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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처음부터 이런 문장으로 리뷰를 시작하고 싶은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 영화,
어설프다!
물론 편집을 거치기 전의 감독판이라고는 하나, 고전명작이라 떠받들어지는 영화라기엔 스토리의 진행이나 여러가지 부분이 어색하고, 조잡하고, 때로는 부족하거나 넘치는 부분들이 곳곳에 보이는 영화였다(이보다 오래 된 영화들도 여러 편 보았기에 옛날 영화라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만일 영화배우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는 케빈 코스트너의 첫 감독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영화관에 갔더라면, 하마터면 영화를 보는 내내 연출에 대한 아쉬움과 불편함을 안고 영화를 볼 뻔 했다.
(비슷한 영화로는 <라스트 모히칸>이 있었는데, 스토리는 다소 달랐지만 인디언이라는 중심 소재가 똑같았고, 명작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는 다소 아쉬운 영화였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지금 기억나는 선에서 이 영화가 아쉬웠던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보자면,
1. 영화에 제대로 얹히지 않는 나레이션
케빈 코스트너의 목소리는 어떤 상황이든 굉장히 밝고, 우렁차게 느껴졌다. 그러지 말았어야 할 상황에서도 그랬다는 게 문제일 뿐. 나레이션 기법은 관객에게 장면에 집중하면서도 자연스레 스토리나, 인물의 감정선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효과가 있는 영화적 기술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쉽게도 영화의 몰입도를 크게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고 있다. 분위기에 맞지 않는 너무나도 우렁찬 케빈 코스트너의 목소리가 뜬금없는 타이밍에 튀어나오는데, 그게 몇 차례 반복되면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상황이 종종 나온다. 중반 이후부터는 주변의 피드백을 받은 건지 나레이션은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처음부터 하든가, 하지 말든가 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하고(물론 처음부터 없는 게 백 번 나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 영화가 어떤 형식을 취할지 갈피를 못잡고 방황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2. 너무 많은 스토리적인 문제들
원작 소설을 보지 않고 평가하기에는 많이 주제넘고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스토리는, 심각하다. 케빈 코스트너 본인이 이것 저것 담고 싶은 이야기들과 형식이 많았는지 여러 가지 시도를 한 흔적이 영화 곳곳에서 눈에 띄는데, 그게 영화 전체적으로 잘 안 묻어날 뿐더러 사족이 되는 경우가 많고, 심하게는 주제의식을 흐리는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크게 세 가지만 언급하고 넘어가보자.
1) 인디언 지역 부임 이유부터가 넌센스?
상사: "인디언 지역에는 왜 가려고?" / 주인공: "... 버팔로 보러요."
주인공인 존 던바는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온 뒤 자원해서 서부의 오지인 인디언 지역으로 부임하는데, 그 이유가 그냥 '버팔로를 보고 싶어서'이다. 필자는 여기부터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 주인공이 그런 생각을 갖게 되기까지 이야기의 '빌드업', 즉 '기초공사'가 전혀 이루어진 상태에서 주인공이 그냥 '축약된 주장'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부의 대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싶어서요. 전쟁의 피비린내에는 이제 질렸습니다."라는 식으로 좀 더 자세히만 이야기했어도, 상사는 물론이고, 관객들에게도 이 사람이 이러는 이유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되지 않겠는가? 근데 주인공은 그걸 안한다. 그냥 버팔로가 보고 싶단다. 이런 식의 막무가내 주장은, 서너 살 먹은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다.
(추가 - 그리고 존 던바를 보내 후 상사가 창문으로 권총자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작은 영화적인 스토리도 그가 인디언들에게 호되게 당한 뒤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이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그렸으면 존 던바가 가는 곳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곳인지에 대해 제대로 암시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아쉽다. 그게 아니라면 영화적으로는 이 인물이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상당히 뜬금없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이런 요소들을 잘 살려서 영화적 분위기를 끌어올려도 모자랄 판에 삼천포로 보내버리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2) 마차꾼 이야기
주인공인 존 던바를 새로운 부임지로 데려다 주기 위해 한 마차꾼 아저씨가 등장하는데, 이 양반이 진짜 '사족 중의 사족'이다. 시덥잖은 개그를 치면서 존 던바에게 자꾸 친한 척을 하길래 '어... 이거 버디무비처럼 가는 건가? 반지의 제왕의 샘과 프로도처럼?'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마차꾼 아저씨는 주인공을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에 정말 뜬금없이 인디언들에게 잡혀 죽고, 다시 케빈 코스트너 원 맨 체제로 자연스레(?) 회귀한다. 인디언들의 무서움을 강조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출연시킨 것이 너무 뻔히 보였고, 비중이 어느 정도 있는 인물처럼 보였다가 순식간에 제거해버리는 데에서 '아... 저 인물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활용할지에 대한 구상이 섬세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구나'하는게 느껴져 좀 어이가 없었달까? 차라리 주인공이 혼자 부임지로 가는 스토리가 훨씬 좋을 뻔했다.
3)그 놈의 러브스토리...
Q. 오지 부족 마을에 갔을 때 당신이 같은 인종,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만나 사랑에 빠질 확률을 구하시오.(5점)' 이 영화가 무려 32년 전인 1990년에 나온 영화였다는 것을 최대한 감안했을 때, '당시에는 무조건 러브스토리가 들어가야 한다는 그 어떤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기에 러브스토리가 들어갔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닐 것 같다(솔로를 커플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만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한 것 같다). 그 동안 온갖 곳에 러브스토리를 넣어대는 영화와 드라마들을 너무 많이 봐서 필자가 너무 민감해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닥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주인공이 인디언 부족에 뿌리를 내리는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하기는 하나, 굳이 러브스토리를 넣지 않았다면 오롯이 이야기가 주인공에게만 집중되는 효과도 있고, 더 담백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원작 소설에는 이런 내용이 과연 있었을지도 궁금하고.
3. '늑대와 춤을'? 타이틀에 놓기에는 너무 빈약했다.
한국에서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영화제목은 '늑대와 춤을'으로 동일했지만, 늑대가 들어간 포스터는 '단 한 장' 밖에 없었다. 그만큼 늑대가 비중이 없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늑대와 춤을'이라는 타이틀을 달기에는 늑대와의 커넥션이 너무 약했을 뿐더러, 마지막에 늑대와의 작별 부분도 너무 성의없이 다뤄졌다.
이 영화에서 우리 늑대친구가 한 일을 나열해보자면,
그냥 기지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갑자기 좀 친해져서 먹이 한두 번 받아먹고,
그리고 둘이서 놀다가 인디언들이 주인공한테 이름 붙여주고,
마지막에 백인들이 와서 쏜 총에 맞아 죽는다.
별 거 없다고? 이게 진짜로 이 영화에서 늑대가 하는 일의 전부이다. 영화 내에서 늑대는 한 단어로 그냥 '갑툭튀'한 존재에 불과하다(오히려 자신이 타고 온 말과의 우애가 더 진하고 깊게 그려지니, 진짜로 주인공처럼 대해져야 할 늑대는 철저히 소외되고 도태되고 만다. 영화 제목으로 들어갈 늑대보다 일개 말의 비중이 더 크면 어쩌란 말인가). 이래놓고 제목을 이렇게 지어놓으면 늑대는 물론, 주인공에게 관객이 오롯이 감정몰입이 되겠는가? 물론 '늑대와 춤을'은 인디언들에 의해 붙여지게 된 주인공의 이름이기에 여러모로 상징성이 있다지만, 주인공의 이름을 그렇게 지을 거면 영화 내에서 늑대와의 에피소드들이 더 많고 진하게 그려졌어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이다. 첫 만남은 으르렁대면서 몇 날 며칠을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친해지는 그런 찐~한 장면들이 있어야 관객 입장에서도 '아, 얘들의 우정이 이래서 깊어졌구나. 친해질 수밖에 없네' 하면서 이들의 관계가 가지는 깊이와 무게를 그 짧은 시간 안에 피부로 체감할 것 아닌가?(심지어 나중에 늑대 죽은 곳에 와서 애도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 왜 고전 명작이었나?
아무튼, 여러모로 아쉬웠던 영화였지만, 이 영화에서도 건질 것은 분명 존재하고, 그 점이 바로 이 영화를 고전명작으로 기억되게끔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이 영화는 이래뵈도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서 각각 감독상을, 골든 글로브에서 작품상을 받은 영화이다).
일단 비주얼. 스크린을 가득 채운 드넓다 못해 광활한 미국 서부지대의 멋진 풍경과, 버팔로 떼 사이를 누비며 사냥하는 역동적인 장면들은 이 영화를 보는 보람을 잠시나마 느끼게 해주는 요소가 되어준다.
(그리고 영화에서 얼마나 연출이 중요한지 알게끔 좋은 예시가 되어주는 부족한 연출까지... 아마 미묘하게 부족했으면 이 영화는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 자부한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포인트는, 백인이 인디언들과 섞이는 장면을 허투루 다루지 않고 굉장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진지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를 충분히 써서 그 과정을 진득하게 전달하기에 얼마나 어렵게 존 던바가 그들과 섞이고 있는지, 섞이려 하는지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지고, 그런 점이 관객들에게 영화의 중심이 되는 메시지를 힘있게 전달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무지에서 오는 공포는 우리를 눈 멀게 만든다.
군데군데 구멍이 송송 뚫린 부족한 영화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 메시지만큼은 굉장히 가치있기에 아주 박한 평을 들을 영화는 아니라 생각한다(하지만 <자전차왕 엄복동>같은 건 예외다). 이 영화를 좋게 기억하고 계시는 분들 역시 이러한 점에서 그렇게 느끼고 계시기에 이 영화에 좋은 평을 주셨으리라.
마무리
땅, 금광 등 다양한 표면적인 이유가 존재하겠으나, 과거 백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학살했던 근본적인 이유 역시 그런 무지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공포.
'낯설다', '이상하다'는 느낌은 인간의 방어기제에 의한 것이고 때로는 우리를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그런 느낌만으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무턱대고 마음의 빗장을 닫아 걸어 우리가 과거 잃어왔던 것들이, 그리고 앞으로 잃게 될 것들이 과연 얼마나 많을지... 완성도로 따지면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영화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혹여 이 영화를 보게 될 기회가 생기신다면,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 그 자체에 대해서만큼은 한 번 쯤 생각해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