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트루 Feb 12. 2021

영화 리뷰 : <해피 투게더(1997)>

흔들리는 장면 속, 흔들리는 청춘들.

※스포일러 주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이기에, 원치 않는 분들은 영화를 보신 이후 돌아오셔도 괜찮습니다.





막이 열리고, 흑백 화면 속 두 남자들이 격렬히 몸을 섞는다.


궁금하신 분은 없겠지만 필자는 이성애자이기에, 비록 그 두 사람이 홍콩 영화계 최고의 간지남 중 한 명인 양조위(이연걸과 장만옥과 함께 출연한 <영웅>을 보시라. 중화사상으로 얼룩져있어 메시지는 건질 것이 없지만, '수염 난 양조위'의 짐승 같은 매력만큼은 일품인 영화이다)와 홍콩영화에 한 획을 그은 꽃미남 배우인 故장국영이었음에도, 이 오프닝 신이, 그리고 이 영화에 대한 첫인상이 상당히 이질적이고, 거북하게 느껴졌다. 이전에 두 여성 간의 저릿한 사랑을 그린 영화, <캐롤(2016)>을 정말 감명 깊게 보았음에도, 남성으로서 같은 남성 퀴어영화를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영화의 두 주인공, 아휘(양조휘)와 보영(장국영). 그들은 지구 반대편 홍콩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과수 폭포를 찾아 무작정 떠나온 청춘들이다.


애석하게도 이런 필자의 생각에서 비롯된 다소의 거부감과 거리감, 게다가 오전의 강행군(집에서 1시간 거리의 운전학원에서 기능 주행 연습을 4시간 스트레이트로 받고 온 상태)에서 비롯된 피곤함으로 인해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의 눈은 수 차례 감겼다 떠졌다를 반복했다. 때문에 평소보다 깊이가 상당히 부족한 리뷰가 되겠지만(물론 평소에 쓰는 리뷰도 그리 깊이 있다고는...), 기왕 이렇게 된 거, 필자의 홍콩영화에 대한 추억을 버무려 본 영화에서 강렬하게 남았던 것들에 대해 풀어보려 하니, 이 점 양해 부탁드린다.





0. 홍콩영화에 대한 단상


영화의 진주인공인 아휘(양조휘). 보영만을 사랑하는 그는 계속해서 자기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보영과 계속되는 고된 일들로 점점 지쳐가지만, 내적으로 가장 단단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처음으로 접했던 홍콩영화가 <강시선생(1985)>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긴 손톱이 잔뜩 날을 세우고 있는 손을 앞으로 쭉 뻗고, 경직된 몸으로 콩! 콩! 콩! 하고 뛰어다니는 생기 없는 시체들의 이미지가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이후 그 왕좌는 <터미네이터(1984)>의 붉은 눈의 사이보그에게로 넘어간다).


홍콩영화가 점점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던 90년대 중후반, 그렇게 첫 홍콩영화의 맛을 본 필자는 그 이후 수많은 배우들을 비디오방에서, 그리고 OCN과 슈퍼액션에서 만나며 홍콩영화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했다. 술 대신 공업용 에탄올을 마시고 취권을 구사하다가 눈이 돌아가버린 <취권2(1994)>의 성룡, 나오지 않을 후속작이 그저 원망스러운 <의천도룡기(1994)>의 이연걸, 어수룩한 듯했지만 슬픔을 한 가득 담은 눈동자를 가졌던 <패왕별희(1993)>의 故장국영, 그리고 그를 비롯해 수많은 남성들을 눈 돌아가게 만들었던 <천녀유혼(1987)>의 왕조현. 그리고 최근에 올라와서는 <소림축구(2002)>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서유쌍기(1994)>의 주연이자 감독인 주성치까지...(영원한 히로인인 주인도 절대 빠뜨릴 수 없다). 때로는 멋지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나와 같은 동양인이면서도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그들의 영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동질감과 괴리감,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뒤섞이면서 오는 희열은 할리우드 영화와는 또 다른 세계를 내게 열어주었다. 때문에 단순히 추억의 일부라기엔, 홍콩영화는 필자에게 있어서 너무도 강렬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1. 왕가위의 연출, 그리고 이야기


그리고 이렇게 필자처럼 홍콩영화를 즐겨오신 분들이라면 왕가위 감독의 이름을 모르는, 적어도 들어보지 못한 분은 아마 없으리라. <아비정전>, <동사서독>, <중경삼림>, <화양연화>, <2046> 등등, 홍콩영화를 수놓은 그의 보석 같은 필모그래피는 그가 그저 '커다란 가위 아저씨'에 불과한 인물이 아님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한국인이라면 그의 이름을 듣고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하셨으리라 믿는다. 물론 아니시라면 죄송하다). 필자는 본디 그의 팬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중경삼림>을 제외하고는 위의 작품들을 모두 보았기에, 이번 영화를 계기로 그가 인기 있는 감독인지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았다.


필자가 느낀 왕가위 감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보면 이렇다.





'감정을 가장 잘 이미지화하는 감독'






자글자글한 화면 속 뚜렷한 색감, 다양한 영상기법들과 시점을 아낌없이 활용한 장면들, 그 외에도 담담히 뇌까리는 독백 등을 활용해서 작중 인물들의 감정을 매우 강렬하게 표현하는 것이 바로 왕가위의 특색이자 장기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특히 낮은 프레임으로 뚝뚝 끊기며 흔들리는 슬로우 모션을 보고 있자면, 그 인물의 불안하면서도 허무한 감정이 내 안으로 그대로 흘러들어오는 느낌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담담해지고, 답답해진다.


보영은 결국 아휘가 완전히 떠난 뒤에야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이었는지, 아휘가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그저 '함께 하는 것에서 오는 행복'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해피 투게더> 역시 그렇다. 흔들리는 장면들을 따라 주인공들 역시 하염없이 흔들리며 불안해하고, 떨고, 질투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들이 너무 잘 보이고 공감이 되기에, 자연스레 '이래서 왕가위, 왕가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달까. 그가 이 영화를 비롯해 항상 이야기하고자 하는 공허함, 상실감 등의 슬프고 허한 감정선을 설명하기 너무나 좋은 영상 철학을 왕가위는 가지고 있다. 자칫하면 늘어지고 지루하다 느낄 수 있기에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지만, 그의 영화를 한 편이라도 보신 분이라면 왕가위가 마니아가 생길 수밖에 없는, 그만의 매력을 확실히 갖고 있는 대단한 감독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 그렇다면 <해피 투게더>에서 왕가위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영화를 다 보고 필자가 느낀 바, 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동성애도, 그들의 세상사는 법도 아니었다.



'청춘(靑春)'




언젠가 피울 꽃을 예비하며 찬바람을 견디고, 내실을 다지는 시기, 그래서 더더욱 스스로가 보잘것없고, 때로는 비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시기, 청춘. 영화의 모든 소재들은 이 하나의 주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존재하고, 그렇게 사용된다. 주인공들이 동성애자라는 것도, 그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나온 것도, 그들의 최종 목적지인 이과수 폭포도, 그리고 먼 여정을 끝내고 다시 본인들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전부 다 그들의 성장을 위한 거름으로 쓰이는 것이다.


아휘의 새로운 인연인 '장'. 아직 자신을 모르기에 또 다른 여행을 떠나야 했지만, 그가 여행을 마무리 지을 때 즈음에는, 그를 기다리고 있을 아휘와 틀림없이 재회하게 될 것이다.


상처를 혼자서 극복해내며 성장을 이루어내고, 비로소 자신을 찾는 여행을 마칠 있었던 아휘,


진정한 사랑을 떠나보내는 '상실', 그리고 그에 이은 '후회'를 통해 비로소 성장할 수 있었던 보영,


그리고 한 번의 여행으로는 스스로를 찾을 수 없었기에 또 다른 여행을 떠나야 했던 '장(장첸)'까지.



영화에 나온 모두가 결국 흔들리고 방황하는 우리네 청춘들이기에, 영화를 다 보고 난 필자에게 그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굉장히 조그맣게 느껴졌다. '아! 이래서 이 영화가 명작으로 꼽히는 것인지도 몰라'하고 느꼈던 것도, 엉성할지언정 이 감정과 느낌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고 하면 설명이 조금이나마 될 것 같다며 나의 부족한 감상에 대한 핑계를 삼아 본다.






어렸을 적, 비디오 가게에서 우연히 봤던 이 한국판 포스터 사진이 아직도 선하다.


이 포스터를 처음 보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참...


묘하다. 어쩌면 비디오 가게에서 우연히 이 비디오를 뽑아 들었던 순간, 이미 이 영화를 보게끔 운명 지어진 것인지도. 하지만 당시에는 몰랐던 이 포스터의 의미를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처음에는 그저 지친 날개를 쉬어갈 곳으로 아휘를 선택했지만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했던 보영과, 그에 반해 처음에는 진심이었지만 조금씩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아휘. '동상이몽'이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되는, 실로 멋진 장면이다. 과연, 양조위는 이 장면을 찍을 때 그런 의도를 갖고 연기에 임했을까? 만일 그랬다면 그의 연기력에 박수를...


사실 필자는 동성 간의 사랑은 애초에 생물학적인 조건에서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비정상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영화 속에서 보이는 그들의 청춘을 전부는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 같다(기분 나쁘실 분들이 계실 줄 알지만,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기 위한 것이니 너른 양해를 부탁드린다). 하지만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라는 영화는 동성애에 초점을 둔 영화라기보다는, 그저 '청춘'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결국, 그 대상이 누구건 사랑하는 마음과 태도 자체는 동일하고(물론 소아성애 등 뒤틀린 형태의 것들은 사랑이라 인정할 수도, 인정해서도 안된다. 그런 것들은 엄연히 범죄의 영역이니까), 이리 치이고, 저리 받는 가운데 성장을 이루어내며 우리의 청춘이 점점 더 빛나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이렇게 보면, 오프닝을 남자들의 사랑으로 시작한 것은 역시 왕가위 감독의 철저한 계산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성애'란 오프닝 신에서처럼 충격적이고, 이질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가. 하지만 영화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조금씩 느끼게 된다. 이들의 사랑 역시 '사랑'이라 이름 붙여진 수많은 종류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럼에도 여전히 동성애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에도 없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나와 전혀 다른 그 어떤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조금은 편견을 덜어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결국 나나 그들이나, 살아가고 사랑하며, 스스로에 대해 탐구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청춘'들일테니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