?' 싶지 않으신가.


주, 조연 자리를 가릴 것 없이 '연기 잘한다'는 평판을 듣는 배우들이 이렇게나 많이 출연하다니...! 좀 과한 비유일 수 있겠지만, 이 정도면 '한국 영화계의 어벤저스'라 표현해도 딱히 부족함은 없을 그런 캐스팅이다. 특히나 블록버스터 장르가 아닌, 드라마적 장르에서 이렇게 많은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사실에 아직 관객들은 '오....!' 보다는 '....왜?'라는 반응을 더 많이 보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번 '모임'은 더더욱 그런 평가를 받아도 무방한 것이 아닐까 싶다. 출연한 배우 대부분이 그들의 기존 이미지에 크게 엇나가지 않는 역할을, 그들 몸에 잘 맞는 옷을 걸치고 그 기대에 부응했기에 이 영화는 배우들의 이름값만 믿고 볼 만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많은 영화'에도 분명하고.


하지만 이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메인 스토리'를 이끄는 몇몇 주요 배우들과 '서브 스토리'를 담당하는 배우들의 역할이 연출 의도와 각본에 따라 나뉘기에 각 역할의 중요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냈는가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준 몇몇 배우들을 언급을 굳이 하고 넘어가고 싶다. 개인적으로 '와... 이 배우, 이런 배우였어?' 싶은 연기를 보여준 두 배우를 말이다.




태수(유해진)의 아내인 수현 역할을 맡은 염정아가 그 첫 번째.


솔직히 필자는 그녀의 작품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염정아'라는 세 글자를 들으면 특유의 차갑고 지적인 이미지에서인지 그간 날카롭고, 예민한 인물로 등장한 영화나 드라마가 먼저 떠오르곤 한다('범죄의 재구성(2004)', '장화홍련(2003)', 그리고 최근의 '장산범(2017)' 포스터가 필자가 가지고 있는 염정아라는 배우에 대한 주된 이미지라는 것을 참고해주시길). 그래서 이번 영화의 스토리나, 등장 배우, 심지어 포스터마저도 제대로 보고 영화를 보러 갔던 필자는 그가 스크린에 등장했을 때, '역시나 이런 이미지의 역할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도.




하지만, 그곳에 염정아는 없었다. 오로지 수현이라는 캐릭터만 있었다.




그가 이번에 맡은 수현이라는 캐릭터는 고시생이었던 태수(유해진)를 뒷바라지하며 어릴 때부터 지고지순한 사랑을 키워온 인물로, 막상 결혼 후 태수가 그를 외면하고, 아이들과 시어머니 뒷바라지에 지쳐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태수를 사랑하고 그만 바라보는, 전형적인 '현모양처' 캐릭터이다. 자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엄마이자, 일 밖에 모르고 가부장적이고 근엄한 남편 앞에 언제나 소심해지고 작아져있는, 하지만 가끔 뜬금없는 문학소녀 기질을 발휘해 주변을 민망하게도 만들기도 하는, 과거 대한민국의 '어머니'들 그 자체인 캐릭터를, 염정아는 너무나도 잘 소화해내고 있었다.


심지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약간은 수수하고 연하게 덧바른 메이크업이라든가, 그로 인해 거칠게 느껴지는 피부결과 피부톤, 그리고 아주 미묘한 표정에서까지.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염정아'라는 배우에 대한 이미지를 전혀 찾을 수가 없을 만큼, 그는 말 글대로 '수현 그 자체'가 되어 영화 내내 무시 못할 존재감을 발휘한다.




그리고 유해진. 




어떻게 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면 좋을까.


그가 이 영화에서 약방의 감초이자, 닭가슴살 위에 뿌려진 후추요, 해외여행 갔을 때 캐리어에 챙겨 온 컵라면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면 충분한 표현일 수 있을까? 그를 그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하는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아쉽다. 그를 그도 아는 것인지, 그 자신이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굉장히 지능적으로, 또 능수능란하게 '극을 이끌어가는 힘을 가지고 있는 배우'임을, 그 자신이 그저 '연기 잘한다'는 수식어로는 부족한 배우임을 이 영화를 통해 마음껏 증명하고 있다. 마치 자신이 맡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잔잔하게 배경음악을 연주하다가, 자신이 치고 나와야 할 솔로잉 파트에서 제대로 치고 나와주는, 유명 밴드의 노련한 기타리스트를 연상케 한달까.


물론 그의 아이덴티티나 마찬가지인 코믹스러운 요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이다. 여전히 유해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해진이고, 그는 우리가 생각했던 정도의 웃김을 보장하는 그런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앞에서 이 영화가 '유머'라는 요소를 통해 분위기 반전을 제대로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유해진의 힘이 굉장히 컸으며,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일반적인 막장드라마에서 '코믹' 막장드라마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그에게 있었음을 말이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그의 역할을 100%가 아닌, 200% 수행했다 할 수 있겠다(앞에 '코믹'이라는 단어 하나가 추가되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다. 그런 것이 가능한 배우가 '대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고).


A학점인 영화에 +를 붙여주는(이 영화의 평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비유이다), 그런 세상 몇 안 되는 배우가 바로 유해진이 아닐까.






영화 <완벽한 타인>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하나씩 모여 전체적인 스토리를 완성하는 형식의 영화이기에, 필연적으로 위의 두 배우들 역시 그 이야기의 전체가 아닌 일부를 담당하고 있지만, 영화 내에서 그들의 존재감은 다른 배우들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생각한다(결코 다른 배우들에 대한 평가절하가 아닌, 이번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그들의 존재감이 어떠했느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무리지으며....


막장드라마도 이렇게 명배우와 명연출에 의해 제작되고, 그리고 무엇보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하고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라는 것을 제공해줄 수 있다면, 앞으로 대한민국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공중파 방송에서도 이런 충분히 볼만한, 멋진 막장 드라마들이 더 많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그런 영화, <완벽한 타인>.

원작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괜찮은 한국영화를 볼 수 있어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고, 앞으로 이렇게 더 많은 '생각할 수 있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또 흥행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 영화산업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되지 않을까(제발 되도 않는 부실한 스토리로 영화 만들 거면 리메이크를 하자 차라리... 각본에 아낌없이 투자를 좀 하자 충무로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탄생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고 노력했을 나의 X알친구, 김서륭의 메이저 데뷔(?)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앞으로 영화관에서 그의 이름을 자주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아 이러면 일감 늘어나서 힘들어지려나.... 그러면 너무 자주는 말고 적당히 자주 보는 걸로...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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