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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트루 Feb 28. 2021

영화 리뷰 : <타락 천사(1995)>

'관계'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스포일러 및 주관 주의!

화의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은 감상 이후 돌아오셔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다른 내용 해석 등을 참고하지 않고 오로지 필자가 느낀 바를 그대로 적은 글이기에, 영화를 감독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을 수도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序 - 홍콩일까, 왕가위일까.


최근 왕가위 감독 특별전으로 그의 영화들이 재개봉되고 있는 가운데, 저번 주의 <해피 투게더>에 이어서 다른 작품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화관에 또 다녀왔다. 아니... <해피 투게더>를 보면서 그렇게 졸다 깨다를 반복했으면서도 또다시 내가 그의 영화를 보러 간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심지어 이번에도 졸았다...). 회색 빌딩 숲을 진하게 가로지르는 네온사인 가득한 홍콩의 매력이었는지, 아니면 그를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으로 스크린에 옮 왕가위 감독의 연출 능력이었는지.


왕가위의 페르소나와도 같은 도시인 홍콩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 <타락천사>는 그 두 가지 매력이 모두 담긴 영화이다. 비록 왕가위 특유의 담담하고 늘어지는 스토리텔링 방식에, 여러 인물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지루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상당히 많은 영화인 것 같지만, '관계'라는 메인 주제를 가지고 각 인물들 저마다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이른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인 만큼 뚜렷한 한 개의 주제가 아닌, 다섯 개의 나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시면 영화가 조금은 더 의미 있게 느껴질 수도 있으시겠다. 때문에 누가 주연이니 조연이니 하는 구분이나, 혹은 그들의 역할의 무게를 재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생각한다. 그저 다섯 명의 주인공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니.




本 - 스토리 및 캐릭터 분석



1. 황지민(여명): 누구와도 관계 맺을 수 없는 자의 비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사람과 엮인다는 것, 그리고 더 깊게는 그 사람에게 뿌리내리는 행위라 생각한다. 서로의 삶에 들어가 얕던 깊던, 어떠한 '흔적'을 남기는 행위이기 때문에.


하지만 애석하게도 주인공, 황지민은 킬러라는 직업의 특성상 어떤 흔적을 남기는 행위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인물로, 자신의 임무를 철저하게 수행하기 위해 그의 뒤처리를 해주며 3년여간 함께 해온 파트너와도 얼굴도 마주한 적이 없다. 전화로만 대화를 나누는 그녀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면서도, 그는 그녀와 어떤 관계도 맺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에게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다 굳게 믿으면서.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뜻대로만은 돌아가지 않는 법. 모든 관계와 단절된 삶을 살고자 하는 그에게 얄궂게도 그와는 전혀 다른 타입의, '관계를 갈구하는' 베이비가 찾아오며 그는 삶의 새로운 국면을 맞고, 킬러로서의 삶을 그만둘 기회를 얻게 된다(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킬러로서의 삶을 그만두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킬러를 그만두기도, 누군가와 관계를 만들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킬러로서의 자의식이 강해져 버린 그였기에, 그는 결국 손을 씻고 새로운 출발을 할 기회를 놓친 채 죽음을 맞게 된다. 왕가위 감독이 그의 직업을 킬러로 설정한 것은, 아마도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맺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이미 그럴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의 비참함을 통해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지.



2. 파트너(이가흔): 관계 속에서 오해가 낳는 비극


삼 년 간 킬러 황지민의 뒷정리를 해주는 파트너 역할을 해온 그녀는 점점 자신이 정리해온 지민의 흔적들에게서 강한 끌림을 느끼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불현듯 낯선 여자에게서 나는 지민의 향수 냄새와, 그리고 때 맞춰 킬러 생활을 그만두겠다는 지민의 선언은 그녀에게는 이별을 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결국 그녀를 가슴속에 품고 있음에도 사랑하지 못한 지민의 본심은 알지 못한 채, 그를 함정에 몰아넣어 죽게 만든다. 그와 이별하는 것, 그가 다른 사람과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괴로웠기 때문에.


물론 지민이 죽게 된 데에는 지민 자신의 잘못 역시 크다. 관계에 대한 가능성 자체를 닫고 있었기에 파트너를 이성으로서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그를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고,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다른 여자(베이비)와 일시적인 관계를 맺다가 결국 파트너의 질투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하지만, 파트너가 지민의 진심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가 자신의 직업 때문에 깊은 관계를 차마 맺을 수 없다 느끼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 둘은 어쩌면 맺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누구보다 가까이 있으면서,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었음에도 이어지지 못한 이들의 관계가 그저 안타까울 뿐.


*여담: 처음에는 몰라봤다. 그녀가 과거 <동방불패(1991)>의 막내 역할을 했던 배우라는 사실을... 허스키한 보이스와 일관된 무표정, 눈을 덮은 흑발의 앞머리에서 우러나는 시크한 분위기는 그녀가 애초에 이런 장르의 영화만을 찍어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인 포스였으니까(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했던 캐릭터였다).




3. 베이비(막문위): 스쳐 지나간, 하지만 일생일대의 기회였을지도 모를 관계들.


예전의 애인과 닮아있는 지민에게 관심이 생긴 그녀는 그를 따라다니지만, 지민은 자신이 제대로 된 관계를 시작할 수 없는 처지라 여기며 그녀를 '일시적인 만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여기고, 결국 마지막에는 파트너에게 돌아가기를 택한 지민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오열한다.


그녀는 어쩌면 지민에게 있어 스쳐갔을 뿐일 '수많은 인연'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킬러를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정처 없는 삶을 정리하고 어딘가에 정착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을 그녀가 이뤄줄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녀를 떠나며 그는 언젠가 그녀가 진정한 파트너를 찾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스스로가 그녀의 파트너가 될 생각은 하지 못했고, 그렇게 손에 들어왔던 소중한 인연, 새로운 삶의 기회는 물론, 결국 그의 목숨까지 잃게 되고야 만다. 왕가위 감독은 이 캐릭터를 통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맺게 되는 '인연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서, 그를 놓쳤을 때 우리가 겪게 될지도 모를 깊은 상처와 후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황지민, 파트너에 이은 또 한 명의 비극의 주인공.



4. 하지무(금성무): 관계의 본질은 즐거움이다!


어렸을 적 불의의 사고로 말을 못 하게 된 그는 정신적 성장을 멈춘 채 네버랜드의 피터팬처럼,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온갖 사고를 치며 살고 있다. 그러다 첫사랑, 찰리를 만나지만 그녀는 그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고(아무런 말도 못 하고 어리숙하게 느껴지는 지무를 남자로 느끼지 못했음은 물론, 아직 그녀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택한 남자 친구를 잊지 못했기 때문), 그렇게 첫 번째 실연을 겪게 된다.


이후 자신을 지금껏 보호해주고 있던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다시 만난 찰리에게도 외면당하며 두 차례의 상실을 더 겪은 지무는 스스로가 둥지에서 박차고 날아가야 할, 성장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비록 영화의 말미에서도 온전한 성숙은 하지 못한 채 여전히 방황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관계가 주는 기쁨과 즐거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



5. 찰리(양채니): 관계의 상실, 그 아픔을 이겨냈을 때 우리는 더 강해진다.


가장 비중이 적기 때문에 사실상 조연에 가까운 인물. 나머지 네 인물들이 워낙 파란만장하고 독특한 삶을 사는 인물들이기에(베이비와 가장 비슷한 캐릭터이지만 베이비는 한 층 더 센, 더 이상한 캐릭터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평범하고 일반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실연의 아픔에 미쳐 그를 인정하지 못하고 파괴적인 행보를 보이지만, 이를 훌륭하게 극복하고 유일하게 해피엔딩을 맞는 사람이기도 하다(황지민과 베이비는 배드 엔딩, 지무나 파트너의 경우 열린 결말이라 생각한다. 물론 파트너의 경우 배드 엔딩으로도 볼 수 있다).


그녀가 실연을 극복하고 새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그녀의 외적 변화로 단번에 알 수 있다. 머리부터 시작해 완전히 거지꼴을 하고 있는 데다 성격도 이상한, 한 마디로 '광녀'포스를 뿜던 그녀가 멀끔한 차림에 정상적인 성격으로 변하는 장면은 영화 내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의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실연에 반쯤 미쳐있던 그녀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텐데, 이런 모습이 사실 현실에서의 우리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있기에, '그저 조연이었다'라고만 그녀를 언급하고 넘어가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는 인물이라 생각한다.







전혀 다른 에피소드에 속했던 인물들이 우연한 기회로 인해 자연스레 얽히고, 설키며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나간다.


영화의 마지막은 파트너(이가흔)와 하지무(금성무)가 우연한 기회로 만나며 새로운 스토리를 시작하는 것으로 끝난다. 가질 수 없인연을 잔인하게 끊어버리고 그를 추억하며 살아가던 파트너와, 찰리와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여전히 방탕한 삶을 살고 있는 지무. 가슴팍에 상실이라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스토리는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이는 왕가위 감독만이 알고 있으리라(어쩌면 그조차도 모를 지도).


추가하자면, 영화 내에서 파트너는 자신의 오랜 동료이자 사랑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잔혹한 여성으로 묘사되기는 했지만, 이룰 수 없는 인연에의 집착을 자신의 의지로 끊어내는 강단을 발휘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관계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방법은 비정상적인 데다 극단적이었지만 말이다(비슷하게 실연을 겪었던 찰리의 경우도 그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방황을 반복한 끝에 겨우 회복되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치유된 케이스라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지무의 경우, 그가 마지막 장면에서 하는 대사로 설명을 대신하고 싶다.


우리는 매일 사람들과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나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나를 언제나 낙천적인 사람으로 있을 수 있게 한다.

가끔 상처를 받을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즐거우면 그만이니까.


비록 지무는 두 차례의 상실을 겪고 나서도 미처 성장하지 못한 채 여전히 망나니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의 낙천적인 성격은 그를 언제나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에 설레는 즐거운 삶을 살게끔 만들어 결국 그를 새로운 인연으로 인도한다. 말을 못 한다는 점에서 그가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가 앞으로도 또 다른 관계들을 맺으며 행복한 삶을 살 것을 모르는 관객은 없으리라. 그는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를 잘 알고, 제 아무리 상처 받는다 한들 그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기에, 언제까지나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을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맺는 데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우리는 한 가지를 더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표현을 잘 못하더라도, 관계 그 자체에 대해 열린 사고와 마음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그처럼 언제나 관계 속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관계'가 우리에게 주는 행복


이런 훈훈한 그림이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없다.



정착할 곳을 찾아서, 그저 일순간의 따뜻함을 위해서, 혹은 빈 공간을 메꾸기 위해서, 사람은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수많은 관계들을 맺고, 끊고, 또 풀어내거나 매듭을 지으며 살아간다. 그게 어떤 형태로 끝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리 인간은 관계를 맺고 살기에 행복한 사회적 동물이 아니던가.



우리는 관계 속에서 가장 행복하다




결국 왕가위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관계가 우리에게 주는 행복'이 아닐까. <타락천사>라는 제목답게 이 영화에서는 관계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다섯 명의 타락천사들이 등장하지만(영어 제목은 <Fallen Angels>로, 결국 다섯 주인공 모두가 타락천사인 것이다), 그들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게 되니 말이다.



그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었던 황지민은 결국 죽고야 말았고,


항상 버림받는 데에 익숙해져 있던 베이비는 또다시 버림받았다.


그리고 상대 진심을 오해했던 파트너는, 기어이 자신의 사랑을 죽여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즐거움'이라는 관계의 본질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하지무는 매일을 즐거이 살 수 있게 되었고,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찰리 새로운 사람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말이다.



우리가 지금 어떤 관계를 맺고 있든,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게 되든 결국 인간은 모두 행복이라는 길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존재들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처 입기도, 상처 주기도 하면서 서툴게 저마다의 행복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그 어떤 곳에 다다르게 되지 않을까? 항상 관계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던 지무처럼, 관계를 그저 '행복을 향한 통로'라 생각하지 않고 그 과정 자체가 행복이라 생각한다면, 우리는 한 발짝 행복에 더 빠르게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리고 우리가 그런 점에 대해 자주 놓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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